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홈연합 블로그 홈블로그홈  l 로그인
권혁창 블로그 (중동유럽 엿보기)
http://blog.yonhapnews.co.kr/faith2m/
[특파원코너] 권혁창 블로그
이전달 2014 10 다음달 24 금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카테고리
최근포스트
최근코멘트
최근방문자
포스트 : 6
코멘트 : 16
트랙백 : 6738
방명록 : 40
방문자 : 299442
오늘 : 716
RSS구독 RSS 2.0 (?)
Comment RSS 2.0
전시(?)된 잔해 2007.02.16 07:35:47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의 도심. 매케한 자동차 매연이 코를 찌르고 10분쯤 서 있으니 머리까지 지끈지끈 아파온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거리가 4-5년 전만해도 비슷했다고 한다.)  20년은 족히 돼 보이는 낡은 자동차들이 대책없이 내뿜는 검은 연기들이 도심 곳곳에 섬처럼 떠있는 푸른 숲 마져 삼켜 버릴 것만 같다.

그런데 웬걸 조금 걷다보니 이번엔 시각 공해마저...짓다 말았는지, 삼풍 백화점처럼 붕괴된 건지 모를 거의 뼈대만 남은 대형 건물 2채가 도심 한복판에 덩그마니 서 있다. 이게 바로 1999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의 78일간의 폭격으로 부서진 그 유명한 세르비아 군사령부와 국방부 건물이란다. 근데 전쟁이 끝난지 8년이 됐는데 왜 저 모양일까?
두 건물은 폭격맞은 그대로 전혀 손도 대지 않은 채 생생하게도 전쟁의 잔해임을 과시하고 있다.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연방 정부와의 소유권 문제와 비용 문제 등이 겹치면서 수리를 못한 채 방치돼 있다는게 전해들은 세르비아 정부의 공식 설명이다. 나름대로 복잡한 사정이 있겠지...그런데 사정 치고는 좀 궁색해보인다. 소유권 문제로 이런 걸 저렇게 너저분하게 전시해놓는다는건 별로 설득력이 없는 것 같고 돈이 없다는 건 더더욱 신통한 변명이 못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난 스스로 그냥 이렇게 믿기로 했다. 저 건물들을 방치하고 있는 건 어쩌면 세르비아 정부가 코소보 내전 당시 폭격을 가한 나토군과 이를 주도한 미국에 대한 증오심을 절대로 잊지 말고 가슴속에 새겨두자는 일종의 정책성 홍보물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후 세르비아 정부 고위 관리들, 베오그라드 시민들, 한국 대사관 관계자들 등등 많이도 만났지만 한번도 이런 나의 생각을 확인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믿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듯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수리하지 않고 전시(?)해놓은 건물은 이 뿐이 아니었다. 그 유명한 오폭사건의 현장인 베오그라드 중국대사관도 도심 한가운데는 아니지만 아직까지 흉물스럽게 널브러져 있다. 당시 미군의 폭격 기술로 볼 때 오폭은 어불성설이라고 한다. 클린턴 자서전에는 그의 대중국 유화정책에 불만을 품은 CIA나 국방부 매파 인사들이 미-중국 관계 교란을 위해 당시 폭격을 위해 사용된 지도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중국대사관은 왜 수리하지 않을까.  혹 중국 인민들과의 반미 동맹을 위해?

어찌됐든 세르비아와 베오그라드는 미국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심이 남아 있는 동네다. 99년 미군의 폭격으로 거지에 동네북 신세가 됐는데  미국에 대한 감정이 좋을리 없고, 세르비아 역사와 종교의 성지인 코소보를 분리 독립시키는데 앞장서고 있으니 더욱 그럴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EU에도 가입해야 겠고 미국과도 잘 지내야 겠다는 생각도 하겠지. 하지만 미운 건 미운거다. 이런 세르비아의 민심을 미국이 모를리는 없을 것 같다. 향후 코소보 독립 문제가 언제 어떻게 풀릴지를 결정하는 건 코소보 내 알바니아계 주민들의 민심 뿐 아니라 비록 전쟁에서 졌지만 세르비아 국민의 생각도 변수가 될 것이다.
서방 언론은 세르비아가 '죽일 놈'이라고 선전해왔지만, 따지고 보면 세르비아로서도 억울한 면이 없지는 않다. 그건 긴 얘기니까 나중에 시간 있을때 다시 하기로 하자.

