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16]
[주간 미디어 리뷰:방송](322) 광우병 보도와 미디어 구도 재편
광우병 보도가 일시에 미디어 지형이 달라진 듯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MBC ''PD수첩''은 두 차례의 보도로 방송 프로그램의 폭발력을 과시했고 이른바 조중동의 의제 설정 기능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듯합니다. 인터넷의 위력도 새삼 놀라워 보입니다.
쇠고기 협상과정에 얼마나 문제가 있었는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를 여기서 따질 생각은 없습니다. 설혹 ''PD수첩''에 과장 보도한 혐의가 있고 인터넷에 떠도는 근거 없는 괴담이 불안감을 더하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정부가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 협상과정과 광우병 발병의 위험 여부를 소상히 국민에게 공개하지 못한 책임은 벗어날 수 없을 듯하네요.
그런데 정부 일각에서는 국정홍보처를 폐지하면서 정부의 국정홍보 기능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거나, 공영방송이 좌파적, 혹은 반정부적 성향을 띠고 있기 때문이라거나, 인터넷 콘텐츠에 대한 심의기능에 공백이 생겨 괴담이 퍼지고 있다거나 하는 등의 생각도 하는 모양입니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국무회의에 참석해 미국 쇠고기 협상에 대한 대언론 홍보의 미비점을 비판하고 체계적인 홍보노력을 강조하는 한편 민간독립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업무 공백을 언급하며 사후심의의 한계를 시사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 해석될 수 있지요.
최근에는 최 위원장이 김금수 KBS 이사장을 만나 광우병 보도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며 정연주 KBS 사장 교체의 필요성을 전달했다는 얘기도 들리고, 교육부가 동의대에 압력을 행사해 신태섭 동의대 교수의 KBS 이사직 사퇴를 종용하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습니다. 방통위가 인터넷 포털에 댓글 삭제를 요청했다는 의혹도 퍼졌고 정부가 ''PD수첩'' 보도에 대해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교육부가 각급 학교 교사들을 동원해 중고생들이 촛불집회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지도한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이런 일련의 일을 두고 야권에서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엄정한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최 위원장의 행보에 대해서는 탄핵 소추 움직임까지 일었지요(그러나 국회 문화관광위원회는 17대 국회 임기 막판에 한나라당이 전체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상태에서 탄핵 소추안을 의결하는 것은 어렵다고 보고 문광위 야당 의원들의 성명으로 대체하기로 했다네요).
여권에서는 방송을 포함한 일부 언론의 보도와 인터넷 뉴스 및 댓글을 보고 우려할 수는 있을 겁니다. 대국민 홍보를 강화하는 등 여러 대책을 강구하는 것도 당연하지요. 노무현 정부 때와는 입장이 뒤바뀌긴 했지만, 명백히 잘못됐다고 판단하는 보도에 대해서는 소송을 할 수도 있겠지요. 또 최시중 위원장은 대통령의 후견인이자 멘토라고 불려왔으니 정국 현안에 관해 대통령에게 조언을 할 만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선후와 본말이 바뀐 듯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방통위원장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며 방송의 독립성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자리입니다. 대통령에 대한 조언의 범위도 정치적 중립성을 벗어나면 안되고, 행사할 수 있는 권한도 방송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는 없다는 게 중론이지요.
여권의 다급한 마음이 무리수로 보일만한 행보를 만들어내고 여러 가지 논란과 시비를 부르는 듯합니다. 대통령이 거듭 강조한 대로 ''국민을 섬기는 자세''로 돌아가 문제를 풀면 될 텐데, 자꾸만 책임을 다른 데로 돌리려 하면서 문제를 더 꼬이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광우병 보도 파문은 신문의 방송 진출을 옹호하는 논리에도 활용되고 있는 듯합니다. "광우병 보도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조중동의 여론 독과점은 그리 우려할 만하지 않은 것 아니냐" "신문의 독과점보다 지상파방송의 독과점이 더 문제이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송이 더 생겨야 한다" "공영방송의 논조가 좌파 성향이기 때문에 민영화하거나 우파 성향의 방송을 새로 만들어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등의 말도 들려옵니다.
나름대로 일리를 갖고 있는 듯 보이지만 만일 지상파방송, 특히 공영방송의 논조에 문제가 있다면 그 자체로 균형을 갖출 수 하는 노력이 더 중요하지 반대 논조의 매체를 만들어 균형을 맞추려는 발상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여론 독과점의 문제도 단순히 한 사안만 놓고 볼 게 아니라 여러 사안을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하며 매체의 성격, 소유구조, 시장상황 등도 고려해야 하지요.
여권이 광우병 보도 파문이 지닌 의미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그래서 KBS 사장을 빨리 바꿔야 한다"거나 "신문 방송 겸영을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거나 하는 생각을 품으면 여권에 유리한 지형을 만들려고 미디어 구도 재편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받을 수 있습니다.
