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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감나무 아래서... |
2009.12.08 23:21:35 |
작년 11월 고향 광양엘 들렀다가 고창 선운사에 갔습니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상경하던 길에 담양쯤 이르자 고창으로 난 새 고속도로가 나타나더군요. 그래서 운전대를 틀어 새 도로로 들어섰습니다. 고창에 들렀다가 서해안 고속도로로 상경하면 되겠구나 싶었던 거죠. 고창을 방문한 것은 그날이 두 번째였습니다. 고향이 전라도지만 그동안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광양서 고창까지 가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고창에 처음 가본 것이 벌써 4년이 됐네요. 그때 전주 한옥마을에서 '시인의 날' 행사가 열렸을 때 취재를 갔다가 당시 동아일보 문학기자였던 소설가 권기태 형이 "정선배 여기 온김에 고창이나 들러봅시다"라고 부추겨 따라갔었죠. 사실 전날밤 우린 잠을 한숨도 못잤습니다. 장작불로 뜨뜻하게 달군 온돌방에서 오랜만에 등짝 좀 지지려나 싶었는데, 글쎄 문학행사가 끝나고 나서 연세 지긋하신 송상욱 시인과 서정춘 시인께서 옆방에서 밤새 노래가락을 뽑아내는 것 아닙니까? 도도한 흥을 이기지 못해 중진 시인들이 젓가락을 두들겨 가며 절창을 뿜어내는데 감히 그치라고 말할 수 있나요. '인사동 음유시인'으로 불리는 송 시인, 전라도 순천이 고향인 서 시인의 레퍼터리는 끝날 줄을 몰랐습니다. 두 분이 '한국가요사'를 종횡무진하는 동안 옆방의 서생들은 비몽사몽을 헤매다가 결국 뜬눈으로 날밤을 새웠죠. 그러고 나서 이튿날 권기태 형과 함께 고창엘 갔던 겁니다. 그때 처음 미당문학관과 인근 국화축제장을 둘러봤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두 번째로 고창엘 들른 겁니다. 전날은 고향을 지키고 있는 큰형의 회갑 생일을 맞아 가족끼리 인근 산장에서 조촐하게 저녁식사를 함께하고, 이튿날 아침 일찍 서둘러 상경길에 올랐었습니다. 당시 선운사 입구는 막바지 단풍을 보려는 등산객으로 붐볐습니다. 주차장을 거쳐 선운사로 향하는 비포장길은 이미 알려진대로 아름답기 그지 없었습니다. 선운사 마당에 들어서자 감나무 두 그루가 붉은 감을 주렁주렁 달고 하늘높이 서 있었습니다. 감나무를 올려다보니 매달린 감들이 마치 하늘이 잉태한 알 같았습니다. 암탉의 뱃속에 미쳐 낳지 못한 새끼알들이 포도송이처럼 알알이 달려있는 모습이라고나 할까요. 한여름의 강렬한 햇볕(陽氣)이 대지의 기운을 뽑아올려 빚어놓은 '생명의 열매'들이었습니다. 지금 그때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놓았던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다가 문득 이병주 선생의 대하소설 '지리산'의 한 대목이 생각났습니다. 큰형의 회갑을 생각하다가 자연스럽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것입니다. 큰형은 이른바 '여순사건'이 터진 1948년 태어났으니까요. 큰형, 여순사건, 그 당시를 배경으로 삼았던 '지리산'. 이런 연상작용 속에서 이병주 선생이 그린 소설 대목은 아마 6.25전쟁이 터져 북한군이 밀려내려와 남한의 상당부분을 점령한 시점이었을 겁니다. 소설 속 주인공 박태영이 조선중앙통신 전주지사 기자로 이태('남부군' 작가)와 한솥밥을 먹던 시절이죠. 농촌으로 취재를 갔던 박태영 기자는 농군으로부터 이런 소리를 듣습니다. 기억이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공산당이 세금을 철저히 거두려고 양곡 소출은 물론 아직 익지도 않은 감나무의 감 숫자까지 헤아려 간다는 대목입니다. 작가는 이 장면을 묘사하면서 인민을 위한다는 공산당의 이상과 그 현실이 얼마만한 거리가 있는 것인지 들춰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선운사 앞마당 감나무는 지금은 절을 방문한 불자(佛子)나 등산객들의 관상용으로나 자리 잡고 있을테고, 어떤 감상적인 사람의 눈에 거기 매달린 감들은 '생명의 열매'로 비칠 뿐입니다. 하지만 좌우익으로 나뉘어 증오심을 키우다가 마침내 사람 죽이는 것을 예사로이 여기는 지옥도의 세상에 이르러 감나무는 자칫 선량한 농군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위험한 열매'를 매달고 있었을 겁니다. 이처럼 오랜 세월 선운사 앞마당에 그대로 서있었을 감나무라 할지라도 그것이 처한 시대적 상황에 따라 그 모습이 달리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됩니다. 역사와 이념을 거창하게 부르짖는 시대는 언제나 불행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박한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을 가꾸며 살아가는 '마음이 가난(청빈)한 사람들'이 많을 수록 그 세상은 그 자체로 더 아름다울 거라는 생각이 소록소록 드는 초겨울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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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자료를 뒤지다 법정스님을 만나다 |
2009.11.03 23:21:39 |
