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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니치'와 '고담' |
2009.01.20 20:48:57 |
요즘 좀 바쁩니다. 낙동강에서 유해물질인 1,4-다이옥산(읽을 때 일사 다이옥산으로 발음합니다)이 검출돼 1주일 넘게 사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대구 수돗물에서 권고치 이상의 다이옥산이 검출됐다는 새로운 사실이 확인돼 난리를 쳤죠.
제가 대구환경청을 담당하는지라 동료들과 함께 관련 기사를 생산(?)하는데 매진하고 있습니다. 바쁜건 문제가 아닌데 오늘 인터넷에서 제 기사에 달린 댓글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한 네티즌은 "대구 수돗물에서 다이옥산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속이 다 시원해 졌다"고 댓글을 올렸더군요.
한 사람만 아니라 제법 여러 명이 비슷한 투로 댓글을 달았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짚이는 데가 있습니다. 이들이 댓글에서 연방 '고담'을 언급했기 때문이죠.
아시다시피 인터넷 공간에서 고담은 대구광역시를 일컫는 별칭입니다. 배트맨이 출동해 갖은 악당을 물리치는 범죄와 악명의 도시, 고담.. 선거 때마다 한나라당 후보가 묻지마식 투표로 '당연히(?)' 당선되고 대통령 선거에서 지역 출신 후보에게 몰표를 던지는 곳..대구 이런 이미지가 정치적으로 올바른지 차치하고 네티즌들의 인식에는 분명 그렇게 각인돼 있죠.
하지만 대구 이미지가 그렇다고 거기서 살고 생활하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것은 정당한 인식이 될 수 없겠지요. 대구시민들은 오히려 유해물질을 음용할 위험에 처한 피해자입니다. 그런 대구시민을 배타시할 이유가 없습니다.
영남 패권주의와 지역민들이 전혀 상관없지는 않겠지만 그것도 분명 하나의 의사표현입니다. 정치적으로 대구가 밉다고 대구사람들을 싸잡아 비판하고 욕하는게 통할 수 있을까요? 그건 분명히 언어폭력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들의 견해를 잘못 됐다고 지적하는 네티즌도 계십니다)
요즘 인터넷 '스포츠춘추'에서 박동희 기자가 재일교포 야구단에 관한 심층 씨리즈 기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전 감독인 한재우(73) 씨 인터뷰를 통해 196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교포야구단의 생생한 증언을 싣고 있죠. 기사를 읽던 중 가슴아픈 대목이 있었습니다.
당초 한국을 찾아 전국을 순회하며 지역 강호 고교야구팀과 10여 차례 친선경기를 벌였는데 언젠가부터 봉황대기 야구대회에 참가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이전에 없던 봉변을 당했습니다. 토너먼트 대회에 참가하니 상대팀 응원단에서 "쪽발이들 일본으로 돌아가라"고 야유하더라는 겁니다.
재일교포는 일본에서 '자이니치', 즉 在日로 불립니다. 이들 재일교포 야구단은 일본에서 자이니치, 조센징 따위의 멸칭으로 불리며 사회적, 경제적 차별과 불이익을 받고 살았는데 한국에 오니 쪽발이라 불렸습니다. 일본 사람들 차별은 그렇다치고 고국의 산천과 사람들이 그리워 찾아온 청소년들에게 지우기 힘든 상처를 준거죠.
일부 네티즌이 대구를 고담으로 부르며 오염물질 검출을 안타까운 소식이 아니라 가슴이 통쾌한 일로 받아들이는 것은 재일교포 고교야구단을 쪽발이로 부르며 일본인과 동일시<내지는 착각>한 사람들과 통하는게 있습니다.
