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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세상] 세상에서 가장 먼 머리와 가슴의 거리를 줄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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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시골 초등학교의 교실을 짓는데 벽돌 한 장이라도 보태기 위해 에티오피아를 오간 7년 간의 여정을 담은 '에티오피아, 13월의 태양이 뜨는 나라'로 최근 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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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의 경제학' 2013.09.07 17:23:51

 

    "출하작업은 밤 11시부터 시작하거든요."
    배추 출하를 묻는 말에 출하 담당자는 이렇게 응답했다.
    이 시간은 곤란하다. 밤새 사건·사고를 취재하는 당직을 맡은 날이다 보니 자리를 비울 수 없다.

    산마루가 드러나는 새벽에 문을 나선다.
    붉은 기운이 없는 것으로 봐 날은 밝아도 해가 쨍하게 뜰 것 같지는 않다.

    '안반데기 2.8㎞'
    표지판을 발견하고 산길로 접어든다.
    아스팔트가 포장된 길이지만 주변에 나무가 우거져 있다.
    내 앞으로 5t 화물차가 커브길을 오르느라 애를 먹는다.
    길이 좁은 데다 270도나 되는 급커브는 베테랑 화물차량 운전자들에게도 난코스다.
    갑자기 하늘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배추밭이 물결 친다.
    강원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 '안반데기' 마을이다.
    지형이 마치 떡메로 치는 안반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산자락을 오를 때까지 밭이 한 평조차 보이지 않던 산속에서 정상을 따라 펼쳐지는 배추밭 풍경은 불가사의처럼 다가온다.




    가파른 배추밭마다 사람들이 달려들어 배추를 뽑아 망에 담는다.
    배추 3포기가 한 망에 들어간다.
    배추밭에서 농사짓는 주인을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일을 하는 사람은 주변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을 찾아 나섰지만, 미로 같은 농로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하늘과 가까운 배추밭에서는 첨단 문명의 상징인 내비게이션이 소용없다.
    "저 아래 가면 비닐하우스가 있는 집이 있어요."
    귀중한 정보를 얻은 듯 길을 따라가다 보면 비닐하우스가 없는 집이 없다.
    용케 찾아가보면 주인은 다른 곳에 있다.
    오늘이 감자를 캐는 날이란다.
    배추 수확을 보러 왔다가 감자밭을 찾는 게 말이 안 되지만 그래도 가보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저기 보이는 감자밭으로 가는 길 입구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 포기했다.

       

    수소문 끝에 농사짓는 분들을 만난 곳은 바로 조금 전에 올라오던 도로 변이다.
    길가의 제초작업을 하러 나갔다고 말해 주는 주민은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을 찾으면 된다고 했는데 연녹색과 색이 바랜 노란색을 입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풀이 도로 변에 우거져 있으면 사고라도 날까 걱정돼 제초작업을 하고 있었다.
    농부는 줄담배를 피우더니 입을 열었다.
    "방송 3사 인터뷰도 사양했어요."
    요즘 배춧값이 급등해 찾아오겠다는 연락이 왔지만 별로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사정을 들어봤더니 작황은 좋아 보이는데 비가 오지 않는 바람에 속이 덜 차고 썩었다는 것이다.
    그와 도로변 이야기를 이어가는 사이에도 배추를 실은 트럭은 조심조심 길을 내려가고, 배추를 실어 오는 차량은 계속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오르고 내려가는 차량은 좁은 산길에서 서로 머뭇거렸다.
    길가에 풀이 우거져 있으면 길을 피해 주는 차량이 자칫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농가가 답답해 하는 것은 펜대에 의존하는 탁상행정이었다.
    얼마 전까지는 배추 수급대책을 세우러 오는 분들이 관청에 가서 부단체장으로부터 브리핑을 받고 가는 것이 전부였다고 했다.
    그나마 지금의 농정 수장은 배추밭을 찾아와 주민과 간담회를 했다고 한다.
    농부는 출하할 물량이 얼마 되지 않는 것도 답답하지만 이렇게 가락동 시장으로 가도 경매조차 하지 못하고 버리는 것이 많다는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정책을 결정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장이라는 곳은 상품성이 최고다. 하지만, 요즘 배추는 가뭄에 속이 덜 차서 선택조차 받는 모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소금에 절여 김치를 담그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는데도 말이다.
    배추 농가에 있어 청천벼락 같은 말은 당국의 '수급 안정'이라는 용어다.
    배춧값이 조금 오를 것 같으면 유권자를 의식해 바로 중국산 배추를 들여와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발표를 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외국에서 배추를 생산해온다는 식이다.
    농가들은 외국도 결코 배추 생산기지로 안정된 곳이 아니라고 했다.
    그곳도 천재지변과 싸우기는 마찬가지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국내 생산기반에 투자해달라는 것이다.

