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7살의 여기자다.
드라마에 나오는 것 처럼 화끈한(?) 성격에 때때로 약한(!) 욕정도는 내뱉을 줄 아는 그런 기자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과 항상 만나다 보니 예의를 지키면서도 기죽지 않는 자세를 유지하려고 늘 애쓴다. 그런데 정말 나를 분노시키고 험악한 욕이 쏟아지도록 한 부부가 있었다. 만약 눈앞에 있었더라면 나란히 경찰서에 끌려갔을 수도 있다.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으로.
2004년 12월... 서천경찰서 형사계 감식담당 장영현 형사가 10년 전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았다. 장 형사는 우연히 문서고를 뒤지다가 먼지 덮힌 `1994년 미제사건 파일'을 찾았고 유달리 그해에 서천읍내에서 6-7건의 살인과 강도.강간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점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집요한 성격의 장 형사는 10년 전 살인사건 현장에서 가져온 맥주병을 다시 감식했고 지문을 찾아내 범인이 A씨임을 밝혔다. A씨는 사건 당시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지문등록이 돼 있지 않아 검색이 되지 않았던 것. A씨는 경찰에 붙잡혀 왔지만 "등을 발꿈치로 두 번 밟았을 뿐"이라고 발뺌했다. A씨에게 구타당한 술집 여주인은 코뼈가 부러지고 정신을 잃은 채 구토를 하다 기도가 막혀 숨졌다. 경찰은 강도살인(공소시효 15년)이나 강간치사(공소시효 10년)를 주장했지만 담당검사는 살인의 고의성을 입증할 수 없다며 폭행치사나 상해치사(공소시효 7년)로 A씨를 기소하지 않았다.
나는 그 해 봄부터 장형사가 범인을 잡을때까지 오랫동안 기다렸다.
하지만 범인을 풀어줄 수 밖에 없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만나 얘기를 들으면서 `죄를 지은 사람이 벌을 받지 않는 것은 돌아가신 분에게 미안할 뿐더러 사회정의에 위배되는 일'이라고 생각해 A씨가 죄책감이라도 느끼라고 대문짝만하게 기사를 썼다.
내가 쓴 기사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A씨는 네티즌들에게 엄청난 질타와 욕을 먹었다.
그런데 그날 오후, 어떻게 알았는지 A씨가 내게 전화를 해서 다짜고짜 따지기 시작했다.
"죄책감 느끼고 사는 날 왜 이렇게 괴롭히냐"로 시작하더니 "공소시효 지날때까지 맘졸이며 살았으면 죄값을 치른게 아니냐", "죽은 여자가 코뼈 부러진거 맞냐" 등등 몰아붙이더니 무조건 만나자고 요구했다.
그의 폭력성에 대해 이미 자세히 알고 있던 나는 "내가 왜 당신을 만나야 하나? 원하는 게 있으면 전화로 하라"고 달래야 했고 그는 그날 저녁까지 3~4차례 이상 전화를 하며 날 괴롭혔다.
"삘릴리~" 그렇게 꾹꾹 참고 있는데 저녁식사 시간때 또 전화를 한 것이다. 중요한 자리에 있었던 나는 화장실에서 전화를 받아야 했고 A씨의 아내라는 여자가 "니가 내 남편에 대해서 뭘 아냐 XX년아!" 등등 욕을 해대니까 참다못해 폭발해버렸다. 나도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욕 (그래봤자 종류가 화려하지 못하다)을 최선을 다해서 했고 마지막으로 "흥! 또 해보시지. 기자 핸드폰은 녹음되는 거 모르시나? 지금부터 욕하는 거 모두 녹음해서 경찰에 협박죄로 고발해 버릴거야!"라고 소리쳤다.
그제서야 `뚝'하고 끊어지는 전화.... 휴대전화를 집어던지려다 겨우 참았다.
그날 밤 난 소주와 맥주, 양주 등등을 섞어가며 폭음을 했다.
