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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세상] 씩씩한 여기자의 마음 따뜻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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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범인이 기자한테 자수를 했대요!" 2005.09.28 17:01:19


아아 잊으랴..어찌 우리 그 날을~~
내 생애 두 번 다시 못 올 것 같은 행운이 있었다.

2003년 1월 23일. 
그해 1일 입사한 나는 당시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분 못하는 사회부 수습이었다.
난 영등포라인에서 교육 중이었고
사회부 수습답게 하루에 세.네시간도 못자면서 씻지도, 입지도 못해서 그냥 거지같았다.
그날도 새벽 마와리를 돌고 좁디좁은 영등포 경찰서 기자실에서 짧은 수면을 취하려는데
일진선배(박진형 기자)의 전화가 왔다. 
항상 그랬듯이 차분한 음성으로
"구로경찰서 앞 조선족 교회에 가봐라..누구 달고 가지 말고 혼자 가서 전화해".

난 끈적하게 어울려 다니던 타사 기자들을 모두 뒤로 하고 살짝 빠져나와 교회로 갔다.
교회에서 나를 기다린 사람들은 다름아닌 농협 인출사건의 용의자인 조선족 남자 2명.

당시 누군가 농협 현금카드를 대량으로 위조해 예금을 모두 빼가는 바람에 세상이 떠들썩했었다.
큰 사건의 용의자를 만났다는 흥분에 가슴이 두근거렸고 이들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받아적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짓이 뭔지도 모르고 한국인이 시키는대로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전날 TV에서 보여주는 CC-TV 화면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조선족 교회에 도움을 청했고, 이들의 억울한 사연을 들은 목사가 박진형 선배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난 이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박진형 선배에게 e-메일로 보내 단독으로 보도했고,
이들을 교회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구로경찰서가 아닌 남부경찰서로 데려갔다.

아버지가 남부경찰서 형사계에 근무하셨는데 농협사건 용의자들을 데리고 가는 대신 끝까지 형사계 안에서 취재할 수 있도록 약속을 받아냈기 때문이다.

형사계에 도착했을 때 남부서 서장과 과.계장들이 직접 현관에 나와 우리를 맞아 주었고
한참 조사가 이뤄진 뒤에서야 박진형 선배의 기사를 본 타사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완벽한 특종을 한 뒤의 여유로움... 정말 두 번 맛보기는 힘든 경험이었다.




====================================   관련기사

농협 인출사건 용의자 중국동포 2명 자수
"카드.비밀번호 건네받아 인출 심부름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진형 기자 = 경찰이 전국 단위농협과 일부 은행을 상대로 한 현금카드 위조사건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이 사건의 용의자인 중국동포 2명이  23일 경찰에 전격 자수했다.
    서울남부경찰서는 이날 이모(25).전모(22)씨 등 중국동포 2명이 "한국인  3명의 심부름으로 농협.은행 카드로 현금을 인출하는 일을 했다"며 자수해옴에 따라  사실여부 등을 수사중이라고 밝혔다.
    이씨 등은 경찰에서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최근까지 박모씨 등 한국인 3명의 지시를 받고 다른 중국동포 2명과 함께 인천.수원.신탄진.대전.대구 등 전국 은행에서 여러 단위농협 및 우리은행.부산은행 신용카드로 현금을 인출, 박씨에게 건네줬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경찰서 출두에 앞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지난해 9월말 박씨가 '부자들이 은행에서 돈을 인출할 때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돈을 대신 찾아오는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다'고 제안했다"며 "'카드와 비밀번호를 줄테니  돈만  찾아주면 되며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박씨의 말에 속아 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씨 등은 지난해 10월부터 이들 중국동포 4명에게 경기도 시화에 원룸을  얻어주고 합숙을 시키면서 1주일에 한 두 차례씩 이들을 차에 태워 은행으로 데려다주고 비밀번호가 뒤에 쓰여져 있는 현금카드를 주면서 계좌내의 돈을 전액  인출하게  한 뒤 이 돈을 모두 가져갔다고 이씨 등은 밝혔다.
    이씨는 "어제(22일) 숙소에서 뉴스를 보고 카드 사건을 비로소 알게 됐으며, 오후 8시 뉴스에 나온 CCTV 화면에서 내 얼굴이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자수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진술의 사실여부 등을 확인하는 한편 이들에게 범행을 지시했다는 박씨 등의 신원을 파악중이다.
    jh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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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뻔뻔한 부부 2005.08.30 18:07:40

나는 27살의 여기자다.
드라마에 나오는 것 처럼 화끈한(?) 성격에  때때로 약한(!) 욕정도는 내뱉을 줄 아는 그런 기자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과 항상 만나다 보니 예의를 지키면서도 기죽지 않는 자세를 유지하려고 늘 애쓴다. 그런데 정말 나를 분노시키고 험악한 욕이 쏟아지도록 한 부부가 있었다. 만약 눈앞에 있었더라면 나란히 경찰서에 끌려갔을 수도 있다.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으로.