    희망은 없지 않다.
    소비자가 배춧값보다는 배추 품질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대형 상점에 가는 소비자는 배춧값만 보고 입을 쩍 벌일 게 아니라 어떤 배추가 좋은 것인지 좀더 신경을 쓰는 것이다.
    아는 만큼 자신의 입으로 들어가는 품질 좋은 배추를 선택할 수 있는 법이다.
    속이 덜 찬 작은 배추라도 맛과 영양면에서는 뒤지지 않는다.
   
    원래 저온성 작물인 배추는 여름에는 재배하기 어려웠다.
    무더운 여름에는 하늘과 맞닿은 고랭지에서만 배추를 재배하는 이유다.
    이 땅은 농부들이 땀 흘러 개간한 땅이고, 여름 내내 무더위와 싸우며 배추를 길렀기에 비싸거나 싸거나 시장에서 구경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정책결정자도 유권자의 눈치를 보는 세상이니 소비자가 더 지혜로워지면 경매조차 받지 못하고 도로 밭에 버려지는 배추도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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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길을 잃은 에티오피아 노병 2013.07.03 16:11:01

 

    올해 6·25참전 노병 가운데 자주 노병은 에티오피아 참전 군인들입니다.
    늦었지만 다행입니다.
    그동안 미군 등이 주인공이었는데 아프리카 가운데 유일하게 지상군을 파견한 나라까지 관심을 둔 것은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용사촌을 찾는 발길도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에 참전하기 위해 훈련을 하던 곳에 하나 둘 자리를 잡은 코리언 빌리지는 예정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코리언 빌리지가 불편해 이사를 가는 분들이 늘어난 것도 원인이지만 아디스아바바 시내의 개발로 판잣집들은 당국이 철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이로 대로가 뚫려 옛 모습을 기억하고 찾아가면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한국의 청계천 주변에 있던 판자촌들이 겪은 운명과 같습니다.
   
    에티오피아 참전 노병은 시내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아디스아바바에서 찾은 노병의 집은 코리언 빌리지가 아니라 시장 주변이었습니다.
    집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거리로 쏟아진 것처럼 오가는 사람이 많은 시장통 끝자락에서 게르마우 알타예(84)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할아버지보다 먼저 만난 사람은 가족들입니다. 빨래가 널려 있는 마당에 여러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엄마품에 안긴 아이가 예뻐서 사진에 담고 싶었는데 파리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 눈에 파리가 몰려 있는 사진은 애처로움을 호소하기에 좋은 사진입니다. 그동안 에티오피아를 찾은 외신기자들은 피골이 상접한 아이나 구정물을 먹는 사람, 파리가 다닥다닥 붙은 어린이를 보여줬습니다.
    에티오피아를 더는 가난의 대명사로만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분의 집은 빗물이 새 천정이 얼룩덜룩했습니다.
    노병의 군기는 아직 살아있었습니다. 군복을 갖춰 입고 손님을 맞아 순간 당황했습니다.
    그의 기억에 남은 한국은 잿더미였습니다.
    "내가 참전했을 때 한국은 모든 게 파괴돼 아무 것도 없었어"
    그는 8살 때 에티오피아 셀라시에 황제의 근위대원으로 6·25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올해 6월 이분이 한국에 오셨습니다.
    그 사이 참전 노병 두 분이 세상을 뜨셨습니다.
    달라진 것은 이 분의 건강이었습니다.
    60년전 전쟁터를 돌아보기로 한 전날 숙소에서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이분이 사라졌던 것입니다. 2시간 만에 길을 헤매는 할아버지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분은 다음날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저격 능선 전적비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수도 아디스아바바 시내의 빗물이 새는 허름한 집에서 아내, 자녀 4명과 여생을 보내는 그가 옛 전투현장을 찾은 것은 이번이 60여 년 만에 처음입니다.
    당시 지부티 항구에서 고향의 음식인 인젤라를 마지막으로 먹고 떠났던 그는 에티오피아 파병부대 가운데 1진으로 1951년 한반도에 도착했습니다.
    지독하게 추웠던 한국의 날씨, 다른 언어, 음식은 전쟁터에서 또 다른 적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에는 이분이 인터뷰가 되지 않았습니다.
    질문에 다른 대답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기억력이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결국 인터뷰를 포기했습니다.