<<참으로 오랜만에 제 블로그에 들어와 봤습니다. 오랫동안 가꾸지 않아 묵정밭이 되다시피 한 줄 알았으나 아직도 지난해 인터뷰한 진제스님의 사진이 초기화면을 지키고 계시고, 어느 분들인지 오늘만 몇백명이 제 블로그에 다녀갔네요. 미안합니다. 다른 일로 USB에 저장된 사진자료를 검색하다보니 2008년 4월께 성북동 길상사에서 제가 찍은 법정스님 사진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로 찍었던 것인지 옛날 기사를 검색해보니 스님이 강원도에 칩거하고 계시다가 봄철 정기법회를 하러 길상사에 오신 길 길이었습니다. 그날 함께 갔던 모신문사 기자와 법정스님께 차 한잔 얻어 마시면서 제 똑딱이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옛 기사를 읽어보다가 법정스님 말씀을 다시 한 번 음미해볼만 하다고 여겨 있는 그대로 다시 올려봅니다.>> "대운하는 국토에 대한 무례" 법정스님 길상사서 봄 정기법회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조상 대대로 영혼과 살과 뼈를 묻어온 곳이자 후손들에게 물려줄 신성한 땅을 대운하 사업으로 훼손하는 것은 우리 국토에 대한 무례이자 모독입니다. " 불교계 원로 법정(法頂) 스님이 20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吉祥寺)에서 봄 정기법회를 갖고 찬반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법정스님은 사찰 앞마당을 메운 1천여 명의 신자들에게 설법하면서 "이 땅은 사람만이 아니라 겉모습만 다른 수많은 생명이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어서 생태계의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면서 "그런 땅이 근래에 와서 방방곡곡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개발에 의해 피 흘리고 신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계천은 기존 하천을 복원한 것이지만 한반도 대운하는 멀쩡한 땅을 파헤치고 토막 내는 반자연적 사업"이라면서 "한반도 대운하에 찬성하는 사람은 개발사업으로 주변 땅값을 올려 재미를 보려는 땅투기꾼과 건설업자들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정스님은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사안"이라면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법정스님은 또 우리 사회의 생명경시 풍조에 대해서도 경종을 울렸다. 그는 "농경사회에서는 씨를 뿌리고 새싹이 돋아나는 과정을 지켜보며 살기 때문에 생명의 소중함이 사람의 마음 안에 싹튼다"면서 "흙을 멀리하고 도시화, 산업화, 정보화 사회에 살면서 인성이 메말라가다 보니 이유없이 어린이를 폭행하고 살해하는 등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법정스님은 "육체는 죽일 수 있을지 모르나 영혼은 그 무엇으로도 죽이지 못하며, 남을 죽이는 것은 곧 자기의 영혼을 죽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겨울 지병인 천식이 악화돼 구토와 헛구역질 등으로 50일 동안 사실상 단식 상태에 있었다고 밝힌 그는 "70년 넘게 몸을 끌고 다니다 보니 부품이 삐걱거려 정비공장에 다니느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드렸다"고 근황을 전했다. 법정스님은 "앓다 보니 새삼스럽게 둘레에 있는 모든 사람과 나를 둘러싼 모든 사물들이 고맙게 느껴졌다"면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어서 눈부신 봄날 이렇게 여러분을 만날 수 있는 것 자체가 기쁜 일이며, 하루하루 즐겁게 잘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이어 "달마스님의 말씀처럼 마음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너그러울 땐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지만 뒤틀리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어질 만큼 옹색해진다"면서 "하루하루 잘 살려면 내 마음을 활짝 열어서 살아있는 동안에 마음을 비워내고, 이웃과 매듭을 푸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법정스님은 설법에 앞서 행지실(行持室)에서 기자들과 만나 "옛 사람의 말에 일각수(一角獸)가 나타나 세상을 파헤칠 것이라고 했는데 그 일각수가 온 국토를 파헤치는 포크레인인 모양"이라고 무분별한 국토개발사업에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또 "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티베트 사태 등에 대해 할 말을 못하는 실정이니 양식 있는 사람들과 언론이 정부를 대신해 발언해야 한다"면서 "우리도 식민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으니 남의 고통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총선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이 예뻐서라기보다 지난 정권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며 "젊은층도 보수화된다고 하는데 지난 10년간 이렇다할 소득도 없이 구호만 요란하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라고 평했다. 그는 "아플 때마다 서서히 소멸해가는 몸의 실체를 스스로 인식하게 된다"면서 "버리고 가야할 몸이나 집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이 세상이 인연 따라 잠시 머무는 곳임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기 위해 강원도 산골에서 칩거하고 있는 법정스님은 매년 봄, 가을에 열리는 길상사 정기법회 때 일반 신도를 대상으로 설법하고 있다. 한편 길상사는 법회 후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반도 대운하 추진을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펼쳤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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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 금당선원 조실 진제스님 인터뷰 |
2008.05.19 20:54:12 |
동화사 금당선원 조실이자 조계종 원로의원인 진제스님.