야권에서도 이번 일을 두고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을 추락시키고 조중동의 영향력을 눌렀다고 좋아할 일만은 아니지요. 그럴수록 여권의 재편 의지를 부추기는 측면도 있으니까요. 특히 최근까지 여당이었던 통합민주당은 여권의 추락에 따른 반사이익만 챙기려고 할 게 아니라 쇠고기 협상과정에 따른 책임을 공유하려는 자세를 보여야 하며, 미디어 구도 재편에 관해서도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콘텐츠 동등접근권을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가
미디어업계에서는 꽤 오래 전부터 콘텐츠를 가진 자가 왕이라는 말이 마치 공리처럼 떠돌았습니다. 이와 함께 플랫폼에 기반하지 않은 독립제작사와 신규 PP들이 위세를 떨치며 미디어 시장의 권력이 조만간 교체될 것이라는 예상이 뒤따랐지요.
그러나 케이블TV에 이어 위성방송, DMB 등의 새로운 플랫폼이 잇따라 출현했지만 콘텐츠만 가진 사업자는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갑과 을의 처지가 바뀌었다는 말이 나오기는 해도 지상파TV의 편성을 확약 받지 않은 독립제작사의 프로그램은 여전히 만들어지기 힘들고, 케이블TV MSO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인기 PP가 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지요.
케이블TV의 상위 채널 가운데 대부분은 지상파TV와 탯줄로 연결된 계열 PP이거나 MSO와 특수관계로 얽힌 MSP 소속인 것이 이 사실을 잘 말해주지요. 이들을 누를 만한 킬러 콘텐츠 보유자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구조와 여건으로 보면 새로운 왕의 탄생을 기다리는 일이 무망한 노릇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아도 정상적이지 않은 것은 분명한 듯합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플랫폼이 생길 때마다 지상파 재송신에 목을 매고, 인기 PP를 둘러싸고 플랫폼 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지요. 말로만 콘텐츠의 중요성을 소리 높여 외쳤을 뿐 정작 콘텐츠 육성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 데는 실패한 셈입니다.
5월 9일 방송통신위원회가 입법예고한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IPTV법) 시행령안에는 이와 관련한 중요한 대목이 들어 있습니다. 제18조에 명시된 콘텐츠 동등접근에 관한 규정으로, 방통위는 IPTV 콘텐츠 사업자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대해 시청률 또는 시청점유율, 국민적 관심도 등을 고려해 주요 프로그램을 고시하도록 돼 있지요. 이는 IPTV법 20조에 따른 것으로, 주요 프로그램으로 고시되면 일반 국민이 시청할 수 있도록 다른 IPTV 제공 사업자에도 공정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차별 없이 제공해야 합니다.
법과 시행령에 이 규정이 마련된 것은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와 위성DMB TU미디어의 쓰라린 경험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지상파 재송신이 안돼 초기 가입자 확보에 실패하고 이후로도 상당수 PP가 케이블TV에만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케이블 온리'' 정책을 고수하는 바람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지요. 심지어는 지상파방송인 OBS도 케이블TV 일부 SO에만 프로그램을 제공해 스카이라이프 가입자에는 볼 기회가 차단돼 있습니다.
콘텐츠 동등접근권의 의미는 공영 지상파방송이나 일부 승인채널에 대한 의무재송신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리고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국민적 관심 행사를 거의 모든 시청자가 볼 수 있도록 하는 보편적 시청권(UAR;Universal Access Rule)과도 차이가 있습니다. MSP에 대해 불공정 및 독점계약 행위를 제한하는 미국의 프로그램 접근규칙(PAR;Program Access Rule)에 가깝기는 한데, 우리의 경우에는 모법과 시행령만을 보면 미국식 PAR와 유럽에서 따온 UAR가 혼재된 듯한 느낌을 줍니다.
IPTV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KT는 스카이라이프와 TU미디어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콘텐츠 동등접근권을 엄격히 보장할 것을 주장해왔습니다. 유료방송시장에서 케이블TV SO들이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고 인기 PP가 지상파ㆍ온미디어ㆍCJ미디어 계열로 과점화된 상황에서 공정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수용자 복지를 실현하려면 필수적이라는 것이지요.
스카이라이프 역시 현재도 CJ와 온미디어 계열의 채널은 물론 상당수 PP들이 케이블 온리 정책을 고수하는 배경에는 SO의 불공정행위가 도사리고 있다면서 IPTV법 시행령은 물론 방송법 개정을 통해 미국식 PAR를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지요. PP들이 SO 채널 편성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면계약을 통해 스카이라이프를 배제하고 있다는 게 스카이라이프의 주장입니다.
반면 케이블TV는 새로운 플랫폼이 생긴다 해도 주요 프로그램이 똑같이 다 방송된다면 저가 수신료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반박합니다. 플랫폼마다 차별화된 콘텐츠로 경쟁하게 만들려면, 또 우수 콘텐츠 개발의 동기를 유발하려면 콘텐츠 동등접근권의 대상을 UAR 수준으로 최소화하고 그 단위도 채널이 아닌 프로그램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지상파방송사들도 IPTV에 대해서는 보편적 접근권 대상을 최소화해야 하며 시청률에 따라 합리적인 콘텐츠 가격을 받겠다는 입장입니다.
