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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열의 말랑 ~ 말랑 여의도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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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세상] '여의도 X파일'이라 생각하믄 틀림없다. 한번 스윽 보고 흘려 보내시라 .다른데로 삽질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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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 원조는? 2014.10.30 06:30:49

지금 알라들이야 어이 알겠는가마는 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새마을운동의 목표는 잘살기 운동이었다.

아침마다 스피커를 통해 동네가 떠나갈 듯 우렁차게 들려오던 소리가 있었으니 바로 새마을 노래였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우리 어렸을 때 매일 들었던 노래가 박대통령이 만들었다는 새마을 노래였고 아마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지금도 합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마을 운동을 시작으로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면서’ 농촌이 변하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서서히 발전해 나가기 시작한 것 같다.

요즘 것들이야 저절로 나라가 이정도 된 줄 알지만 울 나라에선 그런 남 다른 일이 있었고 그런 운동이 있었던 거시어따.

이젠 기억 저편 추억 정도로 남아 있는 새마을 운동이 후진국들의 롤 모델이 되어 또 다른 한류로 거듭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운동 그러니까 잘살기 운동의 힌트를 어디서 얻을 줄 아시는감? 아마 며느리도 모를 이야기를 기쁨자는 대충 추측할 꺼리를 알고 있다.

저 가난했던 60년대 대학생이었던 이화동 형님은 잘살기 학원이란 이름을 걸어놓고 동네 불우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학교에서 구두를 닦았다.

학생이 그것도 총학생회 간부가 빈 강의 시간 교수나 동료들 구두를 닦으니 그들이 얼굴(쪽)팔려하며 극구 만류를 했던 모양이다. 학교 체면도 있고 하니 자선 음악회나 모금운동을 해주겠다면서.

그러나 꿋꿋이 이어 간 형님. 그러다 동아일보의 황선필 기자(아마 이름을 기억하는 너님들이 있을 것이다. 장관을 했던)가 기사화를 하게 되고 그 뒤 kbs에서 보도를 했는데 그걸 박정희 대통령이 시청을 했다는 거다.

신분을 기업체 간부로 위장한 채 찾아와 이것저것 알아 본 비서관(홍승면)은 형님을 청와대로 불러 대통령 하사금 20만원과 대통령이 써준 잘살기학원 현판을 건네주게 되고.

그러면서 대통령이 신신당부를 했다면서 비서관은 전했단다. 그 자리에는 구청장과 종로경찰서장도 불렀던 모양이다.

“각하께서 ‘잘살기, 잘살기, 잘살기, 그래 잘살기야’ 하시며 몇 번 이나 감동을 하셨습니다. 그 뜻을 살리도록 구청장, 경찰서장이 (이 학생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학교 현판을 직접 써준 일은 없다며 그 각별함을 강조했다는 거다.(당시 형님은 구청장이나 경찰서장보다 비서관이 더 세다는 것을 그때 알았대나 뭐래나.)

아무튼 새마을 운동 시작 몇 년 전이었고 대통령이 형님이 내세운 잘살기 학원이라는 모토에 감동을 받았다니 잘살기 운동을 목표로 한 새마을 운동의 아이디어나 힌트 혹은 마중물은 이화동에 있는 잘살기 학원이 아닌가 한다. 물론 아님... 말고다.(직접 확인한 바 없으니... 혹 박근혜 대통령은 이 사실을 알고 있으려나.)

그 뒤 그런 인연 때문이었는지 형님은 새마을 운동에도 헌신을 해 새마을 훈장(협동장)도 받았다.

참 당시 대통령 하사금은 어쨌냐고?

대통령 덕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학교 부지(서울대 땅이었다는데 이화동 주민들 연탄재 불법 투기장이었다고)가 마련됐고 그곳에 교사를 짓는데 썼다고.

얼마 전 이젠 벽화 마을로 변한 이화동 형님댁엘 갔었다. 스레트로 된 옛날 지붕 그대로의 허름한 곳의 일부가 이제는 잘살기 기념관으로 변신해 중국 관광객들도 찾고 있었다.

건물 벽에는 형님 삶에 감동 받은 홍대생들이 그려준 벽화가 어느 새 그려져 있었고 박대통령이 써준 낙관이 없는 유일한(?) 현판도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다. 당시 학생들의 편지로 청와대에서 보내 준 젊디젊은 대통령 사진도 있고.

