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홈연합 블로그 홈블로그홈  l 로그인
하얀매화
http://blog.yonhapnews.co.kr/lwm123/
[리빙프라자] 하얀매화
이전달 2014 7 다음달 12 토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카테고리
최근포스트
최근코멘트
최근방문자
포스트 : 6
코멘트 : 1
트랙백 : 597
방명록 : 9
방문자 : 95929
오늘 : 43
RSS구독 RSS 2.0 (?)
Comment RSS 2.0
검찰의 칼은 `活人劍'인가 `殺人劍'인가 2005.06.08 10:26:17

철도공사의 수사가 한창일 때 검찰의 한 인사가 수사브리핑을 하면서  선문답을  해 화제가 됐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그 가운데 `활인의 검'을 논한 멘트가 나왔다.
`최고의 무사는 쳐서 이기지 않고 이긴 다음에 친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고기잡이의 예를 들어보자.
어부①이 저수지의 고기를 잡기 위해 작살을 가지고 물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았다.
어부②는 물속의 고기를 잡기 위해 고기가 도망갈 곳이 없도록 물을 뺀 뒤 물고기를 잡았다.
어부①은 `쳐서 이긴것'이고 어부②는 `이긴 다음에 친것'으로 보면된다.
쳐서 이기려면 십중팔구 상대가 상하게 된다(작살을 가지고 들어간  어부가  고기를 잡으려면 작살을 사용해야 하니까)
이긴 다음에 치면(어부②의 경우) 상대를 상하게 할 수 도 있고 상하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물이 말라버린 곳에 있는 그 물고기의 생사여부는 어부의 맘에 달려  있다. 고기를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는 어부의 몫이다. 어부는 활인검을 행사할  것인가 살인검을 행사할 것인가?
제목으로 돌아가자.
검찰은 공권력을 행사하는 가공할 무력을 가졌다는 면에서 `살인검'의 경지는  넘어섰다.
검찰은 국민이 위임한 칼을 가지고 법을 어긴자를 `단죄'한다.
철도공사의 유전의혹에 대해 검찰이 칼을 뽑았을 때 국민은 의혹을 속시원히 해결하길 바랐을 것이다.
한달여의 수사끝에 검찰은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의 칼에 정부의 주요 인사  몇명이 구속됐다. 그러나  많은 국민은 검찰의 수사를 속시원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핵심을 밝혀 단죄하면 국민의 속을 시원하게 할 수 있다.
결국 국민이 바라는 검찰의 칼은 `쳐서 이기건' `이긴 다음에 치건' 범죄자를  끝까지 찾아내 `단죄'하는데 쓰라는 것 같다. `단죄'이후에 `살려주는가 마는가'는 검찰의  몫이 아닌가 보다.
다시 예를 들자.
어부②는 물주와 아래와 같은 계약을 맺었다.

계약: `어부는 고기만 잡고 고기를 살릴 것인지 말 것인지는 물주의 처분에 맡긴다'

    그렇다면 그 어부의 칼은 `활인검'인가 `살인검'인가?
    마찬가지로  `이긴 다음에 친다'는 검찰의 칼은 `활인검'인가 `살인검'인가 아니면 `제3의 검'인가?
    판단은 네티즌의 몫이다.  

