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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 건축투어 2006.03.23 06:00:00

    “나에게 점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슬프게도 내 손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완성시키지 못할 것이다. 뒤를 이어서 완성시킬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장엄한 건축물로 탄생하리라. 시대와 함께 유능한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남기고 사라져갔다. 그렇게 해서 아름다움은 빛을 발한다.”-안토니오 가우디- 
(‘가우디 공간의 환상’ 발췌)                              

<바르셀로나의 티볼리>

나무와 인사하고 기린, 코끼리와 얘기하며 회전풍차를 타고 하늘을 난 후 아이스크림을 물고 놀이공원을 나선 어린아이처럼, 팅커벨 날개 짓을 따라 피터팬이 되어 환상의 동산으로 날아간다. 지중해의 훈훈한 바람을 가르며 바르셀로나 도심 곳곳을 기기묘묘 디즈니랜드로 꾸민 신은 이제 전 세계의 관광객들을 이곳 동심의 세계로 인도한다. 과연 이 신은 누굴까? 카탈루냐 사람들은 말한다. 죽은 가우디가 바르셀로나를 먹여 살린다고. 

천재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 130여 년 전 카탈루냐의 자긍심을 갖고 플라멩코를 추듯 정열적으로 창작활동을 편 가우디는 젊은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신이 인간을 창조하듯 자연에 순종하며 많은 작품들을 쏟아냈다. 달팽이, 버섯, 구름, 나뭇잎 등 자연에서 보고 느낀 그대로를 사실적이면서도 부드러운 곡선과 독특한 디자인으로 건축에 반영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환상의 날개를 펼치게 했다.

자연에 순응하고 미래주택의 꿈을 제시한 구엘저택과 공원, 카사 밀라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보호받고 있다. 한 작가의 작품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두 개 이상 등재된 기록도 전무한 일이다. 가우디의 건축물을 빼고는 바르셀로나를 논할 수 없다. 그의 건축 작품 12개 중 바르셀로나 시와 인근에 9개의 건축물이 집중돼 있는 것만 봐도 짐작할 일이다.

1992년 황영조 선수가 몬주익 언덕을 질주해 마라톤 우승을 차지한 곳으로도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온 바르셀로나. 지중해성 기후의 온화한 느낌으로, 때론 투우 경기와  플라멩코를 추듯 정열적으로 일생을 살다간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발자취를 따라 카탈루냐 사람들의 정취를 느끼며 예술 도시를 여행해보자. 디자인 컨셉에 대한 변화를 느껴보는 것도 바르셀로나 여행의 커다란 재미가 될 것이다.


<가우디 투어>
 

1.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la 성가족성당)

 가우디의 천재성과 신앙심을 느끼게 한 건축물이 ‘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이다. 거대한 옥수수 4개가 하늘로 치솟는 듯한 파격적인 모양의 건축물. 1882년 착공에 들어가 120년이 넘도록 완공을 못하고 지금도 기중기가 계속 움직이고 있다. 이 때문에 이곳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원했던 관광객은 실망감을 금치 못할 것이다. 앞으로도 몇 년이 더 지나야 완성된 역사물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애초 가우디는 예수의 탄생, 수난, 영광이라는 정면 장식과 이 정면 장식에 12제자를 상징하는 12개의 탑을 세우고 중앙에 예수를 상징하는 거대한 탑을 계획했다. 아쉽게도 지금 관광객들은 예수의 탄생과 수난의 정면 장식만을 보게 되며, 12개의 종탑 중 완성된 8개의 종탑을 올라볼 수 있다. 엘리베이터로도 올라 갈 수 있지만 계단을 통해 다리품을 판다면 이곳의 오묘한 구조를 엿볼 수 있고 또한 가우디가 얼마나 신에게 다가서려 했는지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우디 자신도 신의 집으로서 기도와 명상을 위해, 종교를 올바르게 볼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인간을 종교적 감정의 표현과 연결시키는 모체로 건설했다고 말했다.

성당의 외벽 선은 모두가 곡선형태며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구조역학까지 고려했고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신의 숭배를 생동감 넘치는 돌조각들로 표현해 관광객의 시선을 잡을 것이다. 예수 일생의 장면 뒤 보드판에 새겨진 숫자는 예수의 나이 33을 나타내는데 이리 저리 모두 합해도 33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가우디는 건축물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기능은 유지하되 여기에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할 요소를 가미해 마치 살아 숨쉬고 움직이는 듯한 성당을 창조해 냈다.

