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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근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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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세상] 경기도에서 사진기자 생활하고 있는 꺾어진 70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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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하며 삽시다. 2011.12.13 23:32:45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은
삶의 원칙도, 행동의 규칙도, 뻥 가슴 뚫림도 아니었다.
내 짐작에 아마도 그들이 원한 것은 작은 위로였다.
‘괜찮다, 그리 살아도 큰 문제없다, 다른 이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다.’
이 정도의 위로면 충분한 것이다.
위로를 원하는 이에게 설득으로 응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위로는 감정이다.
설득은 이성이다.
머리로는 아무리 이해해도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 일들이 얼마나 많던가.

정치적 이유 때문에 나선 몇 번의 취재였다.
첫 취재 때는 다음 취재가 바로 이어져 별다른 이야기를 듣진 못했다.
두 번째에는 사진 마감을 현장에서 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법륜 스님의 희망 세상 만들기 강연회.
즉석에서 질문을 받고 즉석에서 답을 하는
어찌 보면 대화에 가까운 강연이었다.

후배에게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당한 50대 남성과
초등학교 고학년을 맡고 있는 선생님의 아이들에게 느끼는 배신감에 관한 질문이
두 번째 취재에서 나왔다.

처음엔 답이 나온 것도 같았다.
하지만 끝이 나지 않았다.
질문을 던진 이를 설득하기 위한 문답이 계속됐다.
위로가 아닌 설득을 위한 대화.
중간 중간 웃음이 섞이긴 했다.
하지만 질문을 던진 이는 아무래도 설득의 목적인 납득에 도달하지는 못했다는 느낌이었다.

혼자 결론을 내려버렸다.
질문을 던진 이들이 원한 것은 위로다.

내 비록 스님처럼 저명하지도 고명하지도 않지만
과감히 그리 살리라 다짐했다.
내가 만나는 이들을 위로하리라.
내게 손을 내미는 이들에게 일일이 손을 마주 잡아주지는 못할지언정
작은 목소리로 ‘괜찮아 괜찮아, 잘 될거야.’ 정도는 건네주기로 작정했다.

그럼 나는 누가 위로해주지?

이런이런, 결국 여러분이 되는 것인가.

여하튼 위로하면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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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조종사다. 2011.12.11 22:39:16


내가 하는 일을 알고 있음에도 친구 녀석의 목소리에는 서운함이 가득이다.
서운함을 다독여도 될 일을, 굳이 약자 운운하며
녀석의 서운함에 서글픔까지 얹어버렸다.

지난 추석 때 근 10년만에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만났다.
이젠 서로가 그리워질 만한 나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리움보다 더한 절실함이 모두 훌쩍 넓어진 이마만큼이나 깊고 넓었다.

추석 이후 몇 번을 더 만났고
지난 금요일 밤에는 4명의 친구들이 모두 가족을 대동하고 만났다.
망년회를 겸한 송년 모임인 셈이었다.
물론 여전히 홀몸인 나는 회비마저도 절반 할인 혜택을 받았다.
대신 녀석들이 주로 모여 사는 일산으로 마실 떠나는 불편함은 감수했다.

한 녀석은 공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지금은 민간 항공사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군인 기질이 다분한 녀석이다.
녀석은 지난 한 주 내가 한 일을 알고 있었다.
평택에서 순직한 소방관 관련 사진에
그 며칠 후 훈련기 추락으로 목숨을 잃은 공군 조종사 이야기를 꺼냈다.

단순한 얘기였다.
왜 소방관 순직 관련 사진은 주요 신문 1면에 등장하는데
순직 조종사 사진은 1면에 나오지 않았는가?

녀석이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었다.
소방관도 마찬가지겠지만
조종사들도 정말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고 있다고,
그런 이들의 죽음에 사회는 충분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줘야 한다고.

나는 그런 친구의 말에 받는 돈의 많고 적음으로 응대해버렸다.
아무래도 소방관이 조종사보다는 사회적 약자가 아닌가.
그런 약자에게 조금 더 애정을 보여준 것이 큰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생각하고 있었던 말이 아니었다.
그저 툭 하고 터져 나온 말이었다.
녀석은 아무래도 억울했나 보다.
정말 조종사 고생한다는 말을 더 하고 싶었나 보다.