"잘 살고 못사는 것 마음쓰기에 달렸죠" (대구=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행복하게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모두 마음쓰기(用心)에 달렸습니다.” 19일 하안거(夏安居) 결제일(結制日)을 계기로 만난 대구 팔공산 동화사 금당선원(金堂禪院) 조실 진제(眞際.74)스님은 "깨달음의 세계는 물과 같이 끊어지지 않고 일여(一如)하게 흘러간다"면서 "그 세계는 모든 사물의 형상과 소리에서 오는 감각을 잊고 무심(無心)한 상태에서 홀연히 참나(眞我)가 솟아오르면서 지혜가 열리는 경지를 일컫는다"고 말했다. 진제스님은 "부처와 예수가 모두 '참나'의 한가운데 있었다"면서 "앉으나 서나 목욕을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어디에 참나가 있는지 간절하게 구하면 모든 습기(習氣.습관으로 형성된 기운이나 습성)를 제거하고 화두일념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진제스님이 조실로 있는 금당선원과 동화사 산내 암자인 양진암, 부도암, 내원암 등에는 이번 하안거에 모두 102명의 스님이 하안거에 들어 석 달 간 화두를 붙들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용맹정진하게 된다. 금당선원은 근세의 대선사인 경허스님을 비롯해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석우스님과 효봉스님, 그리고 향곡스님과 전강스님 등 한국 선종사에 남을 선사들이 머물며 후학을 지도해온 유서깊은 도량이다. 진제스님은 지금도 선객(禪客)들 사이에서 '남진제 북송담'으로 회자되며 선풍을 날리고 있다. 중국 당나라 때 '남설봉 북조주(南雪峰 北趙州)'에 빗대어 남쪽에는 진제스님, 북쪽에는 인천 용화선원에 있는 송담(松潭.79)스님의 도력(道力)이 높다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진제스님은 자신을 경허(鏡虛), 혜월(慧月), 운봉(雲峰), 향곡(香谷)스님으로 이어져온 선불교 주류 선맥의 '법손(法孫)'이라고 분명하게 밝히면서도 "남진제니 북송담이니 하는 것은 형상이나 말에 떨어져서 하는 소리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고준한 견성법(見性法)을 쟁취하려면 눈 밝은 선지식을 만나서 바른 지도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진리의 세계는 광대무변한 것이어서 동쪽 하늘만 보고서 우주를 봤다고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번뇌망상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고 화두를 챙겨서 일념에 이르다 보면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잊어버리고, 앉아있어도 앉은 줄을 모르고 밤과 낮도 잊고서 시간가는 줄을 모르게 됩니다. 그러던 찰나에 홀연히 사물을 보거나 소리를 듣다가 화두가 박살이 납니다. 그 순간 불조(佛祖)의 백천공안(百千公案)을 한 꼬챙이에 꿰게 되는 것이죠." 진제스님(가운데)이 무자년 하안거가 시작된 5월 19일 금당선원에서 수행자들과 참선하고 있다.
진제스님은 "사구(死句)를 붙들고 있어봐야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자기 일신(一身)도 구제하지 못 한다"면서 "활구(活句)는 언어를 뛰어넘는 것이어서 눈이 열린 자만이 볼 수 있다"고 화두 참선의 바른 길을 제시했다. 이어 "서양지식으로는 활구를 찾기 어렵다"면서 "선(禪)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면서 조금도 잃지 않고 항시 쓸 수 있는 마음의 고향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밝은 지혜인 참나에 이르면 나와 너가 따로 없고 시비와 허세, 사리사욕에서 벗어나므로 모든 갈등을 해소하고 진리에 편안하게 머물 수 있다"면서 "어리석은 자는 부모가 남겨준 유산이나 높은 자리도 지키지 못하는 법이므로 허상에서 벗어나 참나에 이르는 것만이 영원히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진제스님은 최근 미얀마와 중국에 닥친 자연재해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것에 대해 "근본으로 돌아가면 나와 남이 둘이 아니니 그들의 아픔은 곧 우리의 슬픔이고 그들의 안정은 곧 우리의 평온이므로 성심껏 온정의 손길을 보내어 아픔을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또 쇠고기 문제 등으로 사회적 혼란이 생긴 것에 대해서는 "배움에 열중해야 할 학생들을 거리로 뛰쳐나가게 만든 것은 온전히 어른들의 책임"이라면서 "국민과 의사소통이 부족함을 인정한 정부가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외교적으로 좋은 절충안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진제스님은 "대선 출마 전에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찾아온 적이 있다"면서 "그 때 큰 자리에 오르려는 사람은 미운 사람이든 고운 사람이든 모두 끌어안으려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인덕(仁德)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누구든 일상에서 참나를 찾기 위해 정진하다 보면 편안한 삶이 저절로 찾아온다"고 덧붙였다. 진제스님은 1954년 해인사에서 출가해 훗날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석우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1967년 향곡스님으로부터 전법게(傳法偈)를 받았으며 1971년 부산 해운정사를 창건했다. 선학원 이사장을 거쳐 현재 금당선원 조실이자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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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사에 우뚝선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
2008.05.06 17:10:56 |
 지난 2005년 11월 신라호텔에서 열린 팔순잔치 때 박경리 선생. <사진=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한국문학사에 우뚝선 대하소설 '토지' 25년만에 완성한 박경리 대표작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한국 대하소설의 뿌리이면서 한편으로는 가장 높은 봉우리로 평가받는 '토지'(나남출판.전21권)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서희는 딸 양현으로부터 일본의 패망소식을 전해듣고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삶을 무겁게 조여왔던 고통스러운 쇠사슬에서 벗어난 기분을 맛본다. 고(故) 박경리 씨가 1969년 9월 '현대문학'에 첫 회 연재를 시작한 뒤 1994년 8월 15일 '문화일보'에 연재할 마지막 원고를 탈고하기까지 '토지' 전체 5부가 완성되는 데는 무려 25년의 세월이 걸렸다. 소설은 1897년 하동 평사리에서 시작해 서울, 만주, 일본을 거쳐 다시 평사리 섬진강 가에 이른 서희가 해방소식을 듣는 것으로 끝난다. 