휴~우, 너무 길어져 오늘은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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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젤 무서운 죄는? 2014.10.27 18:03:02

혹시 지옥엘 가보았는가들? 배워서 남 주는 것도 아니니 미리 미리 알아 두는 것도 괜찮을 터^^.

뺑뺑이 군대에서도 차별되는 보직이 있듯이 지옥에도 등급이 있다고들 하네 그랴.

이승에서 죄를 짓지 않았지만 가는 제일 약한 단계인 1 고리에서 제일 나쁜 놈들이 가는 9고리가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아케론 강을 건너면 단계별로 분류가 되는데 가령 탐욕을 부린 넘은 3고리요 인색한 자들은 4고리 보직(?)이다.

살인과 강도짓을 하는 조폭들이 있는 곳이 7고리요 권모술수와 마타도어를 하는 자들이나 사기꾼들이 예약된 곳이 8고리다.

그럼 마지막으로 마왕 옆 제일 무서븐 곳인 9고리는 누구차지?배신자다.

어름 호수로 되어 있는, 일산 호수공원 같으면 월~매나 좋겠냐만, 9고리에는 사람을 배신한 배신자들이 얼어붙어 있는 곳이다. 단테가 신곡에서 주장한 썰이다.

단테는 배신을 죄 중에서 제일 중하게 그러니까 살인보다 더 무서운 최고 중죄로 치고 있다. 왜냐고? “다른 죄는 그 자체로 끝나지만 인간 세계의 질서를 어지럽히며 지구를 지옥으로 변형시키기 때문”이란다. 동의들 하시는가? 그러고 혹 배신을 당해 본적이 있는가?

여의도는 시방 배신 죄가 얼 만큼 무서운 줄 모르는 모양이다.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지옥의 제일 밑자리가 보장된 것이 배신이라니깐.

하기야 배신자는 또 배신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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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소격동과 부암동 2014.10.25 03:35:33

서태지가 컴백했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할 때가 그렇게 오래 된 것 같지 않은데 벌써 20년이 넘었단다.

이번 앨범 중에 소격동이란 노래가 있다는데 지금도 자주 가는 곳이 소격동이다. 옛 경기고딩 자리였던 정독도서관과 그 주변이 소격동이다.

그러니까 총리공관이 있는 삼청동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동이다.

예전엔 도서관 다니느라 자주 갔던 곳인데 지금은 회사에서 가까워 방송 대본 들고도 찾는 곳이다.

지난 주말 홍릉 수목원 옆의 세종대왕기념관을 찾았다. 카자흐스탄에 있었을 때 인연이 닿은 분 따님 결혼식 때문이었다.

대학 시절 그 근처에 살았는데 세종대왕기념관은 가 본적이 없다. 그런데도 추억이 새롭다. 졸업식 날 근처 식당에서 어머니로 부터 순금반지를 선물로 받기도 했다. 안암동과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돌아오는 길에 마눌님이 부암동을 한 번 가보자고 했다.

20년 도 넘은 오래 전 혼자 가본 적이 있는데 당시는 계곡 도랑에 물이 흐르고 산비탈에는 닭들이 돌아다녔다.

너무 시골스러워, 청와대 때문에 집 개조도 못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딱 기쁨자 스타일이어서 홀라당 반 했으나 신참 직장인주제에 집값이 만만치 않았고 대중교통이 제대로 없어 출 퇴근 하기가 불편할 것 같아 포기했던 곳이다.

이번에 가본 부암동은 옛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새로운 건물들이 울쑥불쑥 들어차 있었다. 몇 군데를 돌아 다녀 보았으나 한적한 산비탈에 닭이 노는 대신 사람들로 북적였다.

길가에 세워둔 차에는 주차위반 딱지가 하나씩 붙어 있었고 그 위쪽 길로는 차들이 산을 넘나들었다. 머릿속에 있는 부암동이 아니었다.

터덜터덜 내려와 어느 카페에 들어가니 박노해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사진 속에 체 게바라 사진도 보이는 중남미 사진전이었다.

*저 할머니(60)가 체 게바라가 잡혀 묶여 있을 때 두려워 하며 땅콩죽을 만들어 줬단다. 2010년 작이다. 제목은 체 게바라에게 최후의 식사를 드린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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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 것도 섧거늘 2014.10.20 23:36:40

바로 어제 올린 포스트에서 인사문제를 문제 삼지 말라고 설파했는데 결국 사달이 났나보다. 설훈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의 나이 관련 발언 때문이다.