코멘트(3)     트랙백(504)
헝가리엔 아직도 온정주의가? 2007.02.01 08:16:06

외국 생활에 한 번은 크게 아프는 일을 경험한다는데.. 최근 일어난 복통이 그 '한 번' 이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저녁 식사후 갑자기 속쓰림이 밀려왔다. 속이 쓰리다는 건 과음을 해도, 매운 음식을 먹어도 쉽게 나타나는 증상이지만, 이 날은 웬지 달랐다.
갈수록 쓰라림이 심해지고, 위장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통증도 격했다.
저녁 7시부터 시작된 통증이 새벽 1시까지 멈추지 않자 도저히 참지 못한 나는 와이프에게 운전을 시키고 인근 종합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수위에게 배가 아프다는 시늉을 하니 손을 가르키며 8번 건물로 가란다.
음산하니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날올 것만 같은 병원 뜰을 가로질러 배를 움켜쥔 채 10분을 걸어서 나온 8번 건물은 모든 문이 잠겨있었다.
와이프가 다시 수위에게 문의하러 간 사이.  난 잠긴 문을 미친 듯이 두드리며 한국말로 문 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간호사가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는 의사가 지금 없다고 한다. 배가 아프니 빨리 의사를 데리고 오라고 하며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자 그재서야 퉁명스럽게 안으로 들어와 기다리란다. 
나는 헝가리의 종합병원은 전부 국립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X같은 놈들을 봤나!" 30분을 넘게 기다린 끝에 나타난 중년의 여자 의사는 더듬거리는 영어로 증상을 묻는다. 영어, 헝가리어, 손짓발짓 모두 동원해 나의 고통을 하소연하고,  진통제라고 생각되는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 통증이 조금 가셨는지 잠깐 잠이 들었다.
새벽 4시쯤 와이프가 이젠 집에 가도 된다며 깨웠다. 내가 잠든 사이 와이프는 의사와 이것저것 얘기를 나눈 모양이다. 헝가리 의료보험이 없으니 응급치료비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비용을 물어봤다.  의사가 '조용히 입다물라'는 듯이 손을 입으로 가져간 뒤 웃으며 그냥 가란다. 아! 정말이지 고맙기 이를데 없지 뭔가. 보험도 없는 외국인의 처지를 딱히 여겨(?) 새벽에 잠을 깨워 약을 주고 치료비까지 받지 않겠다니...
연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나오며 와이프가 하는 말 "헝가리가 왜 못사는지 알겠다"

헝가리는 지금 의료체제 개혁에 사활을 걸고 있다. 쥬르차니 페렌츠 총리 정부는 GDP의 7%가 의료 보조금으로 날아가버리는 불합리한 고비용 구조를 뜯어고치겠다고 나섰다.
1월부터 의료 보조금을 대폭 삭감,  지금까지 수십년간 공짜이던 의사 왕진비를 300포린트(1천500원) 정도 받고,  약간의 병원 진료비도 도입했다. 얼핏 별 것 아닌 돈이라고 생각되지만 수십년간 무료에 익숙해진 서민들의 불만은 대단하다. 작년 하반기에 격화됐던 총리 퇴진 데모에는 의료 개혁에 대한 반발도 크게 작용했다.
진료비를 받지 않은 맘씨 좋은 여의사. 우리에겐 고마운 존재였지만 헝가리의 낡은 의료체제를 몸소 보여준 것은 아니었는지...