작가가 원고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날을 소설이 끝나는 8월 15일로 잡은 것은 우연이었을까? 6.25때 남편과 사별하고, 외동딸을 기르며 힘들게 창작활동을 해온 작가는 '토지'를 연재하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방암 선고까지 받았다. 이로 인해 작가는 가슴에 붕대를 동여매고 '토지'를 집필했다고 한다. 게다가 유신정권에 저항하던 김지하 시인을 사위로 둔 탓에 작가의 삶은 언제나 무거운 쇠사슬을 휘감은 듯 고통의 나날일 수밖에 없었다. 원고지 4만장 분량의 대작 '토지'를 마무리한 날은 그래서 작가 개인에게는 창작의 고통스런 족쇄에서 풀려난 날이었을 것이다. '토지'는 구한말에서 시작해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에 이르기까지 민족수난기를 다루고 있다. 최참판댁 손녀 서희가 역사의 물줄기를 따라 하동에서 하얼빈까지 유전하다가 고향땅으로 돌아와 해방을 맞는 것이 소설의 큰 줄거리를 이룬다. 작품에는 동학농민전쟁, 을사보호조약, 청일전쟁, 1902년 7월 전국에 번졌던 콜레라, 1909년 간도협약, 일제의 토지조사사업, 관동대지진, 백정들의 신분해방운동인 1923년 형평사 운동, 1937년 만주사변 등 역사적 사건이 무수히 등장한다. '토지'에는 이런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삼아 이름없는 민초를 포함해 700여 명의 인물들이 명멸한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허구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실존인물을 소재로 삼아온 기존 역사소설과는 성격이 다르다. '토지'는 오로지 작가의 상상력으로 우리 민족이 겪은 고난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역사소설 시대를 열었다. '토지'가 역사책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복원해낸 것을 두고 역사학자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역사보다 더 역사적인 소설"이라고 평한 바 있다. 문학평론가 이재선 서강대 명예교수는 '창안적 역사소설'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토지'에 부여하기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토지'는 인물이나 사건을 하나의 주제에 종속시키는 서구 소설의 이론을 따르지 않는 새로운 창작실험을 시도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문학평론가 정현기 전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는 판소리처럼 이야기의 중간에 이런저런 작은 이야기들이 마디처럼 삽입한 것을 놓고 '토지'의 창작방식을 '마디 이론'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이상진 방송통신대 국문학과 교수는 "이름을 가진 인물만 해도 578명이나 등장하는 '토지'에 주인공이 따로 없다는 것에 많은 연구자들이 공감한다"면서 "작품의 주인공은 서희만이 아니라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등장인물 모두이며, 이 때문에 이야기가 하나의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핏줄처럼 퍼져나가는 독특한 소설"이라고 말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어느 학자는 '토지'를 '대하(大河)소설'이 아니라 '다하(多河)소설'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이야기가 하나의 줄기로 흘러가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고루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토지'는 탈(脫)중심적 소설이기도 하다. 이상진 교수는 "이야기 전개와 창작방식에서 '토지'의 탈중심적 성격은 작가의 생명사상과 연결된다"면서 "어느 것도 중심이 아니며, 인물마다 제 몫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생명을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는 작가의 사상이 여기에 깃들어 있다"고 분석했다. 작가의 생명사상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인 한(恨)과 연결된다. 작가는 모든 생명에는 한이 있다고 자주 말해왔다. 그 한은 생명은 생명을 먹어야만 유지된다는 본질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작가의 지론이었다. 이 때문인지 '토지'에 등장하는 사람은 한결같이 불행한 사람들 뿐이다. 인간은 모두 한을 가진 존재라는 작가의 사상이 투영돼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과 사랑, 일본 제국주의 등 물신주의에 대한 올곧은 저항, 생명사상 등 '토지'가 가진 풍부한 내용 때문에 이를 원작으로 삼아 KBS와 SBS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TV드라마로 제작했고, 1974년 김수용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김지미와 이순재 등이 출연한 영화로도 제작됐다. 또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 서사음악극으로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려졌으며, 청소년판과 만화로도 출간되는 등 다른 장르로 끊임없이 변용돼 왔다. 또한 하동 평사리 드라마 촬영 세트장은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으며, 작품 속의 공간인 평사리에서는 해마다 문학제가 열리고 있다. 이는 '토지'의 가치가 그만큼 널리 인정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토지'는 서구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진 한국 근대문학을 절정기에 올려놓은 대작이다. 이후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태백산맥', 최명희의 '혼불' 등 대하소설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한국소설은 전성기를 누렸다. 이러한 작가적 사명을 예감했던지 박씨는 1966년 수필집 'Q씨에게'에 실린 '창작의 주변'이라는 글에서 "이제부터 나는 써야 할 작품이 있다. 그것을 위해 지금까지의 것을 모두 습작이라 한다. 그것을 쓰기 위해 나는 이삼년을 기다려야 할까보다"라며 대작을 집필하겠다는 의욕을 내비친 뒤 실제로 3년 후 '토지'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후 그가 펼쳐낸 '토지'의 작품세계는 평사리 들판처럼 드넓고, 지리산처럼 웅장한 모습으로 한국문학사에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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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의 쾌유를 빕니다" |
2008.04.26 08:45:44 |