    이제 생존한 참전용사는 200여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기록조차 제대로 없는 이분들의 머나먼 한국전 여정 이야기도 사라질 것입니다.
    뒤늦게 너도나도 앞다퉈 행사를 마련했지만 우리만의 잔치일지도 모릅니다.
    관심도 잠깐 안타까움이 밀려드는 이유입니다.

    에티오피아 노병을 돕거나 관심을 두는 일에는 공을 말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너무 늦었기에 미안하고, 이제 돕더라도 어쩌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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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열차'를 지연시키는 사람들 2012.11.21 08:04:11

62년만에 열차가 다시 들어온 백마고지역.
개통행사를 앞두고 열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터널을 관통하면서 빨강 불빛이 반짝였다. 다들 기대가 크다. 조금 뒤면 백마고지역에 열차가 닿는다. 백마고지는 6·25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중부전선의 격전지이다.
열차가 역을 코앞에 두고 멈췄다. 누군가 철로를 따라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철도경찰이 달려가 길을 비켜달라고 했지만 묵묵부답. 그가 걷는 속도대로 열차는 걷는 속도로 역에 도착해야 했다.

"넥타이를 매고 와야 하는 했는 걸!" 공직에서 일했던 한 분도 다른 주민들처럼 찬밥 신세가 됐다. 행사장 앞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대자 공사업체 관계자들이 달려와 차를 빼라고 압박했기 때문이다. 갑을 관계가 분명한 국책사업에서 공사업자들이 누구의 눈치를 보는지는 명백하다. "저쪽 일반 주차장에 대세요" 문제는 일반 주차장이 꽉 차 있고, 이 주차장만 비어 있다. 내빈용이란다. 행사가 임박해도 텅 비어 있다. 운전기사까지 대동해 오는데 주차 걱정할 염려 없는 높은 분들이시다. 이날 62년만에 열차가 들어오는 걸 보기 위해 많은 주민들이 차를 운전하고 왔지만 내빈만을 염두에 두고 몰아내는 행사 운영에 주민들은 찬밥 신세가 됐다. 열차를 이용하는 사람들보다 자가용을 더 많이 이용할 사람이 대우를 받는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철로 개설을 높고도 마찬가지였다고. 한 주민은 요식적으로 의견수렴 같은 것을 거쳤겠지만 사실상 일방적으로 노선을 정해 추진됐다고 귀띔했다.

개통식이 열리는 날 부랴부랴 나무를 심는다. 관광객들은 "저렇게 심은 나무가 살겠어"라고 혀를 찬다. 내 돈이라면 이렇게 집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날 반세기만에 들어온 열차는 아쉬움이 많았다. 과거 열차가 정차하던 철원역보다 800m나 못 미쳤다. 주민들은 철원역이나 이 곳에서 더 올라간 월정리역까지는 가야 운행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민통선이라고 쳐 놓은 줄을 움직일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참석자들은 이번 열차가 백마고지역이 아니라 더 북상한 위치에 설치됐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도 이같은 것을 눈치챘는지 원산을 거쳐 유라시아까지 원대하게 철마가 달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의례 하는 소리로 들었을 뿐 수건 챙기기에 더 바빴다. 가슴에 와 닿는 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민초들은 공사를 추진하는 방식이나 이날 개통 행사를 하는 행태만으로도 진정성을 알 수 있다. 이걸 모르는 것은 주최 측 뿐이다. 아니 무시하는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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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세상이 무서워요." 2012.10.20 22:06:17

      3년 전 동해안에서 어미와 조난당했던 새끼 수달.

    치료를 받고 완치돼 북한강 DMZ 부근에 방사되는 날을 맞았습니다.