어느 신문(윤창중이 *소리할 때부터 멀리한 신문이긴 하다)은 정동영, 유시민까지를 묶어-野, 노인비하 ‘대물림’-이라고 헤드라인을 뽑아 덩더쿵 춤을 추고 있다. ‘자~알 걸렸쓰’.

설 의원이 최근 관광공사 상임고문직에 임명된 자니윤의 퇴진을 요구하며 했다는 말 꼬리를 밟고 서다.

설 의원이야 낙하산 인사 문제 지적이 방점이었다 해도 정년제도 존재이유나 나이 들면 판단력이 떨어지니 쉬라는 등의 언급은 그렇잖아도 소외 받는 노인들에게 영 섭섭하게 들릴 것 같다.

허나 찬스는 기회요 기회는 찬스인데 여당이 이를 놓칠 리 없다. 당장 DJ 대통령 재임시 나이까지 들먹이며 패륜발언이라 몰아세우고 은근히 어르신들 기분을 맞춰 주고 있지 않은가.

아무튼 저 발언으로 별 이득도 못 보고 괜히 고려장당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질지 저어된다.

노인들이 힘이 없고 별 볼일 없게 보여도(정치인은 행여 이런 말도 쓰지 마시라) 투표장 갈 힘은 있지 않느냔 말이다.

그건 그렇고 이주일이 의원시절 본회의장 발언 모습이 떠오른다. 그 당시 강부자도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지 아마.

그런데 의원 할 일이 중요할까 아님 공공기관 고문이 더 중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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씰데 없는..가만 있으라 2014.10.19 23:04:15

정당의 목적은 정권을 잡는 것이다.
고딩 때 검정 교과서로 배운 내용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그러니까 정권을 잡은 정당은?

그야 자당이 꿈꾸는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는 것일 것이다. 이거야 정제된 표현이고 확 말하면 지당 꼴리는 대로 하는 거다.

왜 대통령이 되려는 건가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는 최고의 수단이기 때문일 것이다. 쉽게 말하면 내 꼴리는(뜻)대로 정치를 해보고 싶기 때문이라는 말씀이다.

물론 그 뜻은 헌법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안 되겠지만 법 허용치 안에서야 무슨 제약이 있겠는가. 그러라고 대통령을 뽑은 것이고 그러라고 대통령제를 하는 것이다.

그 행위에 대한 평가야 국민이 하는 거다. 맘에 안 들면 다음 선거에서 표로 심판하면 되는 거고.

정권 때마다, 그러니까 늘, 씰데 없는 논쟁이 인사 문제다.
어느 땐 코드 인사라고 비난하고 어느 땐 낙하산 인사라고 비난한다.

같은 대통령제인 미쿡에서 이런 허접한 일들이 일어나는 걸 봤나? 이제 고만하자.

비난은, 임명된 사람들이 잘못했을 때 해도 늦지 않다. 숨어 있을 능력을 어이 미리 예단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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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 청평사 가는 길 2014.10.16 23:36:28

며칠 전 청평사를 다녀왔다.

처음엔 동해를 왼편에 두고 바닷길을 쭈~욱 따라 내려가 부산에서 머문 뒤 통영과 남해를 다녀 오려했으나 마눌님이 내켜 하지 않아 계획을 접은 뒤였다.

청평사는 꿩 대신 닭인 셈이었는데 기실 목적지도 아니었다.가다보니 도착한 곳이 청평사였던 것.

그러니까 휴가 첫날 갑자기 계획이 틀어지니 그냥 집에 있기도 뭐해 후딱 춘천이라도 다녀올까 해 나섰던 것이다.

그렇게 뜬금없이 가게 됐는데 마침 장모님도 수영 날이 아니어서 뒷자리는 두 8순 어른이 차지했다. 장인어른이야 그림 배우는 주말이 아니면 시간이 펑펑 남는 분으로 요즘 말도 많은 공무원 연금의 수혜자다.

서울을 벗어나자 뻥 뚫린 경춘 가도에서 보이는 산에는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고 기분도 상쾌해진다. 고딩생 때문에 먼 길을 주저했던 마눌님도 짧은 여정에는 부담이 없는 탓인지 홀가분해 한다.

11시에 떠난 승용차는 오후 1시 반쯤 실비 막국수 집에 도착했다. 가는 도중 마눌님이 검색한 맛 집인데 춘천 막국수 1호점이라나. 닭갈비도 함께 할 거라고 하더니 생각했던 닭갈비가 아니다.