코멘트(1)     트랙백(9)
활인검과 살인검은 백지한장 차이 2005.05.16 10:43:14

지난 일요일에 집 근처 산에 올랐다.
올해는 유난히 나뭇잎을 갉아먹는 송충이들이 많았다.
등산화 밑에서 꼬물거리며 기어가는 어린 송충이들의 생명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이다.
아장 아장 걷는 어린이의 조막만한 발도 그 송충이의 앞에는 가공할 무력이다. 어린아이의 마음 먹기에 따라 송충이는 죽거나 산다.
필자는 눈에 보이는 송충이를 차마 밟고 지나가지 못했다. 송충이에게 필자는  살인검인가 활인검인가?
활인검이 되기위해서는 전번의 글 '이순신의 칼은 활인검…'에서  말했듯이  상대를 확실히 제압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활인검의 정의를 단순화 시키면 첫째 누구와 붙어도 이길수 있는 실력, 둘째 측은지심이나 자비, 정의감 등의 마음 가짐을 갖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순신의 칼과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칼이 살인검인가 활인검인가를 논할 때의 그  칼은 넓은 의미의 칼-무력-로 해석해야 한다.
아무려면 이순신과 도요토미가 실전 고수 검객들의 칼솜씨를 당해냈겠는가?
우선 위 활인검의 정의를 대입해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칼을 분석하면 그는  살인검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일본을 통일하다시피한 가공할 무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상대방을 마음으로 굴복시키거나 측은지심, 자비심, 정의감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따라서 히데요시의 칼은 살인검이다.
그렇다면 이순신장군의 칼은 어떤가?
공격해 들어오는 왜적과 마주쳤을 때 그는 `백전 불패'였다.
그는 가공할 무력을 가졌으므로 살인검의 경지는 도달했다.
그는 나라를 침략한 세력과 백성을 학살한 세력에 맞서 무력을 행사했다.
그는 나라를 살리고 백성을 살리기 위해 부득이 검을 뽑았음으로 활인의 검을  행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넓은 의미의 활인검을 행사했지만 좁은 의미의 활인검 즉 상대를 죽이지  않고 이기지는 못했다.
그래서 전번의 글에서 언급했듯이 사용하면 치명적인 `칼'을 사용하면서 칼로  사람을 살린다는 의미의 `활인 검'은 모순이며 칼을 다루는 사람들의 `理想'이라고 지적했다.
가공할 무공을 갖춘자가 활인검이 되는가 살인검이 되는가는 그 사람의  마음가짐에서 갈린다. 실력은 백지한장 차이다. 살인검과 활인검은 백지한장의 무게나  틈에서 갈린다. 그러나 그 백지한장은 정신의 무게이다.
넓은 의미에서 이 글을 읽는 네티즌은 모두 검객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활인검인가 살인검인가는 백지한장 차이 즉 정신의 무게이다. 살인검이 될 것인가 활인검이  될 것인가? 그것은 개개인의 몫이다.
우리 역사상 제대로 활인검을 행사한 사람을 소개한다.
그는 놀랍게도 무장이 아니라 고려시대 문신이었다.
가공할 무력으로 우리나라를 침략한 거란에, `빛나는 정신'으로 맞서, 거란의  황제를 마음까지 제압해 그들을 철수 시키고 수백마리의 말도 전리품(?)으로 받아왔으며 훗날 강동6주를 개척했다 전해진다.
그 기록을 소개한다.

    徐熙
    
     서희의 小字는 廉允이니 內議令 弼의 아들이다. 光宗 11년에 나이 18세로   甲科에 발탁되어 廣評員外郞을 超授하였다.  成宗12년에 契丹의 遜寧이  80만  군사를 이끌고 만일 江에 나와 항복하지 아니하면 마땅히 진멸할 것이니 君臣은 마땅히  속히 軍前에 항복하라 하였다.  성종은 군신을 모아 의논하니 혹은 西京 이북의 땅을 베어 주기를 청하자  성종도 이를 쫓으려 했다.  이에 서희는 "싸움의 승부는  강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능히  틈을  보아서 동할 거이어늘 어찌 가히 갑자기  버리게 하나이까 땅을 베어 적에게 주는 것은 萬世의 치욕이오니 원컨데 車駕는  도성에 돌아가시고 臣등으로 하여금 한 번 더불어  싸운 뒤에 논의하는 것도 늦지  않겠나이다"하니 성종이 그렇게 여겼다.  손녕이 항복을 재촉하면서 "大臣을 군전에  보내어 면대케하라"고 하거늘 성종은 群臣을 모아 놓고 "누가 능히 거란의 진영에  가서 口舌로써 軍士를  물리쳐  萬世의 功을 세우겠느냐"고 하니 군신이 응하는 자 없거늘 서희가 아뢰기를 "臣이 비록  불민하오나 감히 명령대로 하지 아니하리까"하였다. 서희와 손녕이 동서로 대좌하자 손녕이 말하기를 "그대 나라가 新羅땅에서 일어났고 고구려 땅은 우리의 소유인데 그대가 침식하였고 또 우리와 連境하였는데도 바다를 넘어 宋을 섬기는 고로 오늘의 出兵이 있게 된 것이니 만일 땅을 베어서  바치고 朝聘을 닦으면 가히 무사할 것이다"하거늘 서희가 말하기를 "아니다  우리나라가 곧 고구려의 舊地이다. 그러므로 국호를 高麗라 하고 平壤에 都邑하였으니 만일  地界로 논한다면 上國의 東京은 다 우리 경내에 있거늘 어찌 침식이라 하리오  그리고 압록강의 內外도 또한 우리의 경내인데 지금 女眞이 그 사이에  盜據하여  頑 하고 變邪하여 길의 막힘이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더 심한지라 조빙의 불통은 여진  때문이다. 만일 여진을 쫓고 우리 구지를 돌리어 城堡를 쌓고 도로를 통하게 하면  감히 修聘하지 아니하리오. 장군이 만일 신의 말로 써 天聘에 遠케하면 어찌 哀矜히 여겨 嘉納하지 아니하리오"하니 손녕이 契丹帝에게 아뢰니 帝가 말하기를  "고려가  이미 화해를 청하니 명을 罷할 것이다"고 하였다. 서희가 거란영에 7일간 머물다가  돌아오는데 손녕이 낙타 10마리, 말 1백필, 양 1천두 등을 주거늘 성종이 크게 기뻐했다. 그리하여 흥화진, 용주, 귀주, 철주,  통주, 관주의 6주를 획득했다.
                         (高麗史 권 94 列傳 권 제7)