사진은 20일 수돗물에서 1,4-다이옥산이 세계보건기구(WHO) 가이드라인(권고치) 이상으로 검출되자 김범일 대구시장<사진 오른쪽>이 정수장을 방문해 여기서 생산한 수돗물을 직접 마시며 시민들에게 이상이 없다고 홍보하는 장면입니다. 대구시는 수돗물을 강한 불에 5분 끓이면 60%, 10분 이상 끓이면 대부분의 다이옥산이 날아간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구시민들은 1991년 두산전자의 낙동강 페놀오염 사건 이후 잊을만 하면 터지는 수질오염 소식에 생존하는 방식을 터득했습니다. 벌써부터 대구 앞산(대덕산)과 팔공산의 약수터에는 평소보다 2~3배 되는 인파가 몰린다고 합니다. 당장 사태를 겪는 것도 힘겨운데 온라인에서 돌던지는 행위는 중단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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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주로에 눈 내려도 끄떡없지 |
2009.01.15 11:21:26 |
14일 대구지역에 올해 들어 처음으로 눈이 내렸습니다. 서울이나 강원, 호남 등 다른 지방에 내리는 많은 눈에 비하면 별것 아닌 적설량을 기록했지만(0.7cm ^^;;) 겨울에도 그다지 눈이 많은 곳이 아니라 시민들의 체감지수는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체인 등 월동장구를 갖추고 나온 차량이 거의 없어 평소에도 교통정체가 심한 범어네거리 일대는 보통 10분도 안 걸리던 거리를 가는데 30분씩 소요됐죠. 어느 시민은 "택시로 기본 요금 나오던 구간을 탔는데 5천원 넘게 요금이 나왔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오늘 포스트는 눈(雪)에 관한 겁니다.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대구공항은 민간 항공기와 전투기가 함께 사용합니다. 원래 공군 대구기지가 사용하는 군용활주로를 나중에 들어선 대구공항과 민간 항공기들이 사용하는 거죠. 그 때문에 제가 어릴 때는 대구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기를 탑승할 경우 내부 창문을 모두 닫아야 했습니다. 이착륙시 항공기 주변이 모두 군사시설인 탓에 보안을 해야 한다는 이유였지요. 지금은 이런 제약이 모두 풀려 얼마든지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볼 수 있습니다. 눈이 오면 활주로는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드넓은 활주로가 모두 눈으로 덮이겠지요. 거리만 수 킬로미터되는 광활한 면적의 눈을 사람의 손으로 치우기는 무리입니다. 그래서 공군 대구기지 내 제11전투비행단은 일반 사회에서 볼 수 없는 특수 제설차량을 사용합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대형트럭 같은데 앞부분에 뭔지 알 수 없는 장비가 부착돼 있지요. 이게 SE-88로 불리는 제설차량인데 항공기 제트엔진을 개조한 장비를 달고 활주로를 달리면서 엔진에서 400도 이상의 뜨거운 바람을 뿜어 냅니다. 최근 대구지방에 영하의 강추위가 1주일 정도 계속돼 눈이 얼어붙으면 항공기 이착륙에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SE-88은 활주로를 여러번 반복해서 다니면서 쌓인 눈을 증발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 덕분에 전투기는 물론 민간 항공기들이 안전하게 공항을 뜨고 내리게 되지요. 눈 오는 날, 대구공항에 오시면 활주로를 오가는 제설차량이 다니는지 눈여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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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神, 경찰청을 찾다 |
2007.12.04 10:39:18 |
야구팬들 사이에서 '양신(梁神)'으로 통하는 프로야구 삼성의 양준혁 선수가 11월30일 경북지방경찰청을 찾았습니다. 경북경찰청으로부터 교통안전 홍보대사 위촉을 받고 위촉식을 갖기 위해서였죠. 유명 야구선수가 경찰청을 방문하는 것은 좀처럼 보기드문 일이라 많은 사람이 '양신'을 직접 보기 위해 몰렸습니다. 양준혁 선수는 송강호 경북경찰청장을 만나 위촉장을 받고 송강호 청장과 예쁜 하트 포즈까지 함께 취했습니다(사진.경북경찰청 제공). 송 청장은 "연말연시 들뜬 사회분위기로 시민들이 음주운전을 하기 쉬운데 위험성을 널리 알려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양준혁 선수는 12월부터 내년 1월까지 두달간 교통안전 홍보대사로 있으며 교통방송 캠페인에 참가하는 한편, 음주운전 근절 포스터 모델로도 활동하게 됩니다. 경북경찰청은 양 선수를 모델로 하는 포스터 5천장을 만들어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 부착할 예정입니다. 경찰은 "지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양준혁 선수를 홍보대사로 위촉해 큰 홍보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시다시피 양준혁 선수는 올해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2천안타를 돌파한 슈퍼스타입니다. 내년에도 최다 홈런 기록에 도전하는 등 수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과거 장효조, 이만수 두 선수가 80년대를 풍미한 삼성 라이온즈의 초대 타격 양웅(打擊兩雄)이었다면, 양준혁, 이승엽 선수는 90년대와 2천년대를 수놓은 2대째라고 하겠지요. 