    어미는 문을 열자마자 물속으로 뛰어들었지만,
    아들 수달은 풀어주어도 다시 이곳으로 뛰어들어왔답니다.

    이제는 스스로 물고기도 사냥해야 하는 세상이
    새끼 수달에게 녹녹해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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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의 피아노 2012.10.15 22:22:09

      피아노 한 대가 눈에 들어온다.

    6·25전쟁 당시의 최대 격전지였던 철의 삼각전적지 전투를 기리는 추모비 제막식이 열린 강원 철원군 평화문화광장.

    다시는 이 땅에 전쟁과 같은 비극이 없도록 참전했던 분들이 세운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고지의 주인공이 바뀌고, 함께 전투에 나갔던 동료는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던 철의 삼각지역 전투였다.

    월동하기 위해 내려온 기러기들이 추모비 너머 DMZ 상공에서 편대 비행을 한다.

   

    피아노 앞은 널찍하다.

    아직 아무도 앉아 있지 않다.

    나는 언젠가 이 피아노에서 평화의 선율이 퍼지기를 꿈꿨다.


    그런데 추모제 마지막에 이 피아노가 사용됐다.

    소년 소녀들과 함께 목소리를 맞춘 피아노가 연주한 노래는 다름아닌 6·25 노래다.

    아아 잊으라, 어찌 우리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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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위에는 별이 있잖아요" 2012.08.17 17:06:26

    "낙하 준비를 하고 있어요."
    "……"
    장소만 말하고 전화가 끊어졌다. 뭘 물어볼 틈도 없었다.
    벌써 어두컴컴한 저녁에 차를 몰아 가보니 누군가 4층 옥상에 서성거린다.
    ASA 3200에도 좀처럼 잡히지 않는 어둠이 이미 주위를 포위하고 있었다.
    바닥에는 119구조대가 에어 매트를 설치해 놓고 있었다.
    "추운 겨울에 일한 돈을 주세요"

    강력계 경찰까지 출동해 설득에 나선다.
    에어 매트에 잔뜩 바람을 넣는 기계 소리가 양쪽의 목소리를 잠식한다.
    그가 누구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학교건물 공사를 맡은 업체가 있고 그 아래로 하도급을 계속 준 모양이다.
    이 일용직 노동자는 그 맨 끝에 일용직 노동자로 참여했다.
    아직 찬바람이 가시지 않은 강원도 땅에서 지난 3~4월 목공 형틀을 하는데 참여했지만 아직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공사 관계자가 답답한 듯 담배에 불을 붙인다.
    하도급업체에는 돈을 지급했는데 이후부터  사고가 난 모양이다. 그 하도급업체에 무슨 일이 생기고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건설업체는 밀린 임금을 대신 지급하기로 했으나 법정 관리에 들어간 상태라서 직접 지급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라는 것.
    하도급업체는 밀린 임금 지급을 이런저런 사정으로 차일피일 미룬 모양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일용직 노동자는 결국 이날도 돈을 받지 못하게 되자 옥상으로 올라가 야간 시위를 벌인 것이다.

    하늘이 어두워지니 별이 하나 등장했다.
    실루엣으로 보이는, 점처럼 미약해 보이는 그의 머리 위로.
    더 어두워지자 그보다 별이 밝아 보였다.
     
    '그래도 당신의 머리 위에는 아직 별빛이 빛나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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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꽃..기적의 결실 2012.06.25 22:54:36

    1.2009년 11월 아프리카 에티오피이의 남부 딜라마을.

    한국인이 세운 한별초등학교 교정에서 커피를 수확하고 있었다.
    이 곳은 에티오피아의 대표적인 유명 커피 생산지역과 가깝다 보니 학교는 물론 집집마다 커피나무가 몇 그루씩 있다.
    바로 따낸 커피체리는 발갛거나 형광빛이 감돌았다.
    그때 하교하던 어린이들이 커피 체리 몇 알을 건네주었다.

                

    그 커피 체리를 품에 안고 돌아오던날 한국은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찬 공기가 뺨을 훔쳤다.
    벌써 한파가 찾아온 것이다.
    그해 겨울 나는 아파트 거실에 이 커피 체리를 심었다.