코멘트(0)     트랙백(309)
이순신의 칼은 `活人劍', 도요토미의 칼은? 2005.05.03 15:10:10
이순신의 칼은 `活人劍', 도요토미의 칼은?
    `活人劍'이냐 `殺人劍'이냐를 가릴 때의 그 검은 의사의 칼이나 가정주부의  칼처럼 사람을 살리거나 이롭게 하기위해 쓰이는 것이 아니고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쓰이는 무기다.
    말이 `제압'이지 칼이라는 물건은 사용하면 총과 마찬가지로 치명적이다.
    따라서 칼로 사람을 살린다는 뜻의 `활인검'이란 말은 모순일법 한데 검을 다루는 사람의 최상의 목표는 `활인검'이다.
    필자는 활인검에 대해 2가지로 나눠 나름의 생각을 정리했다.
    △협의(실전적 의미)의 활인검과 △광의(이상적 의미)의 활인검-이 두가지의 경우를 설명하면 이순신장군의 칼과 `도요토미 히데요시' 칼의 차이점을 판단할 수 있지 않을 까?

아산 현충사에 보관돼 있는 이 칼은 선조 27년(1594) 4월에 한산도 진중에서 당시 칼을 만드는 대표적인 장인으로 이름난 태귀연과 이무생이 만든 것으로 충무공께서 항상 벽에 걸어두고 보면서 정신을 가다듬으시던 칼이다. 칼 위에는 각각 장군의 친필 검명(劍銘)이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석자되는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 197.5cm, 5.3kg