2004년 12월... 서천경찰서 형사계 감식담당 장영현 형사가 10년 전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았다. 장 형사는 우연히 문서고를 뒤지다가 먼지 덮힌 `1994년 미제사건 파일'을 찾았고 유달리 그해에 서천읍내에서 6-7건의 살인과 강도.강간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점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집요한 성격의 장 형사는 10년 전 살인사건 현장에서 가져온 맥주병을 다시 감식했고 지문을 찾아내 범인이 A씨임을 밝혔다. A씨는 사건 당시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지문등록이 돼 있지 않아 검색이 되지 않았던 것.  A씨는 경찰에 붙잡혀 왔지만 "등을 발꿈치로 두 번 밟았을 뿐"이라고 발뺌했다. A씨에게 구타당한 술집 여주인은 코뼈가 부러지고 정신을 잃은 채 구토를 하다 기도가 막혀 숨졌다.  경찰은  강도살인(공소시효 15년)이나 강간치사(공소시효 10년)를 주장했지만  담당검사는 살인의 고의성을 입증할 수 없다며 폭행치사나 상해치사(공소시효 7년)로 A씨를 기소하지 않았다.

나는 그 해 봄부터 장형사가 범인을 잡을때까지 오랫동안 기다렸다.
하지만 범인을 풀어줄 수 밖에 없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만나 얘기를 들으면서 `죄를 지은 사람이 벌을 받지 않는 것은 돌아가신 분에게 미안할 뿐더러 사회정의에 위배되는 일'이라고 생각해 A씨가 죄책감이라도 느끼라고 대문짝만하게 기사를 썼다.
내가 쓴 기사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A씨는 네티즌들에게 엄청난 질타와 욕을 먹었다.

그런데 그날 오후, 어떻게 알았는지 A씨가 내게 전화를 해서 다짜고짜 따지기 시작했다.
"죄책감 느끼고 사는 날 왜 이렇게 괴롭히냐"로 시작하더니 "공소시효 지날때까지 맘졸이며 살았으면 죄값을 치른게 아니냐", "죽은 여자가 코뼈 부러진거 맞냐" 등등 몰아붙이더니 무조건 만나자고  요구했다.

그의 폭력성에 대해 이미 자세히 알고 있던 나는 "내가 왜 당신을 만나야 하나? 원하는 게 있으면 전화로 하라"고 달래야 했고 그는 그날 저녁까지 3~4차례 이상 전화를 하며 날 괴롭혔다.

"삘릴리~"  그렇게 꾹꾹 참고 있는데 저녁식사 시간때 또 전화를 한 것이다.  중요한 자리에 있었던 나는 화장실에서 전화를 받아야 했고 A씨의 아내라는 여자가 "니가 내 남편에 대해서 뭘 아냐 XX년아!" 등등 욕을 해대니까 참다못해  폭발해버렸다.  나도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욕 (그래봤자 종류가 화려하지 못하다)을 최선을 다해서 했고  마지막으로 "흥! 또 해보시지. 기자 핸드폰은 녹음되는 거 모르시나? 지금부터 욕하는 거 모두 녹음해서 경찰에 협박죄로 고발해 버릴거야!"라고 소리쳤다.

그제서야 `뚝'하고 끊어지는 전화.... 휴대전화를 집어던지려다 겨우 참았다. 

그날 밤 난 소주와 맥주, 양주 등등을 섞어가며 폭음을 했다.