    2.2011년 12월 서울 합정동

    서울에서 보기 드물게 눈발이 날렸다.
    강변도로를 타고 달리는 동안 도심의 눈은 낯설면서도 포근했다.
    2004년 6.25전쟁에 참전했던 에티오피아 노병들을 만나면서 시작된 나의 에티오피아 여정은 그후 2009년까지 계속됐다.
    아무도 가지 않겠다는 곳에 내디뎠던 발 걸음이 그렇게 계속 될 지는 예상조치 못했다.
    어쩌면 운명 같았고 인연같았다.
    그후 나는 이들의 전투지역을 찾아나섰다.
    놀랍게도 그 곳은 내가 태어나 살아왔던 곳이었다.
    우리에게는 가난의 대명사로만 알려져 있지만 가면 가볼수록 에티오피아는 매력을 드러냈다.
    반세기전 이땅을 찾아왔던 에티오피아 노병들의 길을 되돌아보는 여정이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신입생이 늘어나면서 교실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딜라 초등학교까지 소개하고, 만약의 수익금이 생기면 이를 기부하기 위한 생각이었다.
    '에티오피아, 13월의 태양이 뜨는 나라'가 그것이다.
    이 책을 싣고 춘천으로 내려오는 동안 창밖으로는 눈이 날렸지만 내 마음은 뜨거운 태양아래 발갛게 커피가 익어가는 에티오피아로 떠나 있었다.



    3.2012년 3~4월 춘천
    봄을 시샘하는 춘설이 하루종일 내렸다.
    딜라 초등학교의 소녀가 선물로 건네준 커피는 2010년, 2011년에 무럭무럭 자랐다.
    초겨울 한파와 물러날 줄 모르는 꽃샘추위가 가장 장애였다.
    추위는 기습적으로 찾아오고, 끝난 줄 알았던 추위는 아침마다 괴롭혔다.
    추위는 커피를 시들게 하고 며칠 뒤 낙엽처럼 잎을 떨어뜨렸다.
    파랗게 자라던 커피 잎이 낙엽으로 변하는 모습은 고통이었다.
    춥기로 유명한 강원도 춘천, 그 가운데 시내보다 1~2도가량 더 추운 산기슭에서 커피나무를 길러보는 것은 모험일 지도 몰랐다.
    봄눈까지 가세한 직우 커피나무 가지에서 하얀 무엇인가가 감지됐다.
    4월 들어 어느날 저녁 아침 자스민 향기가 방안에 감돌았다.
    처음 맡아보는 신비한 냄새였다.
    향기의 진원지는 커피나무였다.
    3년의 겨울을 넘긴 커피나무에서 꽃이 핀 것이다. 하얀별 같았다.


    
    4.2012년 6월25일
     6.25전쟁 발발 62주년이 되는 올해 6월 25일에는 제법 열매가 커졌다.
    커피가 익기까지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하지만 2004년 예정에 없이 떠났던 여정이 결실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이 참전한 6.25전쟁 발발일을 맞아 '에티오피아, 13월의 태양이 뜨는 나라'가 25일자로 2쇄로 이어졌다.
    커피와 에티오피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덕분이다.
    2쇄를 내기 위해 고생했던 출판사 '종이비행기' 한영아 대표에게도 특히 감사드린다.

    에티오피아 여정을 더 이어갈 것이라고 꿈조차 꾸지 못했고, 이 것을 책으로 묶는 것이 기적같았던 시간이었다.
    도전했던 여정이 커피 열매로 눈앞에 익어가고 있으니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에티오피아 여정과 커피를 길러보면서 느낀 것은 이것이다.
    "여러분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꿈을 꾸고 도전하십시오. 길은 보이지 않지만 도전하면 길은 어느 순간 열립니다." 

    <<이 책은 교실 등이 부족한 딜라 초등학교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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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북단 철새마을 이색 도시락 2012.03.09 18:46:12

    철원군 양지리 최전방 철새마을 주민들이 간결한 도시락 메뉴를 개발해 오늘 시식회를 열었습니다
    이곳은 마을 뒤 토교저수지에서 새벽에 쇠기러기들이 일제히 비상하면서 장관을 이루는 마을입니다.
    예전에 한 분은 탱크가 굴러가는 정도의 소리가 난다고 표현했습니다.
    전방지역에서 가장 큰 소리는 탱크 궤도소리니까요.
 