 지난 2005년 11월 29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팔순잔치 때 박경리 선생. 언론 등에 알리지 않고 가족과 지인들끼리 조용히 치르려던 잔치소식을 전해 듣고 연합뉴스 황광모 기자가 촬영한 사진이다. "평생 생일을 모르고 살았는데 어리둥절하다''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평생 생일을 모르고 살았는데 어리둥절합니다."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씨는 2005년 11월 29일 낮 장충동 신라호텔 라일락룸에서 열린 팔순잔치에서 "자식 체면때문에 하라고 했지만 이렇게 거창하게 할 줄 꿈에도 몰랐다"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당초 가족과 평소 가까웠던 사람 스무명 정도와 조촐한 잔치를 기대했다가 예상밖으로 많은 손님이 초대된 것에 다소 당황스러워했다. 박씨는 "솔직히 여기에 선 것이 염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다른 사람보다 오래 살아 염치가 없고, 작가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겼는데도 보상을 못받고 떠난 사람에 비해 나는 한 일보다 더많은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라며 꼿꼿한 작가정신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러면서 "죄송하고 고마울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에는 딸과 사위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과 시인 김지하 씨, 외손자인 김원보ㆍ세희 형제 등 가족과 문인, 정ㆍ관계, 학계, 언론계 인사 등 평소 박씨와 가깝게 지낸 100여명이 참석해 건강과 장수를 축원했다. 사회를 맡은 문학평론가 정현기 연세대 교수는 "박경리 선생의 '토지'는 능동성을 잃으면 자아가 죽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선생은 80년간 삶을 지켜오면서 작품과 일상의 사소한 것에서 존재가치의 영성과 드높은 존엄성을 드러내 왔다"고 평했다. 이어 국악인 김영동 씨가 이끄는 경기도립국악단의 가야금 산조가 연주됐고, 장석효 서울시 행정2부시장은 청계천 복원에 대한 공로패를 이명박 시장을 대신해 전했다. 행사장에 온 이수성 전 총리는 "평생 가장 감명깊게 읽은 소설로 홍명희의 '임꺽정'과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들 수 있다"면서 "선생의 작품은 참다운 민족의 자부심을 느끼게 했으며,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 '박경리 선생이라면 찬동할까'라고 생각할만큼 선생은 삶의 좌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작가 최일남 씨는 "박 선생을 만날 때마다 글쓰는 모습보다 호미 들고 밭 매는 모습을 봐왔는데 거칠고 험한 작가의 손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고 했고, 박완서 씨는 "건강하고 젊고 여러 사람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고 살고 싶다는 점에서 선생은 나의 희망"이라고 박씨의 지나온 삶에 존경심을 표시했다. 지난해 두 달반 동안 토지문화관에서 집필활동을 했던 소설가 박범신 씨는 "밤늦게 토지문화관으로 돌아올 때 깜깜하고 막막한 깊은 산속에서 오직 2층 선생의 서재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면서 "그 불빛을 등대처럼 생각하며 문학의 길을 찾으려 했다"고 한국문학사에서 박씨가 차지하는 위치를 '등대'에 비유했다. 사위인 김지하 씨는 "환갑도 칠순잔치도 굳이 사양해서 못했다"면서 "해드린 것 없이 고생만 시켜 드렸다"고 말했다. 김씨와 절친한 이부영 전 의원은 "(수감생활로) 자유롭지 못할 때 '토지'를 읽었는데 박 선생이 '우리는 분단돼 있지 않다'고 말하듯 분단에 개의치 않고 거침없이 집필한 것은 깊은 감동을 줬고, 대륙쪽으로 열린 시각을 잃지 않도록 했다"고 작품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날 행사에는 김상현 전 의원, 김한길 의원, 김병수 정창영 연세대 전현직 총장, 유재천 한림대 교수, 김형국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김성우 전 한국일보 주필, 장명수 한국일보 이사, 조상호 나남출판 대표, 양숙진 '현대문학' 대표, 진의장 통영시장, 최열 환경재단 대표, 김민기 학전 대표, 영화감독 이광모 씨, 작가 오정희 강석경 황지우 강형철 김남일 씨 등이 참석했다. 팔순잔치를 치른 박씨는 192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195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그동안 소설 '표류도' '김약국의 딸들' '파시' '시장과 전장', 시집 '못떠나는 배'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19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대하소설 '토지'는 집필을 시작한지 25년만인 1994년 전체 5부를 완성한 대작으로 한국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당시 기사 재수록. 박경리 선생은 최근 뇌졸중으로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서 투병중이다. "한국문학의 '거대한 모성(母性)'인 박경리 선생의 쾌유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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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세확장ㆍ종권다툼 통해 종교 권력화 |
2008.04.19 13:28: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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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세확장ㆍ종권다툼 통해 종교권력화 -기독자ㆍ불자 교수 '종교권력' 주제 세미나
불교와 개신교 등 국내 주요 종교가 교세확장과 종권 다툼 등의 과정을 통해 권력화의 길을 걸어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진구 호남신학대 종교학 교수는 '현대사회와 종교권력'이라는 주제로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와 한국교수불자연합회가 4월 18일 공동 개최한 학술대회 논문을 통해 "시민사회에서 지탄받는 종교는 소수종파가 아니라 주류로 자리 잡은 종교들"이라면서 "이는 종교집단의 거대화가 권력화로 이어지며 나타난 부작용에 대한 반발"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한국 개신교의 종교권력'이라는 논문에서 "한국의 개신교는 세계의 다른 지역들과 달리 초기부터 저항을 별로 받지 않고 안착한 '행운의 종교'였다"면서 "무엇보다 미국 근대문명의 원동력으로 간주된 개신교는 '문명종교' 이미지를 통해 개화 지식인들의 문명개화 노선, 왕실의 부국강병 노선, 근대적 의료에 대한 민중의 절박한 욕구, 서구식 교육을 통해 신분상승을 추구하는 청년들의 욕망에 부합해 사회적 위상을 높여왔다"고 분석했다. 