아~ 정말 세상이 내게 술을 권하는 구나.  T.T


================================================= 관련기사

<10년 전 살인사건, 범인은 밝혀냈지만…>
    (서천=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 10년 동안 미제로 남아있던 살인사건의  범인이 한 경찰관의 끈질긴 노력으로 붙잡혔지만 죄명에 따라 재판도 받지 않고 풀려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1994년 12월 22일 오전 충남 서천군 서천읍 군사리 `은비정'이라는 주점 내실에서 업주 강모(43.여)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강씨는 방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이불이 머리끝까지 덮혀져  있었으며 머리와 등, 얼굴을 심하게 구타당해 코뼈가 부러졌고,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구토물 때문에 질식해 숨졌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강씨의 하의가 벗겨져 있고 머리카락 한 줌이 예리하게 잘려있는 점, 베개 위에 신발자국이 나 있고 서랍을 마구 헤집어 놓은 점, 탁자 위에  빈  맥주병이 놓여있는 점 등에 미뤄 전날 밤 강씨와 술을 마시던 손님이 그를 해친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탁자 위에 있던 빈 맥주병에서 지문을 찾아내 감정을 의뢰했지만 누구의 것인지 밝혀내지 못했고, 탐문수사 등은 아무 소용이 없어 사건은 미궁속에  빠져버렸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4년 2월 25일.
    서천경찰서 형사계에서 6년째 감식업무를 맡고 있는  장영현(41)경사는  경찰서 내 문서고에 들렀다가 우연히 먼지 쌓인 서류철 가운데 `1994년  미제사건  파일'을 찾아냈다.
    장경사는 `은비정 사건' 서류를 검토하던 중 신원확인이 되지 않았던 지문의 주인공이 궁금해졌고, 문서고를 뒤져 은비정에서 가져온 맥주병 8개를 찾아낸 뒤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는 지문을 다시 채취해 경찰청에 감정을 의뢰했다.
    경찰청 감정결과 지문은 김모(29.대전시 서구 내동)씨의 것으로 밝혀졌고, 사건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을 자퇴하고 집에 있던 김씨가 `은비정'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살았던 사실이 확인됐다.
    또 김씨의 주민등록증 지문자료가 1995년 12월 11일 최초로 경찰청 컴퓨터에 등록됐기 때문에 1994년 지문을 감정했을 때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장경사는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김씨 집 주변에서 수  차례  잠복근무를 하며 김씨가 소주병 속에 버린 담배꽁초를 수거해 유전자 감식을 했고, 지난달 16일 사건 파일을 찾아낸지 9개월만에 그를 강도살인혐의로 체포했다.
    김씨는 경찰에서 "은비정에 가본 적도 없다"고 주장했지만 지문을 보여주자 "그 여자와 술을 마신 뒤 성관계를 가졌고 집에 가려는데 여자가 반말로 욕을  해  등을 발뒤꿈치로 두 번 밟았다"며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로써 10년 전 은비정 여주인을 살해한 범인을 밝혀냈지만 다시 김씨의 사법처리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김씨가 고의로 강씨를 때려 숨지게 했으면 `살인' 또는 `강도살인'(공소시효 15년)혐의로 기소할 수 있고, 강간한 점을 입증하면 `강간치사죄'(공소시효 10년)로 12월 21일까지 기소할 수 있다.
    하지만 고의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폭행치사'나 '상해치사'(공소시효  7년)혐의가 적용돼 공소시효가 이미 끝났기 때문에 김씨를 재판에 회부할 수 없게 된다.
    이 사건을 맡고 있는 대전지검 홍성지청 담당검사는 "김씨가 범인인 것은  맞지만 숨진 강씨의 사체에서 `치명적인' 상처가 발견되지 않았고,  증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김씨의 `고의성'을 입증하기가 상당히 곤란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일단 김씨에 대해 강도살인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그를 불구속 입건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한편 김씨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 여자를 때린건 인정하지만 고의성에  대해서는 경찰, 검찰 모두 혐의 없는 것으로 보고 풀어 주지 않았느냐"며 "나도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noano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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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은 다섯 살이에요!! 2005.08.17 18:15:19
내 나이 스물 두살때 다섯살 먹은 아이가 있었다.
하얀 피부에 파란 눈, 반짝반짝 금발머리...사실 말도 잘 안통했다.
이 녀석의 이름은 타일러. 집에서는 `미러클 보이'라고 불린다.