    우선 실전적 의미의 활인검에 대해 간단한 예를 들면, 칼을 잡고  적과  1대1로 마주쳤을 때-
    이 때 자신을 지키면서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까지 완전히 굴복시켰다면 그는 `활인의 검'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더 나가가  싸우지 않고도 상대를 이겼다면 더 높은 경지의 활인의 검을 사용한 셈이 된다.
    이같은 활인 검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엄청난 수련이 요구된다. 검을  사용하는 기술과 힘이 누구보다 강해야 하며 자신감 또한 충만해야 한다. 이 경지에  오르려면 어떤 상대를 만나도 확실히 제압할 수 있는 `살인 검'의 경지에  먼저  오른 뒤에야 가능할 할 것 같다.
    이전의 글 `한산섬 달 밝은 밤'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상대를 이긴 뒤'가  중요하다.`살인 검'은 이기기만 했지 이긴 뒤의 마음 없다. 이 때 `마음'이라 하는 것은 불가에서 말하는 `자비', 유가에서 말하는 `측은지심' 등의 뜻이 아닐까? 따라서 살인의 검은 `철학의 빈곤자'가 아니면 `악인'이라 볼 수 있다. 즉 검이  道(검술→검도)의 경지에 이르려면 기술만 가지고는 안된다.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  경지를 넘어섰을 때 비로소 `활인의 검'이 탄생한다. 간단히 검의 경지를 설명하면 △막검(마구잡이검?)→살인검→활인검 순이 아닐까.
    따라서 섣불리 활인의 검을 논할 수 없다. 그 것은 어쩌면 검을 다루는 모든 이의 `理想'일지도 모른다.
    이글의 주제 '이순신의 칼과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칼은 살인검인가 활인검인가?'는 필자도 일주일 정도 더 생각해 볼 생각이다.
    일본의 검성으로 인정받는 `쓰가하라 보구텐'의 일화를 간단히 소개하면서  `실전적 의미의 활인검' 論을 마친다.
    보쿠덴이 배를 탔다. 그 배 안에 손님이 6-7명 있었다. 그 중에 37세 정도의 건장한 무사도 있었다. 그 무사는 배 안에서 칼을 빼면서 자신의 무예솜씨를 자랑했다.
    보쿠덴은 말했다 "나도 칼을 조금 다루지만 당신처럼 곧바로 칼을 빼는 것은 미숙한 증거라고 할 수 있소"
    무사-"당신은 어떤 유파인가?"
    보쿠덴-"무수승류(無手勝流-`칼을 쓰지 않고 이기는 유파' 정도로 해석하면  될 듯)"라고나 할까?
    무사-"칼을 쓰지 않고 이길 수 있다니.. 한판 붙자"
    보구텐-"좋다. 나의 검은 활인검이지만 거만한 놈에 대해서는 살인검으로  변하니 조심하기 바란다"
    그 뒤 보쿠덴은 뱃사공에게 좁은 배에서 싸우면 승객들이 다칠 수 있으니  저기 보이는 작은 무인도에 배를 대도록 요청하면서 결투가 끝난 뒤 돌아가야 하니  배를 세워놓고 탄 사람들과 함께 배 안에서 결투를 구경하도록 했다.
    배가 섬에 닿기가 무섭게 건장한 그 무사는 큰 칼을 빼어 들며 섬으로 뛰어  내렸다.
    검성 보쿠덴은 두 칼을 허리춤에서 빼어내어 사공에게 맡긴 뒤  뱃머리의  노를 받아들고는 뱃전에 서서 바로 뛰어 내릴 듯 하더니 갑자기 노를 강바닥에 대고 밀어 배를 섬에서 밀어냈다. 배는 서서히 강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보쿠덴은 섬에 남아 발을 동동 구르는 무사를 향해 말했다.
    "이 것이 무수승류이다, 그 안에서 실컷 대책이나 강구하라"<`재미있는  검객이야기'- 유재주 편역 참고>
    
코멘트(0)     트랙백(258)
한산섬 달밝은 밤에 큰 칼 옆에 차고… 2005.04.27 15:48:05
한산섬 달밝은 밤에 큰 칼 옆에 차고…
칼은 어떻게 차는 것이 실전(實戰)적일까?
여기서 칼이라 하면 양날이 있는 검(劍)이 아니고 한쪽만 날이 서 있는 도(刀)를 말한다.
이순신 장군께서 나라를 생각하면서 지었다는 `한산섬 달밝은 밤에'란 詩에 보면  `큰 칼 옆에 차고'라는 구절이 나온다.
장군께서 찬 칼도 날이 한쪽만 있는 칼(刀)이었을 것이다. `찼다'는 의미는 칼을 손에 들었다는 것이 아니고 옆구리에 찼다는 것을 의미한다.
칼은 날카로워 칼집에 꽂은 뒤 차거나 들고 다닌다. 문제는 칼을 왼쪽 옆구리에  찰때 칼등이 위로 올라오게 차는 방법과 칼날이 위로 올라오게 차는 방법이 있다.
영화 등에서 보면 두 경우를 다 볼 수 있다.
문제는 `어느 방법이 실전적이냐'이다. 알기쉽게 그림을 보자

①은 칼등을 위로 




                                                     ②는 칼날을 위로 한 경우다.

 ①,② 가운데 어느 것이 실전적인가?
필자가 원하는 답은 ②번이다.
이해를 돕기위해 다음 그림을 보자.