모법과 시행령에는 콘텐츠 동등접근권의 대상을 방송프로그램이라고 명문화돼 있지만 방통위는 개별 프로그램이 아니라 채널 단위로 해석하는 게 맞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IPTV는 인터넷 프로토콜 기반이어서 채널이라는 개념을 쓰지 못하고 방송 프로그램으로 정의한 것이라는 게 방통위의 설명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반발하는 사업자들이 적지 않은 데다 법 해석상 논란의 소지가 존재해 이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분쟁이 발생할 듯합니다.
더욱이 IPTV법은 콘텐츠 동등접근권 대상을 신고ㆍ등록하거나 승인을 받은 IPTV 콘텐츠 사업자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명시하고 있어 허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요 채널들이 IPTV 콘텐츠 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으면 동등접근권을 보장할 의무가 없어 실효성을 거두기 힘들지요.
사업자 간 이해관계가 명백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어차피 정답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주고받기 식으로 조정하거나 단순히 중간에 뚝 잘라서 절충하려고 들면 애꿎은 수용자들이 피해를 떠안게 되거나 명분도 잃고 실리도 챙기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콘텐츠 산업 활성화, 공정경쟁을 통한 매체간 균형 발전, 수용자 복지 등의 목표를 모두 달성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대부분이 수긍할 만한 몇 가지 원칙을 세울 수는 있겠지요.
새로운 플랫폼이 새로운 콘텐츠를 채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기존 플랫폼과 똑같은 채널 패키지로 수용자에게 접근하려는 자세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독점적 지위를 남용해 경쟁 사업자를 배제하는 것도 막아야 합니다. 또한 해당 플랫폼이 아니면 TV를 볼 수 없는 시청자에게는 주요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플랫폼에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할 의무를 지우는 동시에 콘텐츠 산업을 진흥할 수 있는 정책도 뒤따라야겠지요. 이와 함께 불공정거래행위의 기준과 유형을 세분화해 독점적 지위의 남용을 철저하게 단속해야 합니다. 스카이라이프가 아니면 TV를 볼 수 없는 시청자가 상당수 존재하는 것처럼 IPTV가 아니면 TV를 볼 수 없는 시청자가 얼마나 되는지도 따져봐야 하고, IPTV 시청자들에게 보장해줘야 할 접근권의 대상이 어디까지인지 합리적으로 정해야겠지요.
레드스턴 회장과 최시중 위원장의 연설
미디어업계의 거성이라고 할 만한 섬너 레드스턴(84) CBSㆍMTVㆍ파라마운트ㆍ바이어컴 그룹 회장은 "콘텐츠는 과거나 미래나 항상 왕"이라고 역설했습니다. 그는 SBS가 5월 6일 서울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 개최한 서울디지털포럼의 미디어 정상회의 기조연설을 통해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유통이 한결 쉬워지고 빨라졌기 때문에 콘텐츠의 중요성과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지요.
이어 "미디어 시장에서 이제 국경은 없다"며 "세계로 퍼져 있는 미디어 시장의 규모는 계속 성장하고 있기에 국제시장은 우리 업계의 미래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와 함께 "공평한 규제가 향후 미디어 산업의 향방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통상 정부의 규제 정책은 급변하는 소비자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미디어 산업의 발전에 장애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지요. 이밖에도 그는 "창작물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디지털시대 최고의 가치인 ''콘텐츠 창작''을 더 활성화하는 방안"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에서는 꽤 오래 전부터 콘텐츠가 왕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왕일 것 같기는 합니다. 엄청난 규모의 국내 시장을 갖고 있는 것은 물론 풍부한 자본력과 앞선 기술력 등을 무기로 세계 시장을 주무르고 있으니까요.
레드스턴 회장의 말에는 분명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힘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도 콘텐츠가 왕이 되는 때가 올까"라는 궁금증이 들었고, 그의 말대로 "우리나라에도 콘텐츠가 왕이 되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규제 완화와 저작권 보호가 이뤄지면 결국 미국만 좋은 일 시켜주는 게 아닐까"하는 의심도 떨치기 어렵더군요.
이날 최시중 방통위원장도 레드스턴 연설에 화답하듯 오찬사를 통해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춰 관련 제도를 고쳐 시장을 선진화하고 융합 서비스가 신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불필요한 규제도 완화하겠다"면서 "주파수를 회수해 재배치하는 등 시장원리에 맞도록 규제를 고치고 방송과 통신이 공정경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지요.
융합시대의 규제 완화 추세를 부인할 수도 없고 시장원리를 외면할 수도 없지만, 그것이 가져올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른 목소리에도 고르게 귀를 기울이기를 기대합니다.
이희용[한국기자협회 부회장ㆍ언론연구소장] http://blog.yonhapnews.co.kr/hoprave
hee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