이어 개신교는 미군정기에 미국 유학파 출신 개신교 지도자들이 대거 군정청 관료로 임용되고 크리스마스를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는 등 입지를 다졌으며, 개신교 장로 출신인 이승만 대통령이 제헌국회 개막을 기도로 시작하는 등 다른 종교들이 따라오기 힘든 사회ㆍ정치적 발판을 구축해왔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박정희 정권 때는 특별히 친개신교 정책을 펼치지 않았지만 산업화 과정에서 진행된 급격한 이농현상, 도시빈민의 급증 등이 '뿌리 뽑힌 영혼'을 위로하는 설교와 신앙집회 등을 통해 개신교 신자의 비약적 증가로 이어졌다"면서 "더구나 개신교 보수진영의 교단분열은 치열한 선교경쟁을 낳아 결과적으로 교회와 교인수를 크게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해방 이후 교세가 급팽창하면서 거대한 종교집단으로 자리 잡은 개신교는 내부의 권력화 양상을 낳아 대형교회의 목회자 세습, 불투명한 재정운용 등의 문제를 야기했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또 "1988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통해 반공주의를 '죄'로 규정하자 교회의 좌경화에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진영이 총결집, 이듬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만들었다"면서 "이후 개신교 보수진영은 기독교 정당 만들기, 뉴라이트 운동 등을 통해 정치 영역에서 영향력을 보여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최근 안티기독교의 등장과 번성은 개신교의 공격적 선교와 배타적 타자인식에서 일차적으로 비롯한 것"이라면서 "이는 개신교가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냉전 이데올로기에 머물러 새롭게 등장하는 시민사회의 의제들을 퇴행적 관점으로만 접근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김경집 진각대 불교학 교수는 '현대불교와 종교권력'이라는 주제의 논문에서 "국내 불교계에 권력화 문제가 나타나게 된 데는 종단이 설립되면서 지도부 구성원 간의 알력이 매우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1962년 4월 통합종단의 출범은 조계종이 비구-대처의 분쟁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하게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그러나 이후 종정과 총무원장 사이에 종권 다툼이 벌어지면서 파벌이 형성되고 이로 인해 종단 분규가 반복되면서 불교의 세속화와 더불어 권력을 추구하는 양상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는 "1994년 서의현 총무원장의 3선 강행을 저지한 이른바 '개혁종단'은 교구본사와 중앙종회의 권한을 키우고 총무원장과 교구본사 주지선출에 직접 선거를 도입하는 등 개혁을 추진했다"면서 "그러나 이후 종회의원 선출, 총무원장 선거인단 구성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된 교구본사의 권력화는 금권선거 등 또 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 학술대회에서 유승무 중앙승가대 교수가 '불교에서 본 종교권력', 손규태 성공회대 교수가 '기독교에서 본 종교권력'이라는 논문을 통해 역사상 종교권력이 어떤 작용과 역할을 했는지 조명했다.(정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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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가 웅변가ㆍ만담가로 변해간다" |
2008.04.09 09:4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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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한국기독교학술원장 "쓴소리" "목회자가 웅변가ㆍ만담가로 변해간다"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 성직자의 귀한 사명을 버리고 CEO 감투를 쓰는 것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개신교계의 원로 이종성 한국기독교학술원장이 3월 31일 "지난 60여년간 한국교회가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목회자상이 크게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한국교회언론회(대표 박봉상 목사)가 '한국교회 나아갈 길을 말한다'라는 주제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한 포럼에서 이 원장은 "한국교회가 지난 60년 동안 작은 묘목에서 큰 나무로 성장한 과정은 선교사역에서 하나의 기적으로 기록돼야 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간과해서는 안될 변질 상태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목회자상이 변질된 사례로 △예언자적 품격은 없어지고 웅변가로 변해가며 △감언이설로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고 △장로교회 예배신학의 표준인 설교단과 성찬식이 경시되며 △진지한 성직자상은 사라지고 교인을 웃게 하는 만담가 직전의 수준에 와 있다는 점을 들었다. 또 △목회지를 회사로 생각하고 자신을 유능한 CEO로 착각하며 △어떤 기관에 회장이 수명, 부회장이 수십명일 정도로 감투욕의 노예가 되고 있으며 △성령을 받았다며 무당적 관습에 빠져 있고 △정치적 야망을 달성하려 한다고 변해가는 목회자상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전통적 목회자들은 소명감이 확실하고, 예언자적 기질을 가졌으며, 사회인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면서 "사회상황이 바뀌었다고 해도 목회자는 교회성장의 기술을 가르치는 CEO가 아니라 복음의 CEO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서 기조발제자로 나선 이억주 칼빈대 교수는 "성직자는 칼빈의 말대로 하나님께 소명(calling)된 사람들"이라면서 "한 사회나 국가의 흥망성쇠는 그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도덕적 힘에 있다는 역사학자 랑케의 지적처럼 교회는 사회도덕의 보루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초대교회는 군주국가, 계급사회 속에 있었지만 오늘날은 절대 진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종교다원주의시대에 들어서 있다"면서 "내적으로 성장을 멈추고 복음의 능력을 잃어가며, 밖으로 반기독교운동 등 위기에 직면해 있는 한국교회가 살아날 길은 복음의 본질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토론자로 참석한 김인환 성은감리교회 목사는 "개신교회가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이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지만 매스컴을 통해 나타난 한국교회의 이미지는 부정적이어서 이를 개선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익 신촌성결교회 목사는 "세상을 향해 사랑과 화합을 강조하면서 정작 교회는 교파, 사상, 계층 등 모든 면에서 분열과 대립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연합기구가 영적 권위를 가져야 하며, 나아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자기희생을 통해 하나로 통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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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에서 마음의 때 씻으세요" |