코멘트(3)     트랙백(439)
터터의 십자가상 2007.01.08 07:40:15

블로그 운영을 놓고 오랫동안 고민에 빠졌었다.
물론 게으름 탓이지만,  고심했던 여러가지 이유 중 가장 그럴듯 한 건
스스로 운영 자격에 대한 철학적(내가 자기 합리화할 때 자주 쓰는 말)
회의론에 빠졌다는 거다.  
그렇지만 결론은 다시 열심히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결심하게 된 여러가지 이유 중 가장 심플한 건
'일단 시작했으니까'다. 
당부의 말씀이 있다면 새해 이 블로그를 접하는 독자들은
그냥 헝가리에 상주하는 한 기자와
'정신적 교감'을 나눈다는 정도로
받아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2006년의 마지막 날 오후 
그래도 해를 보내는데 추억이 될 만한 곳에 가보자고 
다늦게 차를 몰고 나왔다. 
부다페스트에서 북서쪽으로 40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터터(TATA)라는 작은 도시(마을이라고 하는게 나을 듯)이 있다.   
많은 사람들, 특히 골퍼들은 보통 터터(헝가리인들의 발음은 떠떠에 더 가깝다)
를 골프장이 있는 곳으로만 알고 있지만 
이곳엔 철새 도래지로, 생태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꽤 근사한 호수도 있고..
관광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중세 때 지어진 교회와 성벽 등이 
고즈넉이 자리잡은,  좀 오랜 역사가 느껴지는 마을도 있다. 
마을 초입을 지나다보니 가파른 언덕 위에 아주 오래된, 초라할 정도로 작은 
성당이, 그 옆엔 풍상에 견디지 못해 골격마저 이지러진
3개의 십자가상이 눈에 들어왔다. 
추웠지만 그냥 올라가봤다.
역사적인 연원이 있을 법 했지만 물어볼 사람도 없고...
별로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이름 없는 십자가상으로 족했다. 

올핸 머저르족들에게 좀 밝은 미래가 오길 바란다. 
핍박과 고통의 역사에서,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침체에서, 
숨가쁘게 달려가지만 늘 과거의 상흔에 힘겨워하는데서,
일부에 몽고반점이 있다는 이유로 느끼는 근거없는 뿌리의식에서,
우린 머저르족에게 동류 의식도 갖고 있지 않은가.

헝가리는 지금 그 어느 중동유럽 국가들보다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위치에 있다.
방만의 세월이 가져온 적자를 메우기 위해
올해 머저르인들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 같다.
인플레가 중동유럽 최고 수준인 가운데 국가보조금은 거의 폐지.삭감됐고
무상이던 의료,교육도 이젠 돈을 내야하고...가스,전기료는 폭등했다. 
한 외국인은 이런 상황에서 왜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빈부 격차는 심해지고, 서민들의 생활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풍상에 이지러진 십자가상이 머저르인들의 역사처럼,  고통처럼 느껴졌다. 
그 뒤로 2006년의 마지막 노을이 꺼져가고 있다.
새해엔 어렵지만 힘을 좀 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코멘트(2)     트랙백(2504)
헝가리와 유대인 2006.07.20 09:37:27

그리스 출신인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영화 '뮤직박스'(Music box)를 떠올리게 하는 일이 얼마전 일어났다. (7월14일 송고 <헝가리 유대인 학살 전범 호주서 89세로 사망> 기사 참조)
이름은 폴가르 라요쉬. 2차 세계대전 당시 부다페스트 언드라시 거리에 있었던 파시스트당 '애로우 크로스'(Arrow cross)의 본부장을 지냈던 그가 호주 멜버른에서 89세로 사망했다.
폴가르는 나치 정권 하에서 5만여명의 유대인을 학살, 고문한 혐의로  국제 유대인 인권단체인 '시몬  비젠탈 센터'가 수년전부터 추적해온 나치 부역자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가 나치에 부역하면서 유대인 학살 및 고문에 직접 가담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시몬 비젠탈 센터는 일명 '라스트 찬스'(Last Chance.마지막 기회)라는 나치 전범 추적 운동을 벌이면서 그의 전범 혐의를 확신했지만, 6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아무도 그의 혐의를 증언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심증은 충분하다. 애로우 크로스의 본부장 정도라면 유대인 학살의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고위 관계자의 책임은 또 다른 문제다.
그런 와중에 그가 죽었다. 재판대에 서지 않은 채...그가 유죄라면 유대인 단체로선 그를 단죄할 기회가 사라졌지만, 그가 만약 무죄라면 폴가르 자신으로선 결백을 입증할 기회도 사라졌다.