술에 녹아 더 이상 오간 이야기는 없지만
술로도 녀석의 서운함은 사라지지 않았음에 분명하다.

녀석은 지난 만남에서
중학생인 아들이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싶어한다는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런 녀석인데 아무래도 내 대답은 적절하지 못했음에 분명하다.


어떤 죽음이 값지고 어느 죽음은 가볍다 말할 것인가.

그저 모두 살아 자신의 길에 의미를 부여하며 선종하는 것이 기쁨 아니던가.
미안하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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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를 훔치다. 2011.12.06 21:18:49


    오전 취재가 늦게 끝나 1시가 넘어 점심으로 콩나물 해장국과 김치 해물전을 먹다.
    오후 들어 날이 풀리긴 했지만 콩나물 해장국을 먹으며 땀을 흘릴 기온은 아니었다.
    그런데 땀이 흘렀다.
    사무실로 들어와 취재한 사진을 마감하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주르륵 주르륵 콧물이 흐른다.
    재채기도 연달아 터져 나온다.
    콧물은 마시고 재채기는 터뜨린다.

    마침 후배가 전화를 한다.
    코맹맹이 목소리에 후배는 이유를 묻는다.
    직전 취재가 다비식이었기에 아마도 이산화탄소를 많이 들이 마신 것이라 얘기했더니,
    후배는 그 때문이 아니라고 단정한다.

    계속된 죽음 취재 때문에 기운이 많이 빠진 것이라고 말한다.
    내심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평택 소방관 순직 사건과 묘엄 스님 다비식 등으로 요 며칠 계속 죽음과 대면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했던가.
    여하튼 가까이 하는 것과 비슷해지고 닮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죽음을 취재하면 죽음과 가까워질 수 있다.
    아마도 에너지를 많이 빼앗긴 것이 사실인가 보다.

    그래 오후에는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가자 작정했다.
    간호대 2학년생들의 나이팅게일 선서식.
    계속 콧물은 흘러나왔지만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 남자도 두어 명 포함돼 있긴 했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이 가득한 공간에 몸을 맡겼다.
    나까지 젊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양기를 몰래 훔쳐 먹었다.
   
    2,30대까지는 먹는 것으로 몸을 관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40대가 되면서부터는 먹는 것보다는 자는 것으로 몸보신을 한다.
    오늘은 일찍 눕기로 했다.
   
    양기 도둑질 덕분에 내일 아침엔 가뿐하게 일어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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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 소리와 공명하다. 2011.12.04 22:06:15

비구니 큰 스승 묘엄스님이 지난 2일 입적했다.

일요일 오후 빈소 모습을 담기 위해

잠깐 수원 봉녕사를 찾았다.

야외 테이블에서 마감을 한다.

벌거벗은 나무 사이로 시린 해가 넘어간다.

바람도 제법 거세다.

춥다.

차에서 마감하자 싶어 노트북을 챙기려는데

소리가 들린다.

자연음 그대로인지 마이크와 스피커를 거친 소리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여하튼 크게 귓가를 때린다.

목탁 소리다.

텅 빈 나무통을 나무 막대기로 두드리는 소리다.

탁 탁 탁.

묘하게 울린다.

처량하게 결린다.

희미하게 떨린다.

 

 

공명(共鳴)이다.

내가 울리고, 내가 결리고, 내가 떨렸다.

 

그래 같이 떨리고 싶어졌다.

 

조금이라도 채워진 것은 있나?

채워진 건 없지만 그래도 떠들 수는 있을 듯싶다.

입으로 떠드는 것에 지겨워져 손으로 떠들고 싶어졌다.

 

다시 판을 벌려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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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훅'이 아닌 '휙'. 2011.06.06 22:52:40


떠나야할 때가 되면 어련히 알아서 떠나는데

사람은, 또 사진기자는 욕심에 ‘훅’ 불어본다.

 

민들레 홀씨는 알겠지.

더 이상 모체에 머무르는 것이 부담스러운 시기를.

 

떠나는 시기를 아는 현명함이 제발 내게도 있기를 바라본다.

제발 다른 이의 훅 입김에 떠나는 일은 없기를.

 

 

 

지난 일기를 보다보니 이런 글이 있었다.

왠지 마음이 짠해진다.

자유를 지닌 이여!

‘훅’이 아닌 ‘휙’을 누리자.

 

휙 떠나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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