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생각해보는 한글 바로 쓰기]<12>
'contents'는 왜 '콘텐츠'고, 'collection'은 왜 '컬렉션'일까?
영어권 단어의 우리말 표기법 가운데 가장 헷갈리는 게 모음 'ㅓ'와 'ㅗ'의 구별입니다.
'힙'인지 '히프'인지, '멕 라이언'인지 '메그 라이언'인지 등은 "짧은 모음 다음의 무성 파열음이 어떻고…" 하는 등의 표기 세칙이라도 있지만(알아도 외우기가 어려워 별 소용은 없습니다만), 이건 외래어 표기법을 아무리 뒤져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고요? 일일이 찾아보거나 국립국어원에 물어봐야 하나고요?
그러나 대체적인 규칙이 있습니다.
영어 발음에서는 는 강세(악센트, 스트레스)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실제 현지인의 발음을 들어보면 강세가 있는 음절만 들리고 나머지는 잘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이 사람들은 강세가 있는 음절만 해당 단어 모음을 고유의 '음가(音價)'대로 발음하고 나머지는 'ㅓ'에 가깝게 발음합니다.
'possibility'란 단어를 예로 들면 미국식 발음기호가 [|pɑ:sə|bɪləti]여서 '파서빌러티'라고 발음합니다. 두번째 음절의 'i'(첫번째 i)나 네번째 음절의 'i'(세번째 i)도 'ㅣ'로 소리나지 않고 'ㅓ'로 발음하는 겁니다. 세번째 음절 'i'(두번째 i)에는 강세가 있어 'ㅣ'로 소리나지요.
영어의 'o'는 미국식과 영어식 발음이 다소 다르지만 통상 'ㅗ'나 'ㅏ'로 발음합니다. 그런데 강세가 없는 음절에서는 'ㅓ'로 쓴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contents'는 강세가 앞 음절에 있으니 '콘텐츠'(미국식은 칸텐츠에 가깝게 발음하겠지요)이고, 'collection'은 'tion' 바로 앞에 강세가 있는 영어 규칙에 따라 강세가 두번째 음절에 있으니 '컬렉션'이라고 적습니다. 'bloc'은 한 음절이니 그 자체에 강세가 있다고 보아 '블럭'이 아니라 '블록'(미국식은 블락)이라고 써야 합니다.
또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conference'는 앞에 강세가 있으니 '컨퍼런스'가 아닌 '콘퍼런스'가 맞고 'container'는 강세가 뒤에 있으니 '콘테이너'가 아닌 '컨테이너'가 맞습니다. 'Stanford'의 경우 '스탠포드'가 아니라 '스탠퍼드'인 것도 마찬가지지요.
이 규칙은 앞에서 'possibility'를 예로 들었듯이 다른 모음에도 비슷하게 적용됩니다. 'Harvard'는 '하바드'가 아닌 '하버드'이고 'donald'는 '도날드'가 아닌 '도널드'이고(햄버거 체인점은 고유명사여서 예외적으로 맥도날드로 씁니다), 영국 시인 'housman'은 '하우스맨'이 아니라 '하우스먼'이고 이름에 흔히 쓰이는 'tomas'는 '토마스'가 아니라 '토머스'(이탈리아어나 독일어는 토마스)가 맞습니다.
반대로 한 음절의 단어에서나 강세가 있는 음절에서는 'ㅓ'로 적는 경우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흔히 '런칭'이라고 쓰는 'launching'도 '론칭'이 맞지요.
별로 어렵지 않지요? 그런데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로 강세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아느냐는 것입니다.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되지만, 그 시간에 외래어표기법을 찾아보면 될 일이지요.
그렇게 따지면 할 말이 없지만, 우리는 대부분 영어 단어의 강세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블록'이나 '컬렉션'처럼 외울 필요조차 없는 단어도 적지 않지요.
둘째로는 어떨 때는 영국식 발음을 기준으로 삼고 어떨 때는 미국식을 기준으로 삼느냐는 겁니다. '콘텐츠'나 '콘퍼런스'나 '블록'을 보면 영국식을 많이 쓰는 것 같은데 'box'의 경우에는 '복스'가 아니라 '박스'이거든요.
사람 이름 'Bob'도 한때 '보브 딜런', '보브 돌'처럼 '보브'라고 쓰다가 최근에는 '밥 딜런'이나 '밥 돌'처럼 미국식에 가깝게 '밥'이라고 적습니다.
우리는 미국식 영어가 대세인 것로 알고 있지만,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남아공 등 많은 영연방 국가를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법을 정할 때도 영국식으로 많이 정해놓았습니다. 이는 미국식이 더욱 대세를 이루면 바뀔 수도 있겠지요.
마지막으로는 앞에서 말한 규칙이 예외없이 적용되느냐입니다.
예를 들어 발명가 'Edison'이란 이름에 앞의 규칙을 적용하면 '에더슨'이 돼야 하고, 실제 사전의 발음기호도 그렇게 나와 있는데, 정작 표준 표기법은 '에디슨'입니다. 관행적으로 굳어진 단어나 고유명사에 경우에는 관행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예외 없는 법칙은 없지요.
결론적으로 말해 영어의 우리말 표기에서 'ㅗ'인지 'ㅓ'인지, 'ㅏ'인지 'ㅓ'인지 헷갈릴 때는 단어의 강세를 생각하면 대체로 해결됩니다. 그리고 미국식만 생각지 말고 영국식이 아직도 영어 표준에 가깝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