2008.04.08 22:2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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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안내서 '참 신앙 살아보기' 출간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가톨릭 수도원들이 일반인들의 신앙체험을 위해 굳게 닫힌 문을 연다. 각박한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을 위한 산사(山寺)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처럼 가톨릭 수도원들도 피정 프로그램 등으로 현대사회에서 쫓기듯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 내면을 성찰하고 심신의 피로도 풀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적극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천주교 남자수도회ㆍ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이하 장상협),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주교회의는 전국 수도회와 피정의 집 등에서 하고 있는 신앙체험 프로그램을 소개한 책 '참 신앙 살아보기'를 함께 펴냈다. 예비신자들에게 해오던 교리 위주의 교육을 보완, 수도자들의 삶을 체험함으로써 영적으로 좀 더 풍요해진 상태에서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책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물질문명사회에서 느끼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참선(參禪)이나 기(氣)수련 등 이른바 '웰빙' 프로그램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가톨릭 수도원이 갖고 있는 고유의 영적 유산과 생활방식을 널리 알리려는 목적도 갖고 있다. 책 출간의 실무를 맡았던 장상협 사무국장 박재찬 신부는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쉽게 포기하는 이유 중 하나는 6개월 정도의 예비신자 교육기간에 생생한 신앙체험보다 교리지식을 전달받는데 그치기 때문"이라면서 "일반 신자들에게 수도원은 쉽게 갈 수 없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 신앙체험이 가능한 수도회 프로그램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이번 책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이어 "책에 소개된 70여 곳의 수도회 프로그램들은 1차적으로 교리교사와 예비신자들을 위한 것"이라면서 "하지만 일부 수도원은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문을 열겠다는 뜻을 밝혀 앞으로 개방폭이 점점 확대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책에는 미국 트라피스트 수도승들이 행하는 구심기도(求心祈禱) 등 그리스도교 명상법과 기도법, 가톨릭 전례 등이 소개돼 있다. 또 '기도를 체험할 수 있는 수도회'로 전남 나주에 있는 글라렛 선교 수도회의 '남평 영성의 집', '전례를 체험할 수 있는 수도회'로 충북 제천 '도미니코회 천주의 모친 봉쇄 수도원', '이웃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수도회'로 충북 음성에 있는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 등 주제별로 나누어 수도회들의 각종 프로그램, 연락처, 방문 가능한 인원 등을 자세히 소개해 놓았다. 344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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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가르침 담은 Q복음서 실재했나? |
2008.04.04 22:20: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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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Q복음서'ㆍ'도마복음이야기' 성서에서 예수의 행적과 가르침을 담은 것이 복음서다. 신약성서에는 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 등 4복음서가 전해지는데, 이 가운데 마태.마가.누가복음서는 비슷한 부분이 많고 관점이 같다는 의미로 공관(共觀)복음서라 부른다. 성서연구가들 사이에서는 최초의 복음서는 마가복음이며, 마태.누가복음은 마가복음을 참고해 쓰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마태.누가복음에는 마가복음에 수록되지 않으면서도 공통된 부분이 많다. 이를 두고 성서신학자들은 마태.누가복음 이전에 마가복음과 별도로 가상의 자료가 있다는 가설이 제기됐다. '자료'를 뜻하는 독일어 'Quelle'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Q복음서'는 성서신학자들이 마태.누가복음을 연구한 결과 새롭게 탄생한 복음서라고 할 수 있다. '구약성서 폐기론' 등을 주장해 국내 기독교계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철학자 도올 김용옥이 펴낸 'Q복음서'(통나무 펴냄)는 마태.누가복음에서 추려낸 예수의 어록자료를 편집.역주한 것이다. 도올은 이 책에서 "20세기 중반 이후 다양한 고고학적 발굴과 역사연구에 힘입어 'Q복음서'는 이론상으로 구성한 가상의 자료가 아니라 예수의 핵심적이고 오리지널한 가르침을 담은 최초의 복음서로 간주하는 것이 서구 성서신학의 추세"라고 소개한다. 'Q복음서'가 실재했다는 쪽에 무게를 둔 해석이다. 'Q'에 해당하는 부분은 예수의 행적에 관한 전기자료가 아니라 가르침만을 담은 어록자료이다. 이 때문에 'Q복음서'에서 예수는 기적이나 부활과 같은 신적인 모습이 아니라 인생의 지혜로운 스승의 모습에 더 가깝다. 이런 맥락에서 도올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는 예수의 선포에 대해 "죄를 회개하면 천당에 간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생각을 바꾸면 곧 내가 사는 세상이 하나님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라고 해석한다. 