                                                     ⓐ는 칼등을 위로해서 걸어놓은 것

                                                   ⓑ는 칼날을 위로해서 걸어놓은 것

칼날을 위쪽으로 걸어 놓아야 칼날이 상하지 않고 날카로움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 까? 칼집에 칼이 들어 있어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예리한 칼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 맞지 않을까.
ⓑ가 맞는 이유가 2가지 더 있다.
글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칼을 허리춤에 찬 상태에서 칼을 뽑을 때 ⓑ의 경우가 행동반경이 짧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가장 중요하고 음미할 만한 경우가 검을 사용한 뒤 칼집에 꽂을 때이다. 이 때 ⓑ의 경우가 매우 실전적이며 `프로페셔널 칼잡이'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검도에서 `존심(存心)'이라는 말이 있다. `남아있는 마음'이라는 이 단어의 뜻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이다. 상대방을 유효타격으로 제압한 뒤에도 방심하지 않고 확인한다. 승리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 담긴 이 용어가  `검술'을 `검도'의 경지로 승화시킨 것으로 필자는 이해했다.
칼을 다 쓴 뒤에는 칼집에 칼을 꽂아야 하는데…(물론 진 사람은 칼을 칼집에  꽂을 수 없을 듯)
    적어도 칼을 보지 않고 칼집에 칼을 꽂아야 고수의 칼이라 할 수 있지 않을 까? 서부영화에서 쌍권총잡이들이 총을 쏘고 난 뒤 보지도 않고 두팔을  돌리며  권총을 허리춤 권총 지갑에 착 넣는 장면을 생각하면 된다.
    칼날이 위로 올라온 상태에선 보지 않고 칼을 칼집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칼날이 밑으로 내려온 경우는 장담할 수 없다, 아마 십중 팔구는 손이 잘리거나  베일 것이다. 필자가 컴퓨터 실력이 좋고 시간이 많으면 동영상을 띄워 설명할  수  있을 텐데 아쉽다.궁금하신분은 인터넷 검색창에 `거합'이란 단어를 쓰고 찾아 보시길 바란다.
 
4월28일은 이충무공께서 탄생하신 날로 충남 아산현충사에서는 제460회 이충무공 탄신기념 다례행제가 거행된다.    
    이순신장군께서 나라를 걱정하시면서 지었다는 詩 `한산섬 달 밝은 밤에'의  전문을 소개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한산섬달밝은밤에수루에홀로앉아
    큰칼옆에차고깊은시름하는차에
    어디서일성호가는남의애를긋나니
    (밝은 달이 비치고 있는 한산섬 깊은 밤에 높은 망루에 혼자 앉아서 큰 칼 옆에 차고 나라의 운명을 생각하며 큰 걱정에 잠겨 있는데 누가 부르는 소리인가. 한  가닥의 피리소리가 나의 창자를 끊듯이 슬프게 들리는 구나.)

코멘트(0)     트랙백(2)
동북아 최고의 실전 검객은 누굴까? 2005.04.19 15:32:49
  역사적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 가운데서 최고로 칼을 잘썼던 사람이 누구인지를 가려내는 것이 문제다. 
  지금은 검보다 훌륭한 무기가 얼마든지 있어 칼을 실전으로 사용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칼을 과거처럼 연마할 필요가 없으니 검의 최고수는 과거의 인물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칼보다는 활을 잘쓴 민족이어서 그런지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에는 칼을 잘썼다는 인물이 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칼의 최고수를 가릴 때 우리나라는 좀 그렇다. 그렇다면 중국과 일본의 인물 가운데서 가려야 하는데...
  조선 정조 임금께서 명하시어 실학자 이덕무와 박제가 등이 펴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林東圭 역)'에 보면 `왜검(倭劍)'에 대한 설명이 많이 나온다.
  최고의 칼잡이가 나오려면 우수한 칼을 만들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 그런면에서는 일본이 3국 가운데 가장 우수한 것으로 보인다. 
  무예도보통지에 따르면 한 중국인이 일본의 칼을 일컬어 "(일본의)칼은 극히 강하고 날카로와서 중국이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전하고 있다. 
  거기에다 일본에는-미국에서 총잡이가 판친 시대가 있듯이- 칼잡이들이 판친 시대가 400년정도 계속되면서 검의 명인들이 무수히 나타났다 사라졌다. 
  무예도보통지가 편찬된 시기(서기 1790년) 이후에도 일본에서는 사무라이들이 여전히 칼 솜씨를 뽐내고 있었으니 무예도보통지만 근거로,  3국 역사상 최고수 칼잡이를 가려내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다. 
  어차피 여담삼아 문제를 낸 것인 만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필자가 생각하는 해답은 언월도의 달인 중국의 `관우'!
  무예도보통지에서 말하기를 칼은 왜검이 제일이다. 또 말하기를 임진왜란때 파죽지세로 올라오던 왜군을 우리가 어느 성에서 무찔렀는데 그 선봉에 놀랍게도 관운장이 청룡언월도를 들고 나타나 왜군을 쓸어버렸다. 그 사실을 기려 관우의 사당을 지었다.
  또 말하기를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언월도'와 같은 종류인 `미첨도(칼 모양이 눈썹처럼 생겼다해 붙여진 이름)'에 푹 빠져 자신의 양옆 호위무사에게 미첨도를 들게 했다.
  또 기록되기를 칼 중에는 언월도가 최고이며 관우의 언월도 36가지 사용방법이 그중에서 가장 우수하다. 하지만 안타깝도다 그 법이 전하지 않음이여- 
  그러나 이런말도 있다. 언월도는 웅장해 시연할 순 있지만 실제로 진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무예도보통지에서는 이러한 말도 빼 놓지 않았다. '(언월도를)아무나 사용할순 없지만 관우라면 능히 사용했을 것이다' 
  누가 최강의 검객인가는 맞 붙어봐야 안다. 
  그러나 역사상 유명한 검객을 한자리에 불러모을 수는 없는 일.  최종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다. 
  