예전에 대구구장에서 야구경기를 관람하면서 승패에 관계없이 양준혁, 이승엽 선수의 타격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메이저리그의 야구전문가들은 짧은 기간에 놀라운 기록을 세운 선수보다는 오래도록(타자는 20년 정도) 활약하면서 넘보기 힘든 통산기록을 쌓은 선수를 더 쳐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기준에서 본다면 양준혁 선수는 한화 송진우 투수와 함께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달인(達人)이라고 하겠습니다. 양준혁이 최근 어떤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2인자의 설움을 겪었다"고 했다지요. 아무리 안타를 많이 치고 타격왕에 올라도 스포트라이트는 홈런왕, 구체적으로 후배 이승엽에게 몰렸던 현실이 섭섭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제 양준혁은 한국 프로야구의 최고수 타자라고 말해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위치에 올랐습니다. 2인자의 설움을 맛보면서 묵묵히 그라운드 곳곳으로 양준혁 선수가 때려낸 2천안타야말로 값진 결실이 아닐까요. 자신이 목표로 삼는 3천안타를 향해 앞으로 4~5년 더 활동하면서 높은 산을 쌓아주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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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세계를 놀라게 하겠다" |
2006.05.01 18:31:15 |
딕 아드보카트 국가대표축구팀 감독이 지난달 26일 신라고도 경주를 찾았습니다. "한국축구가 (2002년 한일월드컵에 이어) 또한번 세계를 깜짝 놀라게할 자신(Confidence)이 있다"고 호기로운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경주, 울산지역 축구지도자와 아마선수들에게 현대축구의 이해를 주제로 특강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는 약속한 시간인 오전 10시30분 정각에 행사장에 나타났습니다. 강의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위주로 진행됐지요. 아드보카트 감독은 자신이 1947년생이라며 이때는 2차 대전이 끝난지 2~3년 밖에 안돼 유럽 전체가 그야말로 쑥대밭이었다는 겁니다. 모든 국가가 전쟁의 상흔을 씻고 재기하는 시기로 당시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오락은 축구가 유일했다고 합니다. 학교갔다오면 누구라 할 것없이 길거리에서 공을 찼고 자신도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축구에 몰두했다는 겁니다. 저는 지금까지 유럽축구가 강한 이유는 축구가 원래 유럽에서 시작됐고 어디가나 잔디밭을 구할 수 있어서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아드보카트 감독의 얘기를 듣고 보니 전쟁이 끝난 폐허에서 아이들이 축구공 하나를 차며 노는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축구 밖에 놀 거리가 없던 당시 어린이들 상황과 이들이 자라 축구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드보카트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5~6살때부터 축구에 몰두해 체육시간에 재능을 발휘, 친구들이 자신을 따랐고 10살때 클럽축구팀의 주목을 받았다고 소개했습니다. 16살때는 프로팀과 계약을 했고 계약금액은 적었지만 신문에도 자신의 기사가 나고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알아봤다는 거죠. 성장과 함께 모든 연령대 팀에서 선수와 주장을 맡으며 1부리그 경기만 500여경기를 뛰었답니다. 이후 네덜란드 자국을 비롯해 36살까지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 각국을 거치며 축구선수 생활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군요. 그는 자신의 리더십에 대해 "돌이켜보니 주장은 재능만이 배경이었다"며 "한국에서는 나이도 고려되지만 네덜란드선 순전히 자질만 판단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드보카트는 "나는 좋은 선수였지만 최고의 선수는 아니었다. 그래도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리더십 부분은 프로팀에서 주장을 계속 맡으며 형성됐다는 겁니다. 그러나 축구선수 일생을 돌이켜보면 선수로 뛰던 시점이 인생의 정점이었다고 술회했습니다. 대부분 지도자란 직업은 불안정하고 불확실해 선수는 뛰어난 재능과 자질만 있으면 어느 시점에서든 어느 팀이든 옮기고 계획하는게 가능해 오히려 쉬웠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서 볼때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고 잘 이끄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유소년 축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5~6살 선수가 좋은 지도자를 만나 체계적 훈련을 받는게 성인축구보다 의미있다는 겁니다.