주인장이 추천한 빈대떡, 편육과 함께 막국수를 먹다보니 메밀로 막국수를 만든다고 쓰여 있다. 메밀로 만든 막국수라면 그럼 메밀국수는 뭐꼬?

지난해 가을 이맘때 쯤 똑 같은 멤버로 설악산 가는 길에 인제읍내에서 봉평 메밀국수를 먹은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맛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지역에 따라 이름만 다른가.


식사 후 소양강 댐을 들렀다. 댐에는 주차할 곳이 없어 계속 가다 보니 막 다른 곳에 주차장이 있고 선착장이 그 아래에 있다.

유람선에 어른들을 모시려는 마눌님의 희망과는 달리 이미 끊겨 버렸고 편도 10여분 걸리는 청평사까지 오가는 배만 있다 했다.

역시 꿩 대신 닭이라고 그거라도 타자고 해 배에 올랐다. 기쁨자는 30여 년 만에 소양강 배를 다시 타 보게 된 것이다.

당시 광주에서 교대 다니던 사촌 여동생과 양구에 있는 어느 부대에서 소위로 근무하는 고종사촌 형 면회를 갔다 오면서였다. 5.18 민주화 행쟁이 나던 해였다.

팔팔했던 그때와 달리 이제 반백(방송 때의 머리는 위장^^)이 돼서 다시 배를 타 보니 그 때 일이 어제처럼 떠오른다. 그때 소양강을 바라보며 ‘떠나가는 배’를 불렀을 것이다.

어느 새 선착장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린 어른들은 힘들다며 아래에 있기로 하고 청평사로 올랐다. 적어도 17시 반 막 배 시간까지는 맞춰 와야 했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올라가는 길 옆 계곡은 가을 특유의 운치가 있었다. 고향집 인근에 있는 태안사 계곡과 비슷하기도 했으나 길이가 짧고 그 규모면에서는 미치지 못했다. 아무려면 어떤가.

절을 휘익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칡차를 한 잔 마셨다. 싸한 맛이 좋아 아예 한 통을 사들고 내려왔다.

다시 바람을 가르며 귀경. 서울로 들어서자 퇴근 행렬과 합류한다. 休가 끝나고 휴~우 시작의 전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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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장 소장 성**님" 2014.10.12 06:54:59


요즘 17사단이 유명세(?)를 타고 있다.
성추행한 사단장이 긴급

체포되면서다.

뭐 그 흔한 성 사건 정도려니 했는데 어딘가 익숙하다. 기쁨자가

근무했던 사단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복무시절 중도에 사단 이름이 바뀌었다.

33사단에서 17사단으로. 예전엔 일명 번개사단으로 불리었다.


군 회피자들이야 모르겠으나 훈련병 시절에 사단장 이름과 연대장
이름을 외
워 점호 때 종종 점검을 받기도 했는데 요즘 훈병들은

'사단장 소장 ***님’ 대신 ‘사단장 소
장 성추행님’으로 부를지
모르겠다.


이왕 군 야그 나온 김에 좀 더 쓴다.

당시 사단 이름이 바뀌었을 뿐 아니라 특공연대가 창설되기도 했다.

북한의 경보병 여단에 대항하려 만든다든가 했는데 덜컥 지원의사를 밝혔다.

군대랍시고 와 모포 각이나 잡고...이게 무슨 쪼잔한 짓인가.

하여 모두가 관심 없어하는 특공연대에 지원을 했던 거시다.

지금이야 갸우뚱 하겠지만 당시 체력도 괜찮아(체력 측정에서 최

상위 수준이었다) 호기를 부렸는데 상병 짬밥에 왠 특공대냐며

만류했다.

친한 간부도 말렸는데 고생을 염려 한 것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안

경 쓴 것이 하자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기쁨자 몸에는 지금도 군 시절 흔적이 남아 있다.

오른손 새끼손가락 쪽이 굽어 있는데 벽돌 격파 때 생긴 흔적이다.

당시 벽돌만 박살난 것이 아니라 주먹까지 박살이 나버렸다^^. 덕

분에 서울(국군수도통합 병원)구경까지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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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깝다! 2014.10.10 23:55:40


지난 토욜 방영 예정이던 클릭 베스트 컷이 불방 된 걸 오늘에야 알았다.
 
북한의 황병서, 최용해, 김양건의 인천AG폐막식 참석 건 때문.