아~ 정말 세상이 내게 술을 권하는 구나.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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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살인사건, 범인은 밝혀냈지만…>
(서천=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 10년 동안 미제로 남아있던 살인사건의 범인이 한 경찰관의 끈질긴 노력으로 붙잡혔지만 죄명에 따라 재판도 받지 않고 풀려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1994년 12월 22일 오전 충남 서천군 서천읍 군사리 `은비정'이라는 주점 내실에서 업주 강모(43.여)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강씨는 방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이불이 머리끝까지 덮혀져 있었으며 머리와 등, 얼굴을 심하게 구타당해 코뼈가 부러졌고,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구토물 때문에 질식해 숨졌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강씨의 하의가 벗겨져 있고 머리카락 한 줌이 예리하게 잘려있는 점, 베개 위에 신발자국이 나 있고 서랍을 마구 헤집어 놓은 점, 탁자 위에 빈 맥주병이 놓여있는 점 등에 미뤄 전날 밤 강씨와 술을 마시던 손님이 그를 해친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탁자 위에 있던 빈 맥주병에서 지문을 찾아내 감정을 의뢰했지만 누구의 것인지 밝혀내지 못했고, 탐문수사 등은 아무 소용이 없어 사건은 미궁속에 빠져버렸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4년 2월 25일.
서천경찰서 형사계에서 6년째 감식업무를 맡고 있는 장영현(41)경사는 경찰서 내 문서고에 들렀다가 우연히 먼지 쌓인 서류철 가운데 `1994년 미제사건 파일'을 찾아냈다.
장경사는 `은비정 사건' 서류를 검토하던 중 신원확인이 되지 않았던 지문의 주인공이 궁금해졌고, 문서고를 뒤져 은비정에서 가져온 맥주병 8개를 찾아낸 뒤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는 지문을 다시 채취해 경찰청에 감정을 의뢰했다.
경찰청 감정결과 지문은 김모(29.대전시 서구 내동)씨의 것으로 밝혀졌고, 사건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을 자퇴하고 집에 있던 김씨가 `은비정'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살았던 사실이 확인됐다.
또 김씨의 주민등록증 지문자료가 1995년 12월 11일 최초로 경찰청 컴퓨터에 등록됐기 때문에 1994년 지문을 감정했을 때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장경사는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김씨 집 주변에서 수 차례 잠복근무를 하며 김씨가 소주병 속에 버린 담배꽁초를 수거해 유전자 감식을 했고, 지난달 16일 사건 파일을 찾아낸지 9개월만에 그를 강도살인혐의로 체포했다.
김씨는 경찰에서 "은비정에 가본 적도 없다"고 주장했지만 지문을 보여주자 "그 여자와 술을 마신 뒤 성관계를 가졌고 집에 가려는데 여자가 반말로 욕을 해 등을 발뒤꿈치로 두 번 밟았다"며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로써 10년 전 은비정 여주인을 살해한 범인을 밝혀냈지만 다시 김씨의 사법처리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김씨가 고의로 강씨를 때려 숨지게 했으면 `살인' 또는 `강도살인'(공소시효 15년)혐의로 기소할 수 있고, 강간한 점을 입증하면 `강간치사죄'(공소시효 10년)로 12월 21일까지 기소할 수 있다.
하지만 고의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폭행치사'나 '상해치사'(공소시효 7년)혐의가 적용돼 공소시효가 이미 끝났기 때문에 김씨를 재판에 회부할 수 없게 된다.
이 사건을 맡고 있는 대전지검 홍성지청 담당검사는 "김씨가 범인인 것은 맞지만 숨진 강씨의 사체에서 `치명적인' 상처가 발견되지 않았고, 증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김씨의 `고의성'을 입증하기가 상당히 곤란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일단 김씨에 대해 강도살인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그를 불구속 입건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한편 김씨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 여자를 때린건 인정하지만 고의성에 대해서는 경찰, 검찰 모두 혐의 없는 것으로 보고 풀어 주지 않았느냐"며 "나도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noano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