 감독은 월드컵 전망에 대해 연초부터 실시한 전지훈련 성과에 만족을 표했습니다. 여러 경기를 통해 이달 중순 대표팀 소집때까지 훨씬 좋은 상황에서 선수들을 이끌게 됐다고 만족해 했습니다. 선수들의 체력과 경기력을 확인했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향후 소집때 선수 역량을 변화를 지켜보고 엔트리를 확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외국대표팀은 자국 리그 사정으로 5월21일께 소집하는데 한국은 약간 빨리 소집해 팀을 만들어가고 선수들 기량을 다시 끌어 올려 월드컵을 맞겠다고 밝혔습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지금은 마무리 단계지만 한국축구팬들의 기대치가 높은 점을 잘 안다"며 "기대치가 낮다면 월드컵에 안 나가고 집에 있는게 나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또 "2002년이 한국축구 영광의 해였다면 올해는 나 자신을 비롯해 코칭스태프, 선수들 모두 나가서 자신있는 플레이를 할 것"이라며 "다시 한번 전 세계를 놀라게할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배경으로 "한국대표팀에는 2002년 월드컵때 뛴 6~7명의 선수가 있고 이들은 지난 4년간 또한번 성숙했다. 일부는 세계 최고수준의 리그에서 뛰며 경험을 쌓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는 전훈때 국내파 선수들이 운동장과 훈련장에서 보여준 의지와 팀에 대한 헌신, 기강, 투지는 100%라고 평가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한국대표팀이 개개인은 타국 선수에 뒤질 수 있겠지만 팀으로는 우월할 가능성이 크다며 선수들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했습니다. 남은 기간 중점을 둘 부분에 대해서는 공수 전환시 전체적 균형을 갖추는게 중요하다고 소개했습니다. 선수들이 공수전환시 각자의 역할을 잘 이해하고 공격하다 공을 뺏기면 머리 속에서 자동적으로 다시 수비모드로 전환해 실행하도록 해야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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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랑스런 나무들 |
2006.04.06 02:01:39 |
(사진 정광주 2006.4.4경주) 가장 사랑스런 나무들, 벚나무가 이제 가지를 따라 한껏 피어 공중에 걸렸네 벚나무는 나무들 사이 도로 주변에 섰네 부활절을 맞은듯 흰옷을 입고서
하여 내 생애 예순하고도 십 년 가운데 스무해는 결코 돌아올 수 없겠네 그러니 칠십 평생의 봄에서 스무 봄을 제하면 남은 건 겨우 쉰 번의 봄 뿐
앞으로 봄마다 만개한 벚꽃 보기에 쉰 번의 봄은 너무나 짧겠네 슾 속 사이 나는 가리 눈 송이처럼 하늘에 달린 벚꽃을 보러
- 제가 좋아하는 영국시인 A.E. 하우스먼의 시 '가장 사랑스런 나무'의 전문(全文)입니다. 하우스먼은 비록 현재는 다소 잊혀졌지만 영국문학사에서 현대시를 한꺼번에 바꿔놓은 T.S. 엘리엇이 등장하기 전까지 가장 명성높은 시인이었습니다. 그는 자연의 어두운 측면을 많이 다뤘고 아름답지만 인간의 운명이나 감정에는 무관심한 어떤 것이라고 갈파했습니다. 때문에 인간은 인생과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있을 때 즐겨야 한다고 넌지시 제안하지요. 