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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자무환이다 2012.07.31 16:31:17


<스틱스>-10

--우리 군대(자이툰 부대)가 결국은 이라크 북부의 아르빌 쪽으로 전개됐는데요.

▲제가 이라크에 있을 때는 파병 후보지를 놓고 설왕설래할 시기였습니다. 파병은 제가 귀국하고 나서 이뤄졌는데 당시 파병 후보지로 중부의 나자프와 북부의 키르쿠크 및 하위자, 쿠르드 자치지역인 아르빌 등이 거론됐습니다. 그러다가 아르빌로 낙착이 됐지요.

<내 이라크인 동료들..왼쪽이 무라드, 오른쪽이 나자 씨다. 지금까지 무사한지 모르겠다. 함~두릴라..>

--결과적으로 잘된 결정이었나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평가가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장병의 안전 문제만을 놓고 본다면 매우 훌륭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파병의 명분이 됐던 전후 재건의 잣대를 들이대면 아주 엉뚱한 곳에 군대를 보냈다고 말할 수도 있어요.

--무슨 뜻이죠.

▲미국의 침공에 의한 이라크 전쟁은 2003년 3월20일(한국시간 3월21일) 발발했습니다. 그런데 쿠르드 자치지역으로 분류되는 아르빌은 이 전쟁하곤 사실 전혀 상관이 없는 곳입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발발한 1991년 걸프전쟁 이후 쿠르드 지역은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국들의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에 힘입어 사실상 준(準) 독립지로서의 위상을 굳혀 가는 상태였습니다. 이라크 전쟁 때도 미국을 위시한 다국적군의 폭격이나 공격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었던 곳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후재건이란 명분의 사업이 벌어질 이유가 없는 곳이라는 얘기죠.


<미군이 통제선을 두른 바그다드공항 외곽 초소와 공항 사이를 오가는 셔틀 버스 내부 모습. 뜯어내지 않은 비닐이 눈에 띈다..바그다드공항은 미군사령부의 주둔지였다.>

--당시에 가장 보람을 느낀 점을 꼽는다면요.

▲이라크 전후의 혼란상황에 대한 성격을 저항으로 규정한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당시 이라크 관련 뉴스를 서방 언론 매체의 시각으로만 전했다면 테러리즘이라는 잣대만을 들이댔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줄기차게 저항이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이라크 전후 혼란을 이끄는 세력의 성격을 테러리즘의 틀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생각합니다.

"만날 여기저기서 쾅! 쾅! 이제 신물이 난다. 어서 뱅기 타고 이라크를 떠야겠다."<바그다드공항 터미널행 버스승객 일동 2004.4.29>

-- 느닷없이 고른 아이템이었는데 이런저런 시사점이 적지 않았던 거 같네요. 

▲식자우환(識字憂患)이란 얘기가 있잖습니까. 아는 것이 오히려 근심의 씨앗이 된다는 말이죠. 그러나 기자에게만큼은 이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기자에겐 무조건 식자무환(識字無患)이 정답입니다. 아는 만큼 보입니다. 모르면 기사에 담아야 할 내용물을 접하고도 놓칠 수 있습니다.  공자님 말씀 같지만 취재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사전 연구와 정보수집이 중요합니다. 물론 기자라면 편향되지 않은 시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과  고민도 늘 해야겠죠.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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