시몬 비젠탈 센터의 전범 추적 기사를 쓴 적이 있던 기자는 폴가르의 사망 소식을 접하곤 아주 오래전 봤던, 제시카 랭이 열연한 영화 '뮤직박스'의 장면들과 마주쳐야 했다. 아주 생생하게.
영화에서 애로우 크로스 간부였던 과거를 숨기고 미국으로 이민한 아버지를 변호하던 제시카의 너무도 지적인 매력에 숨죽이던 그 때 그 장면들을 떠올리는 건 즐거운 일이었지만, 폴가르의 죽음이 오버랩된 기자의 머리 속은 '역사속의 진실'이라는 심각한 주제로 복잡해졌다.

영화에서 제시카 랭은 아버지의 무죄 변호에 성공했으나 뒤늦게 뮤직박스에서 꺼낸 사진들을 보고 아버지 과거의 진실을 알게 되지만, 현실 속에서 폴가르의 아들은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결백하며, 전범 의심을 받는 사실에 괴로워한 것이 죽음을 재촉했다"고 말하고 있다. 
폴가르의 아들이 혹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영화처럼 아버지의 진실을 모르고 그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폴가르는 자살한 것이 아닐까. 만에 하나 그가 자살했다면 진실을 숨기기 위해서일까,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일까.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역사의 진실'을 찾으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시몬 비젠탈 센터는 폴가르가 죽었지만 그의 전범 혐의는 끝까지 입증하겠다고 한다.
헝가리는 유대인, 나치와 역사적으로 깊은 관계를 가진 나라다. 머저르족이 카르파티아 분지를 정복했던 당시 그 지역에 유대인들이 살고 있던 것에서 출발해 13세기 몽고의 침략 때 엄청나게 많은 수의 유대인 유입이 이뤄졌으며, 2차대전 때는 나치 점령 당시 56일간 무려 43만7천명이 아우슈비치 등 수용소로 보내져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유대인이 추방됐었다. 
지금도 헝가리에는 아주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고, 올해 초 부다페스트에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세워져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시몬 비젠탈 센터를 비롯한 많은 인권단체들이 지금도 헝가리인 나치 전범을 추적하고 있다.
사족이지만 헝가리에서 이뤄지는 집요한 진실 추적 작업이 '홀로코스트'를 승자의 역사 속에만 존재하는 견고한 신화로 굳어지는 것을 막아 살아있는 역사의 진실로 입증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코멘트(4)     트랙백(1431)
구야쉬 코뮤니즘 2006.06.20 09:12:31
구야쉬(gulyas)는 헝가리가 자랑하는 몇 안되는 세계화된 요리중 하나다.
영어와 독일어권에서는 '굴라쉬'라고 부르는데 헝가리어로는 '구야쉬'가 맞다.

사각형 모양의 소고기와 파프리카, 감자, 당근 등을 백포도주를 섞은 물에 썰어넣고 약한 불에 2-3시간 조리한다.
구야쉬에 들어가는 소고기는 원래 헝가리 남동부에만 산다는 특유의 회색소를 사용하는데 조리해놓으면 회색소인지 검은소인지는 전혀 구별할 수 없다.
흔히 구야쉬를 우리나라 육개장과 똑같은 맛이라고들 하는데 실제로는 야채를 넣은 비프 스튜나 한국의 옛날 경양식집에서 맛볼수 있었던 야채수프 맛이라고 하는게 정확할 듯 싶다.
우리나라 음식과 똑같은 맛을 내는 음식은 '헐라스레'(halaszle)라는 생선 수프인데 한국의 매운탕과 거의 흡사하다.