   

    주민들이 직접 담근 된장, 청국장, 나물, 고추냉이가 들어가 햄버거조차 대기업이 시중에서 파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과 품질입니다.

    포장도 예쁩니다.

         

    철원으로 갈 때마다 점심때 무엇을 먹을까 참 고민도 많았는데 단체로 가는 분들이라면 이 도시락 메뉴로 봄기운도 만끽하면서 평화여행을 즐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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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사이로 총총 오는 봄 2012.03.07 16:41:54

    겨울이 물러나기 아쉬운지 눈을 뿌렸다.
    어둠에서 깨어난 세상은 은빛으로 환하다.
    봄 눈은 눈과 비가 섞여 있듯이 아쉬움과 설렘이 교차한다.

    요즘 자연은 봄을 맞을 채비가 한창이다.

    도심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좀처럼 실감하기 어렵지만 등산로 주변에는 나무가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다.



    동백(생강나무)의 꽃망울은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틈이 살짝 벌어졌고,    진달래 꽃눈도 물이 오르면서 튼실해졌다.

    총선의 열기가 회오리칠 때면 이 등산로에서 알싸하고도 나무 비린내가 나는 꽃들이 얼굴을 드러내리라.



    전부 봄을 맞는 것은 아니다.

    수십 년이 넘은 나무 가운데 뿌리째 뽑힌 것도 있다.

    겨우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는지는 모르지만 뿌리가 깊지 않으면 쓰러진다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 부실의 이유를 대는 변명은 궁색해진다.


    올봄 그대만의 꽃눈을 활짝 틔우시라.

    뿌리는 깊게 내리면서.

    (그동안 이런저런 사정으로 블로그를 자주 쓰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페이스북보다 이 곡간을 차곡차곡 채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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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금메달감이 되라 2012.02.06 19:44:37

    산길은 슬로프처럼 이어졌다.
    최근 내린 눈위로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간 흔적만 있을 뿐 더 이상의 차가 다닌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바퀴자국을 따라 오르던 차는 오르고 내리는 길에서 멈칫한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살고 있을까.'

    마을은 인기척이 끊어졌다.
    사람이 보이지 않아 산속에서 잘 터진다는 017로 시작되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조금 뒤 밝은 표정으로 오늘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정종진(70) 씨.
    소양강댐 담수가 시작된 이래 37년째 소양강변에서 유기농을 하고 있는 분이다.
    그를 찾아간 것은 26년째 영농일기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일기쓰는 것이 고역이었는데 어떻게 26년째 쓰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의 답은 용수철처럼 뛰어나왔다.
    "유기농을 하려고 했지만 아무도 가르쳐 줄 사람이 었었어요. 직접 기록하며 배워갈 수 밖에 없었어요"
    유기농은 땅을 살리는 것이란다.
    하지만 최근의 농촌은 볏짚마저 걷어가고 화학 비료를 치면서 생산성에 매달리면서 땅이 망가져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가 기록을 해가며 일기를 썼더니 학위를 가지고 있는 박사들이 가르치는 것이 맞지 않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지를 쓰며 배운 것은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이니 틀릴 리가 없었다.
    "농사도 마찬가지이지만 모든 분야에서 금메달감이 되야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일기를 써야하지요. 써보면 똑같은 실수를 하는 것을 막을 수 있어요.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자신을 채찍질 할 수 있고요"
    현장을 뛰는 재미는 이런 것이다.
    요즘 논문을 베껴쓰는 등 종이장 학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전문가'로 둔갑하지만 항상 무엇인가 부족했다.
    심산 계곡의 눈길을 제치고 갔던 날 석유에 의존하지 않고 농사를 짓겠다는 고집장이를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
    현장을 다니다보면 숨어있는 전문가들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이 오지에서 자식 농사는 어떻게 했느냐구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패스트 푸드 먹고 과외하고 학원다니는 학생들보다 정신은 올바로 박혔으니까요.
    학교 후  2시간씩 일을 한 뒤 밥을 먹다보니 땀의 소중함을 깨달아 우리 사회의 기둥으로 성장했습니다.
    자식 가운데 한명은 최근 미국에서 존스홉킨스대 연구원으로 일하게 됐다고 합니다.
    10년 안의 노벨상을 타겠다는 각오를 아빠에게 전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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