하지만 하우스먼이 보여주는 작품세계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처럼 'Carpe diem'적인 세계관과는 괘를 달리 한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들은 진한 숙명주의적 세계관과 더불어 세상과 인생에 대한 파멸적인 시각을 깔고 있지요. 이 작품에서도 작중 화자는 칠십 평생에서 고작 20년이 지났을 뿐인데 이제 오십년 밖에 안 남았다고 엄살을 떨고 있습니다. 아니 엄살이 아니라 인생을 즐길 날은 정말이지 얼마 안 남았다고 불안해하지요. 하우스먼은 캠브리지대학에서 라틴어와 고전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였습니다. 항상 근엄하고 학생들에게 딱딱하기 서울역에 그지 없는 라틴어강의를 하는 노학자의 모습이 떠오르십니까. 이런 학자의 내면에는 언제나 20대 초반 청년의 인생에 대한 조바심과 까닭모를 비애감이 감돌았던 겁니다. T.S. 엘리엇도 '황무지'로 시단에 충격파를 던지기 전에는 런던의 한 은행창구에서 따분하게 돈나발이나 세던 일개 직장인이었습니다. 그러던 이들이 보여준 작품세계는 당대의 상식을 뛰어넘어 세인들의 일상적인 정경을 사정없이 깨뜨렸습니다. 제가 그의 작품과 세계관을 좋아하는 이유를 아시겠는지요.. (식목일의 봄날 경주 보문단지에 일하러 나갔다가 느닷없이 활짝 핀 벚꽃을 보고 하우스먼을 떠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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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박물관 마당은 차밭(茶田) |
2006.04.04 13:59:58 |
식목일도 아닌데 여러 사람이 모여 땅에다 무언가 열심히 심고 있습니다. 4월3일 오후 국립경주박물관 마당의 야외광장입니다. 이날 심은 것은 다름아닌 차(茶) 묘목 700그루였습니다. 어린 차나무 외에도 대추나무, 감나무, 자두나무 등 다양한 유실수(有實樹)들이 대지에 뿌리를 뻗게 됐습니다. 경주박물관은 지난해 식목행사때 야외광장에다 차 묘목 100그루를 심고 관리한 결과 식목규모를 확대하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차 나무는 심은지 3~4년이 지나야 제대로 된 찻잎을 딸 수 있다고 합니다. 박물관은 앞으로 이곳에서 찻잎을 수확해 관광객이 체험하게 할 예정입니다. 그렇게 되면 박물관에 와서 신라시대 조상들이 남긴 문화유산을 감상하고 찻잎도 따는 프로그램이 가능해져 그야말로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시간을 가질 전망입니다.
 이날 식목행사에는 김성구 관장(윗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과 내빈들도 직접 참가했습니다. 김 관장은 2년전 취임한 이후 조경 전문직을 채용하고 박물관 구내에 있던 외래종 나무를 뽑아내는 등 전통 조경을 갖추는데 힘써 왔습니다. 앞으로 수년뒤면 번듯한 차 단지가 이곳에 들어서 관람객들을 맞겠지요?
 차나무 묘목을 심기에 앞서 박물관내 어린이박물관에서 제1기 차(茶)문화대학 입학식이 열렸습니다.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간에 걸쳐 매주 월요일 오후 2시~4시 사이 마련됩니다. 전문강사의 지도로 차 문화 입문을 비롯해 차 마시는 예절과 규례 등을 실습한답니다. 1기 수강생들은 여성 30명으로 구성됐고 내년에는 상하반기로 나눠 2,3기를 모집할 예정입니다. 경주박물관측은 차문화대학을 열게된 배경으로 일반인들에게 다양한 문화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박물관 이미지를 높이기 위함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제부터 경주박물관을 찾으신다면 문화재와 더불어 앞마당 한켠의 야외광장에 마련된 차밭도 둘러보기를 권합니다.