  <참고>무예도보통지에는 우리의 독창적인 검법인 `본국검'이 그림으로 기록돼 있다. 본국검은 신라시대의 검법이라는 소개도 나와 있다. 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검법 그림이라는데서 우리민족의 자긍심과 무예도보통지의 가치를 새삼 느낀다.

  아래 글은 무예도보통지의 서문 전문으로 조선 정조께서 지으셨다.
코멘트(0)     트랙백(18)
쌍칼과 단칼이 맞붙는다면 누가 이길까? 2005.04.11 18:00:27
쌍칼과 단칼이 맞붙는다면 누가 이길까?
`실력이 있는 자가 이긴다`
그러나 이것은 필자가 바라는 답이 아니다.
엇비슷한 실력을 가졌을 때 양손에 각 1개의 검을 잡은 쌍칼과 검  1개를  양손으로 잡은 단칼 검객 가운데 누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을까가 문제다.
검도를 10년간 해본 필자로서는 단칼 검객 쪽에 건다.
대부분의 운동이 그렇듯 검도도 안정된 자세 즉 몸의 균형이 매우  중요하다.  몸의 균형이 잡혀야 자신을 지킬 수 있고 나아가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
양손에 검을 각각 잡으면 중심 잡기가 힘들다. 더구나 움직이면서 중심을 잡기는 더욱 어렵다.
반면 검 1개를 양손으로 잡으면 몸의 중심이 한곳으로 자연스럽게 모아진다. 움직여도 중심잡기가 어렵지 않다.
이 말이 얼핏 이해가 안가시는 네티즌 독자는 밖에 나가 길이 100센티미터 정도  되는 묵직한 몽둥이(죽도면 좋다:참고 검은 죽도보다 무겁다)를 들고 자세를 취해보길 바란다.
우리나라에도 수시로 전국규모의 검도대회가 열린다. 이 대회 참가  선수는  원하면 누구라도 단칼(죽도1개) 대신 쌍칼(죽도 2개)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단칼을 사용한다. 필자는 시간이 많지 않아 대회를 구경할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쌍칼을 사용한 선수를 10년전쯤에 한번 본 기억이 있다.
한손에 긴 죽도, 다른 한손에 짧은 죽도를 들고 경기장에 나왔었다. 그는  예선에서 탈락했다.
국내 검객들 대부분이 단칼을 쓰는 것을 보아도 쌍칼보다는 단칼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웃 일본의 경우 사무라이가 판친 시대가 있었다. 일본에서 검성(劍聖)이라고 불리는 `보쿠덴'도 단칼을 사용하는 등 대부분의 실전 사무라이들이 허리춤에 칼을  2개 차고 있지만 단칼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쌍칼의 절륜한 고수가 있다면 그는 단칼 고수를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
일본 최고의 검객으로 꼽는 `미야모토무사시'는 `당대 최고'의  명성을  얻기까지는 단칼(一刀流)이었지만 후에 쌍칼(二刀流)을 창시했다고 전해진다.
    -註:이상은 순전히 필자의 자의적인 판단이며 사례도 반드시 정확하게 제시되고 인용됐다고 할수 없음.-
코멘트(0)     트랙백(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