앞서 얘기했듯이  네 달만에 긁어 모은 돈으로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 어학연수를 갔고
비용을 아끼기 위해 `데미페어'를 시작했다.
키위가정에서 숙식을 제공해주는 대신 하루 세 시간씩 아이를 돌보고 설겆이와 빨래 등을 돕는거다.
`가정부' 삘이 쪼금 나기도 하지만 한 달에 60-70만원 이상 절약할 수 있고 
외국인들과 함께 살면서 생활영어를 배우니 `일석이조'인 셈인다.

문제는 악마같은 꼬마 타일러 녀석. 애도 안 낳아본 내가 말도 잘 안통하는 미운 다섯살 남자아이를
돌보려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이 녀석은 새벽 5시마다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침대에서 폴짝폴짝 뛰고, 음식으로 장난치기, 놀아달라고 떼쓰고 울기, 통화중인 전화 끊어버리기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장난을 다쳤다.

타일러가 `미러클 보이'로 불리는 이유는  7개월 반 만에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
이 때문에 다섯살이 됐는데도 한 쪽 귀가 잘 들리지 않고, 손에 힘이 없어 글씨를 잘 못썼고, 볼일도 제대로 가리지 못했다.  

매일 오후 3시 이 녀석의 학교에 걸어가 집까지 데려와야 하는데 중간에 오줌을 싸버리거나 가게에서 이것저것 사달라고 조를때는 정말 황당+당황 그자체였다.

하지만 역시 고운정보다 미운정이 무서운 법.
그집에서 6개월을 보내고 나올때는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타일러~~ 이 녀석!! 그 때 얼굴 그대로라면 멋진 청년으로 자랐을 것 같은데... How are U?

데미페어 사진과 체험기  ==> 대학시절 쓴 글이니 엉성해도 이해해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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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군이 여행에 폭 빠져버린 스토리!!! 2005.08.17 17:58:30

1999년 당시 대학 2학년이었던 나는 실연의 아픔을 잊기 위해 사법고시에 매달렸었다.
지금의 내 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성군(애칭)이 사법고시를 ??? 말도 안돼"라며 놀라겠지만
사랑의 아픔은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하고 두꺼운 고시책에 매달리게 만들 정도로 위력이 대단하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고,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고야마는 내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당시 과외로 벌었던 돈을 몽땅 법학책과 케이스집, 문제집을 사는데 쏟아 부었다.
내 방 책꽂이에 70-80만원 상당의 사법고시 관련 서적을 꽂아놓고 나니 돈이 아까워서라도
공부를 계속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부시작한지 반 년 만에 우연히 신문에서 본 문화관광부 `한.몽청소년교류단'을
지원했고, 손바닥만한 광고 하나가 내 인생을 바꿔놨다.

공짜로 10박11일 동안 몽골의 드넓은  초원에서 말달리고, 양잡아 먹고, 아침.점심.저녁으로
꼬박꼬박 칭기즈칸이 그려진 보드카를 마셨더니 책상에 앉아 있을 마음은 싹~~~~사라지고
더 넓은 세상을 여행하고 싶은  바람만 잔뜩 들어갔다.

결국 "그동안 공부한건 우야노~? 시험 한 번만 보고 관둬라"는 부모님의 만류를 과감히 뿌리치고
1년 동안 휴학한 뒤 인터넷 통신사였던 넷츠고의 `텔레마케터'로 취직했다.

목표는 4달 만에 천.만.원 만들기 !!!

정말 연합뉴스 경찰수습3개월을 제외하고는 내 평생에 가장 성실하게 살았던 기간이다.

아침 5시에 일어나 종로의 영어회화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오전 9시에 서울역 SK건물 꼭대기층에 출근.
오후 6시까지 하루종일 "안녕하십니까(`솔'음정으로 명쾌하게) 행복을 전하는 넷츠고의 성혜밉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멘트를 수십번씩 반복했다.
오후 8시부터는 집에서 과외 아르바이트 시작...당시 월-일요일까지 풀 가동해 5팀을 맡았었다.
돈 쓸 시간이 없으니 당연히 현금이 통장에 쌓여가고, 4달 만에 천만원 적립 완성~~!!!

그해 12월 태국에서 한 달간 체류를 시작으로 뉴질랜드 어학연수와 시드니, 캄보디아 여행까지 1천만원에 모두 끝냈다.

돈 없다고 고민하지 말자...두드리면 열리고 길은 언제나 있는 법. 

아참, 요새도 서울 집에 가면 내 방문을 열기가 두렵다.

아직까지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손 때 하나 묻지 않은 법학 서적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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