그 같은 빅 뉴스에 뉴스 전문 채널에서 가만 있을리 없지만  
어쨌거

나 마취까지 한
종합검진 후 나름 힘들게 만든 것이 사라졌다니

아깝다는 말씀.
 

20분 방송쯤이야 '까이꺼' 할지 모르지만 그 준비 과정은

까이꺼가 아니거든.   


대신 이번 토욜 방송은 많이들 봐주시라^^

마눌님 손을 빌어 헐레벌떡 염색까지 했거든ㅎㅎ.



그런데 참,

오늘 북에서 대북전단에 총질을 했다는 소식이네.크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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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교 2014.10.09 06:00:52
10월09일,
1009교를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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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눌님의 하이킥 2014.10.05 22:32:56

요즘 마눌님의 요리 도전은 거침이 없다.
이젠 간장게장 영역까지 손을 뻗쳤다.

요리의 시작은 카자흐스탄에서 시작됐다. 처음으로 직접 배추김치를 담갔던 곳이 그곳이다.

기실 우려스러웠다.
예전
서울에 올라와 자취시절 작은 누나의 배추김치 첫 작품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금에 절여놨던 배추가 다시 살아나고 다시 소금을 뿌리고 그렇게 고군분투 끝에 만든 김치는 차마 먹을 수 없는 맛이었다.

요즘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 강조하면서 창조 창조 하지만 기쁨자는 폴세부터 그 창조 소리를 이 누나로부터 들었다.

방학 때는 집에 와서 무슨 요리 한다고 법석을 떨었는데 아주 간혹 맛이 있었고 대부분은 맛이 없었다.

그 맛이 있을 때 또 해달라면 똑 같은 맛이 안 나왔다. 그때 하는 소리가 창조요리였다. 그러니까 요리를 창조적으로 하다 보니 맛이 항상 다르다는 것. 이거야 원.

그리고 맛이 없을 땐, 더 먹어보라는 사정에도 안면몰수 했는데 그때 유일하게 거들어 줬던 이는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위대하다고 생각했던 대목 중 하나다.

잠시 좀 새버렸는데
아무튼 마눌님은 김치담기 작품을 훌륭히 해내고야 말았다.

예전 어렸을 때야 안 먹어도 그만 이었지만 그 맛없는 김치를 외면하면 마눌님 상심이 클 것이고 그렇다고 꾸역꾸역 먹는 시늉을 해야 할 텐데 얼마나 고역이겠는가.

그런데 첫 시도에 성공을 하자 예전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감동까지 받았고 소박을 놓더라도 김치 맛 때문에 못 놓겠다고 너스레까지 떨었다.

그 뒤 마눌님 요리는 거침없는 하이킥이었고 어느 때고 김치 정도는 뚝딱 담아 버렸다. 약간의 맛 차이는 있을 지언 정 들쑥날쑥‘창조 요리’가 아니었다.

서울에 와서도 그 솜씨는 이어졌다.

과연 전주 출신이니 신의 손이니 하는 서방님의 칭찬에 이젠 필이 넘쳐 간혹 국적 불명의 새 요리까지 시도하기도 하는데 아이들로부터 외면을 받곤 한다.

기쁨자도 요리를 해봐서 아는데(mb버전^^) 주위 반응이 안 좋으면 기분이 완전 잡쳐 버리는 법. 이럴 때 요리사들의 공통점은 애걸복걸형이 된다.

마눌님도, 그 예외 없이, 먹어보라고 사정을 해도 아이들은 얄짤 없다. 피는 못 속이는지 꼭 어릴 때 누구 같다.

이때 식탁으로 다가가는 사람은 서방님이다. 맛있다고 과장까지 하면서 먹어준다.

마눌님이야 정말 인 줄 알겠지만 꾸역꾸역 먹을 때가 없지는 않다(고 완곡하게 표현한다. 그래도 혹 이글 읽고 마눌님한테 알리지 말기 바란다.)

이 때 생각나는 사람은 누나다. 뒤늦은 미안함이 솟는다. 그리고 외치고 싶다. 생뚱 맞은 고 머시기 버전으로.
'누나야 미안하다!!!’

오늘 저녁 마눌님은 소래포구에서 사온 꽃게로 그 두 번째의 간장 게장을 담갔다.  

페북 사진을 보니 알마티 텐산엔 눈이 많이 내린 모양이다.


*사진이 올라가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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