그런데 내가 흥미를 느낀 건 구야쉬 코뮤니즘(gulyas communism)이라는 말이 있다는 거다.
공산주의 붕괴 이전인 지난 1970년대 독일 언론인이 처음 사용한 이 용어는 당시 헝가리의 비교적 자유분방한 공산주의 체제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면서도 시장경제 요소와 다당제 등 정치 민주화를 일찌감치 도입한 헝가리식 공산주의를 서방사회는 헝가리 전통 음식 이름을 가져다 붙인 것이다. 
결국 구야쉬 코뮤니즘은 서방사회 시각으로는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원동력쯤으로 여길 만한 상당히 긍정적인 용어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재밋는 건 정작 상당수의 헝가리인들은 이 용어를 잘 모르고 있고 안다고 해도 상당수는 이 용어를 매우 자조적이고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공산주의 시절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돌아온 한 지식인은 "옛날 소련의 위성국가로 간섭과 탄압을 받았던 것은 '구야쉬 공산주의'가 상징하는 헝가리의 나약함 때문"이라고 말해 나를 어리둥절하게 하기도 했다.
그가 이 용어의 기원이나 역사적 배경을 잘못 이해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구야쉬 코뮤니즘'이 주는 뜨뜻 미지근한 이미지에 많은 헝가리 지식인이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건 일면 사실인 것 같다.

그 옛날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말의 허상이 떠올랐다.
민주주의적 가치 실현하는데 있어 한국식이라는 수식어의 모호한 의미에 쓴 웃음을 짓던 필자가 공산주의면 공산주의지 '구야쉬 공산주의'는 또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 것이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혹자가 헝가리가 중동유럽 국가들중에서 가장 먼저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EU에 가입한 것이 모두 다 이 '구야쉬 공산주의' 덕분이라고 말한다면,
헝가리가 제대로 된 공산주의는 흉내 한번 못내보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뒤에도 많은 사람이 공산주의 시절을 그리워하고 그때 몸에 밴 습관을 떨치지 못하는 것도 다 이 '구야쉬 공산주의'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코멘트(0)     트랙백(278)
夜景에 대한 斷想 2006.06.07 09:06:22

부다페스트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가 야경이다.
야경으로 유명한 도시는 많지만 부다페스트는 느낌이 다르다.
화려하지 않지만 장중하면서도 뭔가 심장을 잡아끄는 감동이 있다.
모든 사물은 보는 사람들의 감각적 취향이나 멘탈리티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지만..부다페스트의 세체니(
Szechenyi) 다리나 부더 왕궁을 밤에 보면 어떤 때는 을씨년스러움이나 차가운 공포감이 밀려들기도 한다. 겨울밤에 보면 특히 그렇다.

헝가리 사람들의 자살율은 최근 통계는 아직 살펴보지 못했지만 지난 2002년에는 인구 10만명당 22.6명으로 한국(24.2명)에 이어 세계 2위였다.
헝가리 사람들에게 너의 나라 사람들의 자살율이 왜 높으냐고 물으면 대부분 난감한 표정을 짓고는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한 대학생은 "스트레스가 많아서.."라고 말해서 깜짝 놀랐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일리가 있다. 스트레스가 많다보니 교통사고도 많고(인구 10만명당 교통사고 사망자수 세계 1위), 알코올 중독자(연간 성인 1인당 알코올 섭취량 유럽 1위)도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몽고와 터키의 침략, 오스트리아의 지배 등 오랜 세월 피지배의 역사를 거론하는 경우에는 일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지만 웬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여전히 남는다. 
차라리 높은 자살율에는 선천적인 유전인자가 작용하고 있다고 하면 어떨까.
근무 강도가 높고 유난히 경쟁이 심한 한국이나 일본의 높은 자살율과는 다소 다른 시각의 틀로 바라봐야 할 것 같지만 어쨌든 딱 떨어지는 답을 구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다시 야경으로 돌아가자.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글루미선데이(gloomy sunday)의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야경과 자살의 상관관계를 한번쯤 생각해봄직하다. 글루미선데이의 주제곡은 1935년 헝가리에서 레코드로 발매된 이후 8주만에 187명이 목숨을 끊었다고 하는데...내가 기억나는 건 우습게도 독일인 한스가 일로나에게 청혼을 거절당한 뒤 자살을 기도했던 장면이다. 레스토랑 사장인 자보가 물에 뛰어들어 한스를 구해냈던 곳이 바로 다뉴브강이 유유히 흘러가는 바로 세체니 다리쯤 돼 보인다--사실 이 장면은 한스의 코믹한 에피소드처럼 처리됐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거절당하고...알딸딸하게 술 한잔 마시고...마지막으로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몽롱한 눈으로 바라본다면, 한스처럼 물에 뛰어들고 싶지 않을까?


 

코멘트(4)     트랙백(15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