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치다' 라는 말이 국어사전에 안나오는 걸 보니 표준어는 아닌가 보다.
기자들 사이에서 이 단어의 뜻은 `별로 얘기 안되는 단독 기사꺼리를 과장하게 표현해 억지로 기사를 만들다' 정도의 뜻을 가진 은어다.
이를테면, 한물간 연예인이 폭력사건으로 입건된 것을 `단독'으로 포착했는데 그냥 팩트만 갖고 쓰자니 별 기사꺼리는 안되고 안쓰자니 단독 취재가 아깝고 해서 무리하게 기사를 만들다 보니 `왕년에
큰 인기를 모았던 연예인이 폭력사건으로 입건된 것은
이번주들어 처음이다'는 식으로 쓰는 행태다.
내용뿐 아니라 때론 제목을 초치기도 하고 팩트만 써도 얘기가 되는데 `파장이 마구 일고 있다'며 오바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기사도 있다.(기자가 처음 알았는데 웬 사회적 파장이 벌써 일고 있는지 원..)
요즘 기사의 통로가 인터넷이 되면서 이런 초친 기사가 눈에 자주 띄는데 그래야 네이버 주요기사에 올라 네티즌을 일단 `낚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기자를 하다보면 기업이나 정부 기관의 보도자료를 수없이 받는데 초짜 기자일 수록 초치는 보도자료에 혹해 그대로 기사에도 베끼는 경우가 많다.(나 자신도 그랬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보도자료 내용 중 80% 이상이 초친 내용이라는 것이 내 주관적 경험의 통계치다.
적당한 초치기는 기사 읽기에 감칠맛을 보태지만 그 정도가 과하면 실체를 왜곡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독자를 호도하고 그들의 판단을 흐릴 수 있다는 말이다.
비속어 한 단어를 갖고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쓴 것은 비단 기자 개인이 쓰는 기사 뿐 아니라 국가나 도시 단위에서도 이런 초치는 행태를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서다.
초를 치는 이유는 실체보다 과장되게 포장하기 위해서 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내가 있는 두바이를 가만보면 실제 대단한 것도 있지만 `초를 팍팍쳐' 실체보다 부풀려 외국에 선전된 것이 꽤 있다. 그 초에 잘 `낚이는' 나라 중 하나는 대한민국이다.
고대부터 근대까지 걸프의 변방 비문명화된 작은 부족 마을이었던 두바이는 지도자 두어명을 잘 만난 덕분에 명실공히 중동의 중심으로 급부상중이다. 인정.
하지만 존재감 제로의 역사와 좁은 땅덩어리에 대한 컴플렉스일까, 아니면 못살면서도 아직도 은근히 자신을 내려보는 이웃 중동 국가를 향한 한풀이로 봐야할까.
대학때 아르바이트했던 회사 회장의 유일한 컴플렉스는 국졸의 학력이었는데 내가 보기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웬넘의 외제 대형차는 그리 자주 바꾸고 `...위원장', `...협회장' 명함은 그리 많던지.
두바이가 유독 세계 최초, 세계 최고에 집착하는 이유도 삐딱하게 바라보면 그렇다.
두바이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에선 그들의 `초'를 읽을 수 있다.
7성호텔로 잘 알려진 `부르즈 알-아랍'의 뜻은 `아랍의 탑'이며 두바이 앞바다 인공섬 단지는 `더 월드'(세계), 최근 발표된 다른 인공섬 계획은 이를 넘어 `더 유니버스'(우주)다.
110억 달러를 들여 사막을 파서 만든다는 인공 수로의 이름은 `두바이 수로'가 아닌 `아라비안 canal(운하)'다.
총길이 75km, 폭 150m로 세계 최장 인공 수로이지만 깊이가 6m 밖에 되지 않아 수에즈 운하 같은 곳처럼 화물선은 다니지 못한다. 이 인공 수로의 목적은 수로 자체가 아니라 `수변'이다.
고온 건조한 사막에서 오아시스가 지상낙원이듯 사막에 세워진 도시 두바이 역시 물을 바라보기만 해도 건물 가치는 엄청나게 뛴다. 물이 흔한 한국에서조차 청계천 개발로 주변 건물값이 올랐는데 하물며 부동산에 목숨거는 이 곳 두바이임에랴.
인공 토목공사로라도 없던 물줄기를 파 이 수변을 노리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에 `아라비안 운하'라고 이름을 붙였다. 초를 친 것이다.
억지로 수로를 파 물을 흐르게 한 것이나 기능으로보면 이름대로 운하라기 보다는 서울 청계천과 상당히 유사하다. 대규모 토목공사가 되긴 하겠으나 초를 걷어내고 실체를 보면 `관상용 수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름이 같다고 해서 무턱대고 같은 잣대로 견주거나 개체의 특성을 간과한 채 과잉일반화한다면, 그렇다. 제대로 `낚인' 것이다.
내 친구 여동생 이름이 `전지현' 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당시 예쁜 여친만을 찾아 헤메던 다른 친구가 `이쁘겠다. 나 소개시켜줘라'고 말했다.
`왜?'
`전지현 이니까'
`별로 안 이쁜데'
`왜 안이쁜 거야. 전지현인데'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의 엽기적인 그녀 전지현의 본명은 심지어 왕지현이었다)
** 위 그림은 아라비안 운하의 완성 뒤 예상도라고 함(이런 그림은 대개 초쳐 그린다)...아래는 아라비안 운하의 위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