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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식 블로그(역사문화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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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의눈] 상식 혹은 통설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구속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저항정신의 현창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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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명패 2008.11.13 14:28:39

이번 주 월요일(11.10)

저번 주에 다른 일로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연대 중문과 모 교수님과의 점심 약속을 위해 광화문 회사에서 차를 몰아 신촌동 연대 캠퍼스를 들어섰다. 문화관광부를 왼쪽으로 끼고 세종로에 들어서 광화문을 전면에 둔 채 좌회전하여 종묘를 오른쪽으로 스치며 사직터널을 통과하고, 금화터널을 지나 동문을 통해 신촌캠퍼스로 들어섰다.  

때가 때인지라. 흐드러진 단풍이 절경이리라 생각하고는 묵직한 사진기 가방을 싣고 갔다. 내가 종사하는 분야가 문화유산이거니와, 가만 생각하니, 이 때가 사적으로 지정된 연대 본관 건물을 촬영하기 위한 호조건이 되는 날이라 했던 것이다. 캠퍼스 경내를 들어서자마자 전면에는 예의 한국어학당이 보이거니와, 종래에는 보지 못한 풍경이 펼쳐졌으니, 그 전면 오른쪽에서 꿍땅꿍땅하는 요란한 공사의 굉음이 그것이었다.  

아! 또 때려 부수고 또 짓나보다. 20여 년 전 풍광과 비교해도 신촌 캠퍼스는 박살이 났다. 아카시아 숲 무성하던 이화여대 맞은 편 언덕은 치과대 건물이 우람하고, 동문회 건물이 요란하다. 운동장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고, 쓸 만한 공간은 모조리 건물 차지가 되어 버렸다.  

없어진 것은 풍광 뿐만 아니었다.  

본관을 왼쪽으로 끼고 한쪽에 차를 세워두고 인문관에 들어서니 예의 종합강의실인지 뭔지 하는 1층 로비 근처 강의실은 여전한 듯했으나, 혹시나 하고 그 입구 수위실 머리맡에 걸린 교수실 안내판을 보고는 괜히 봤다는 생각만 했다.  

문과대 중에서도 영문과 정원이 제일 많은 지라, 내가 입학하던 1986년으로 시계추를 돌려볼진대, 정원 130(?)에 정원 외 입학 21명 정도였으니, 때문에 교수 숫자도 제일 많아 스무명 가량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뜻 그 명패를 보니, 그 숫자는 이렇다 할 만한 차이가 없는 듯했다. 하지만 그 스무 명 가량 되는 이름 중 나에게 친숙한 이는 모두 사라지고 세 분만 달랑 남았다. 하지만 그 세 분 중 한 분은 내가 재학 중에 부임했으며, 나머지 두 분 중 한 분은 수강조차 한 일이 없는 까닭에 이제 나와 직접 인연이 닿을 만한 분은 대부분 없어진 셈이다.  

영미비평의 이상섭, 희곡의 임철규, 영국소설의 김태성 교수님은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몇 년 전쯤인가는 중세 영문학을 가르치던 고소웅 교수님은 그 얼마 전에 타계하셨다는 소식까지 듣기도 했다.  

사라짐이 슬프기는 하지만, 그 사라짐을 대신하여 새로움이 돋나니. 하지만 그 새로움을 나는 함께 하지 못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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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을 전면에 둔 채 좌회전하여 사직터널을 통과하"려면 그 사이에는 사직공원밖에 없는 것 같은데, 갑자기 종로3가에 있는 '종묘를 오른쪽으로 스치며'라고 하니 제가 헷갈립니다. 2008.11.14 16: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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