차나무 묘목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참 연약하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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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카우보이 한국소 잔등에 타다 |
2006.03.14 14:29:19 |
지난 주말과 휴일 2일 연속으로 소싸움축제가 열리는 경북 청도에 다녀왔습니다. 매년 이맘때면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데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개막일인 3월11일은 전국을 강타한 황사 때문에 바깥 나들이하기에 좋은 상황은 아니었죠. 그렇지만 아침 일찍부터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청도 이서면 서원천변에 마련된 특설경기장을 찾기 시작해 오후 2시 개막식때는 수만명에 달하는 관람객들이 스탠드를 가득 메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행사가 의례껏 그렇듯이 참석한 내빈들이 줄줄이 인사말을 하는 바람에 관중들이 야유를 던진 것은 애교로 볼 수 있겠죠. 개막기념으로 싸움소 국제전이 열려 한국소 '야수'가 일본소 '마나부'와 미국소 '네바다'를 차례로 꺾자 관객들의 흥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둘째날은 올해 소싸움축제의 특별이벤트로 미국 프로 로데오선소 초청 한우를 이용한 로데오가 펼쳐졌습니다. 미국 카우보이가 한국소 잔등에 올라타고 벌이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구경거리였죠. 현장에 다녀온지 며칠 지난 지금도 싸움소들이 내뿜은 콧김과 뿔, 1t에 육박하는 큰 덩치, 이 모든게 눈에 선합니다. 내년 행사가 슬슬 기다려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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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 틈바구니에서 |
2006.02.17 17:59:08 |
'홍일점(紅一點)'이라는 말이 있지요. 남성들 일색인 장소에서 여성 혼자 독야청청할 때 이르는 끌리쎄.. 그런데 '청일점(靑一點)'이라는 말이 원래 있는지 모르겠는데 요즘은 더러 쓰는 경우를 봅니다. 제가 며칠전에 이 청일점 상황을 맞았습니다. 이번달 9일부터 10일 사이 경주 보문단지 한 호텔에서 주한 미국대사관과 S리더십개발원 여성리더십센터 공동주관으로 한미공동세미나가 열렸더랬습니다. 경주를 담당하는 저한테 취재요청이 들어왔지요. 우선 행사 관련 자료를 확보해 기사처리를 하고 업무처리를 하다보니 개막시간에 많이 늦었습니다. 자료에는 오후 2시부터 시작한다고 돼 있었는데 행사장에 닿은 시간이 오후 5시, 무려 3시간이나 지났어요. 늦은게 미안해 행사장 문을 살짝 열고 발길을 들여 놓았는데 순간, '이거 들어가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행사장을 메운 참석자 30여명이 모두 여성들이었기 때문이었죠. 60여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저를 쳐다보는데(진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느껴지더군요) 몸둘 바를 모르겠다는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다행히 제게 연락을 했던 미대사관 담당자가 일어나 자리로 안내하는 덕에 어색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날 주제는 '여성 리더십의 새로운 지평: 여성, 공동체를 디자인하다!'였습니다. 참석한 분들도 국내 각종 자치단체와 NGO, 정당 등에서 활동하는 여성 전문가들이었습니다. 다들 자기 분야에서 한 가락하는 쟁쟁한 분들이었죠. 주제발표를 한 사람은 미국 워싱턴D/C 소재 아메리칸대학의 여성정치학연구소 부소장을 맡고 있다는 사라 브루어(Sarah Brewer) 박사였습니다. 사진에서 왼쪽에 일어서 두손을 앞으로 모으고 있는 사람이지요. 이 분은 워싱턴에서 정당활동에 참여해 선거캠페인과 기금조성 사업 등에 참여한 경험을 가졌다고 소개됐습니다. 