그런가 하면, 세례요한이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이제 곧 오시나니, (중략) 그 분은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다"라는 복음서 구절에 대해 도올은 "수화상극(水火相克)의 대비는 헬레니즘적 철학개념을 전제로 하고 있다"면서 "물세례와 불세례의 대비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세례요한의 격하'이다"라고 지적한다. 도올은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의 연구결과를 인용해 "세례요한의 격하 현상은 초대기독교공동체 내의 예수교회와 세례요한교회 사이에서 벌어진 치열한 경쟁의 결과일 수 있다"고 소개하기도 한다. 나아가 세례요한이 "나는 그 분의 신들메(희랍.로마시대의 샌들의 끈)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라고 말한 대목에 대해 "당시 지체가 높은 사람들이 신었던 샌들끈을 노예들이 묶거나 풀어주었던 것에 비춰 볼 때 세례요한의 극단적인 자기비하 발언"이라며 "이 같은 구절은 예수를 추종한 쪽에서 기술한 언어라 할지라도 좀 과도한 표현"이라고 해석한다. 264쪽. 1만6천원. 도올은 이 책과 함께 중앙일보와 중앙선데이에 연재해온 '도올의 도마복음이야기 1'(통나무 펴냄)도 출간했다. '도마복음'은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발굴된 이집트 초기기독교의 콥트어 문헌 가운데 하나로 예수의 말씀만을 수록한 어록형식의 복음서를 일컫는다. 하지만 4세기 경에 확정된 것으로 알려진 현재의 27서 신약성서에 포함되지 못한 성서문헌은 외경이나 이단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번에 발간된 제1권은 도올이 '도마복음'의 내용을 본격적으로 해설하기에 앞서 이 복음서가 형성되던 당대의 문화사적 배경을 탐방한 글을 '이집트.이스라엘 초기기독교 성지순례기'라는 부제를 붙여 묶은 것이다. 초기 기독교 유적지 사진이 풍부하게 실렸다. 360쪽. 2만5천원.(정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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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독교를 위한 변명' 펴낸 청년들 |
2007.12.07 11:45:38 |
 한국 기독교의 문제점을 성찰한 책 '개독교를 위한 변명' 펴낸 도서출판 꿈꾸는터의 기획팀장 정영찬 전도사./(정영찬) "한국교회, 세상에 귀기울이지 않아 지탄받죠" "한국교회가 '개독교'라는 지탄을 받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마음을 닫고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죠." 숭실대 기독교학과 동문 6명이 한국 기독교의 문제점을 성찰한 단행본 '개(開)독교를 위한 변명'(꿈꾸는터 펴냄)을 펴냈다. 정영찬, 이범진, 윤동혁, 백현모 등 2001년 입학 동기 4명과 이들의 1년 후배 이규혁, 2006년 입학한 심희원이 주인공이다. 필자 6명 가운데 정영찬(25)씨만 졸업 후 양재동 드림의교회(담임목사 신영준)에서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고 나머지는 대학생이다. 출판사 기획팀장을 겸하는 정씨는 12월 7일 "스물다섯 살 동기 4명이 올해 2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젊은 공간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꿈꾸는터라는 출판사를 함께 차렸다"면서 "어른들을 따라가기에 바쁜 모습에서 벗어나 청년다운 열정으로 세대를 잇는 도구가 될 수 있는 출판 활동을 펼치고자 한다"고 말했다. '개독교를 위한 변명'은 이들의 첫 출판물이다. 정씨는 "이 책은 왜 사람들이 기독교를 개독교로 욕하는지 성찰하는 과정을 담았다"면서 "근본 이유를 따져보니 교회가 하나님은 오직 내 편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한국교회는 세상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지 않습니다. 교단끼리도 서로 귀를 막고 삽니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사랑을 외치는 기독교인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꼬집기 위해 개독교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봅니다. 개독교를 열린 개(開)독교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바람입니다."
"개독교를 열린 개(開)독교로 만들고 싶어요" 책에 실린 글들은 대개 교회 내부의 '소통 부재'에서 비롯된 문제를 다뤘다. 예컨대 한국 교회사에서 기독교장로회와 예수교장로회가 나눠진 것도 따지고 보면 상대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며, 이는 '우리네 교회 갈림의 이야기'라는 글에서 다뤘다. 수록된 글 가운데 '도올이 던 진 돌'에도 남의 말 듣기에 인색한 한국교회의 모습이 담겨 있다. 정씨는 "도올이 말한 구약성서 폐기론 등은 기독교에 대해 상당히 공격적인 발언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한국교회의 갱신을 바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읽어 낼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한국교회는 도올의 주장을 이단적 발언으로만 취급할 뿐 진지하게 들어보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 10월 숭실대에서 기독청년 10명과 함께 한국교회의 선교문제에 대해 평가하고 미래의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들의 대담은 이번 책 마지막에 '한국교회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수록됐다. 정씨는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청년들끼리 모여 출판사를 차리다 보니 재정적 어려움이 많다"면서 "숭실대 기독교학과의 세미나 자료집, 학회지, 초대장, 포스터, 현수막 등의 디자인 작업을 통해 경비를 벌고 있고, 심지어 포스터를 붙이는 등 '앵벌이' 수준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제작비를 마련해 이번에 '개독교를 위한 변명' 1천부를 찍었다"고 말했다. 이어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는 것만이 성공적인 삶이라고 보지 않으며, 젊은이다운 열정을 유지하면서 나름대로 가꿔온 신념대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면서 "무모한 시도인 줄 알지만 종교, 세대, 인종, 성별, 이념 등 세상의 모든 대립을 없애겠다는 꿈을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해 출판사업과 함께 사회운동의 차원에서 '꿈꾸는터'를 닦는 일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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