인상이 꼭 미국 드라마 'Sex & City' 주인공인 캐리를 연상시키더군요. 갸름한 얼굴형에 심하게 고불고불한 머리카락, 전문직 여성답게 단정히 받쳐입은 재킷.. 이날 행사장이 마침 APEC회의때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가진 장소라는 사실이 참석자들의 흥미를 끌었습니다. 진행자가 이 사실을 환기시키자 방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며 당시를 떠올렸겠죠. 진행자는 한쪽 벽면에 놓인 병풍을 가리키며 "저 병풍도 정상회담 당시 놓였던 그 병풍입니다"고 멘트를 날려 한바탕 웃음이 터졌습니다. 어떤 이는 "네~ 가르쳐줘서 고맙습니다~"라며 우스개로 답하더군요. 어쨌든 이날 행사는 미대사관에서 주최하는 만큼 모든 과정이 영어로 진행돼 저를 또한번 당혹케 했습니다. 행사 진행측도 한국인이었지만 유학이라도 다녀왔는지 네이티브 스피커 수준으로 강사 및 대사관측과 대화를 나누더군요. 저를 도와주려고 대사관 관계자가 옆자리를 지켰지만 대화 하나하나 모두 통역해 달라고 하기도 뭐해서 그냥 AFKN 듣듯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날 행사를 마치고 귀가하면서 "새해에는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이를 악물었더랬습니다. 부끄~
* 글을 쓰고 보니 블로그에 올릴만한 내용은 별로 없지만 워낙 블로그를 내버려둔지 오래돼서 걍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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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탑이여 감은사탑이여 |
2005.11.14 12:00:15 |
동해구에 있는 감은사탑을 1950년대에 찍은 사진입니다. 동해구(東海口)란 말그대로 '동해바다의 입구'란 뜻인데 신라 수도 서라벌의 토함산 계곡에서 흘러나온 물이 모여 동해로 합류하는 하구(河口) 일대를 일컫는 말이지요. 중앙박물관장을 지낸 황수영 박사가 자신의 저서에서 쓰기 시작해 통용되는 표현입니다. 동해구에는 3대 중요 문화유산이 존재하는데요, 문무대왕의 호국의지가 담긴 수중릉, 그 아들 신문왕이 아버지 무덤을 보기 위해 만든 이견대, 감은사터가 그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문무대왕은 삼국통일을 완성해 보통 왕이 아니라 대왕으로 불리는 분인데, 돌아가시며 "죽어서 왜병을 무찌르는 호국룡이 되겠다"며 유언을 남겼지요. 아들 신문왕은 왕위에 올라 2년만에 부왕(父王)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에서 감은사를 창건했습니다. 절터를 가보면 금당터 계단 아랫쪽에 동쪽을 향한 구멍 하나가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아버지 용이 절에 와서 다니기 편하도록 했다는 겁니다. 발굴 결과에 따르면 금당 주춧돌이 이례적으로 땅위로 올라와 있는 구조로 돼 있어 건물 마룻바닥 밑으로 용이 돌아다니도록 했다는 전설이 허튼 소리는 아닌 모양입니다. 일설에는 석굴암 본존불의 시선이 동해구를 향하도록 했다는데 이것의 진위는 잘 모르겠습니다. 감은사터에는 높이 13.4m짜리 대형 3층석탑이 2기(基) 있습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감은사탑을 보면 '아 감은사탑이여 감은사탑이여'라며 감탄 밖에 안 나온다"고 읊었는데 현장에 가면 이 비슷한 기분을 느끼는 분들이 많아 보입니다. 마치 마징가Z처럼 높이 솟은 탑을 올려다 보노라면 자질구레한 찬사는 아무 짝에도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지요. 사진은 감은사터의 북동쪽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지금은 다 철거됐지만 당시에는 사찰내 강당터까지 초가집 민가가 들어서 있었지요. 오른쪽에 있는 서탑(西塔)은 올해 연내로 부분 해체될 예정으로 지금 가보면 주변에 공사용 비계가 설치돼 있습니다. 올 가을, 경주 감포를 찾아 신라왕들의 2대에 걸친 나라사랑과 부정에 감읍하는 아들왕의 애틋한 심정을 따라가 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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