성당의 앞뒷면은 변화무쌍한 양면성을 내보인다. 용암이 녹아 흐르다 굳은 것 같은 정면은 유리채색의 아름다움을 살짝 내비치다가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 눈깔사탕을 만들어 하늘로 내질러 보낸다. 반대편으로 돌아서면 깔끔한 네오고딕양식으로 신의 모습을 인간에게 알리고자 구도자의 심정으로 성서의 도식을 의미 있게 새겨 놓는 등  성화를 3차원의 입체 건축물로 재창조해 놓았다.   

천재성이랄까 파격이라고 해야 할까. 이곳이 왜 성가족 성당인지 다시 한번 기억해 내야 한다. 신앙심이 돈독한 관광객이라면 신을 가까이서 영접하려한 가우디를 더욱 칭송할 것이다. 지하에는 가우디가 응용한 자연, 처음 건설에 착수한 모습, 자신의 스케치 등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여전히 내부에서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2.카사 밀라(Casa Mila)

카사 밀라는 1905년 가우디의 설계로 5년에 걸쳐 완성된 저택이다. 바르셀로나 시민들이 돌집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사실 지금도 부유층이 살고 있는 고급 맨션으로서 외관이 인상적이다. 벽면의 소재가 석회암인 것도 특이하다. 지금은 약간 퇴색했지만 완성 당시 지붕의 흰 타일과 함께 전체가 백색이었다고 한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베란다의 철재난간도 비대칭의 조화처럼 빛을 발한다. 가우디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파격이다. 물보라 이는 바다 같기도 하고 꿀벌들이 드나드는 벌집 같기도 한 외벽의 모습이 어린아이들의 율동처럼 느껴지거나 마치 7언 율시의 한시를 읽는 느낌도 든다고나 할까. 오전에 둘러보고 오후에 되돌아봐도, 저녁 무렵 불빛에 비춰 봐도 천태만상 제각각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





3. 구엘공원

“나는 꽃, 포도나무, 올리브나무들로 둘러싸인 곳에서 닭울음소리, 새들의 지저귐, 곤충들의 날갯소리를 들으며 프라데스산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의 영원한 스승인 자연의 순수함을 통해 상쾌한 이미지를 얻는다.”

가우디 건축 모태가 무엇인지 느껴지는 말이다. 곳곳에서 파도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그가 지중해를 보고 여러 가지 사물의 모습을 관찰했기 때문이다. 사물을 관찰하는 가운데 참된 예술을 끄집어 낸 가우디는 순수를 추구하는 자연인이었을 것이다. 

가우디 순수성을 캐내 그의 천재성을 세상에 알린 스승이자 친구가 바로 가우디보다 6살 위인 에우세비오 구엘 남작(Eusebi Guel 1846~1918)이다.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은 심지어 자신의 저택을 지을 때는 자금에 구애받지 말고 완성하라는 절대적 신임을 보낸다. 아치형 천장과 장식으로 가득 찬 독창적인 방, 조각타일로 만들어진 굴뚝지붕은 당시 건축술의 기본 틀을 바꿔버렸다고 한다.

구엘의 별장과 저택을 차례로 지은 가우디는 1900년 바르셀로나 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페라다 산기슭에 정원도시를 건설해 나간다. 공원 입구 계단 중앙에는 지하수의 수호신 퓨톤이 네 발로 턱하니 버티고 신전출입을 지키고 있다.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 활용했다고 하는 형형색색의 모자이크 타일은 아랍풍의 느낌을 준다. 계단을 올라서면 86개의 도리스식 기둥이 있는 다주실이다. 그리스극장이라는 중앙광장의 반을 이 원기둥들이 떠받치고 있다.

떡갈나무, 야자나무, 로즈마리, 등나무 등이 건물과 엮여 전체적으로 주위 자연과 잘 조화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밑에서 보면 도리스식 신전, 중앙광장, 산책로, 돌로 쌓은 돌기둥집 등 크게 4~5층으로 나눠볼 수도 있다. 타일벤치에 손을 짚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의 집을 모델로 만들었다는 물결모양의 집이 내려다보이고 고개를 들면 바르셀로나 시가지와 지중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엘 공원을 보면 건축이 예술이라고 강변한 가우디를 엿볼 수 있다. 깨뜨린 형형색색의 타일로 더덕더덕 아무렇게나 붙여 놓은 듯하지만 조화롭고 아름답다는 인상을 받는다. 다양한 색체로 활력 넘치는 창조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게 가우디답다. 더구나 이곳을 찾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타일벤치에 앉아 책을 보거나 삼삼오오 얘기하는 모습은 이 도시가 예술의 도시임을 의심치 않게 된다. 


4.카사 바트요 

모자이크 장식의 외벽이 선명한 색깔로 빛나는 카사 바트요는 가우디가 1904년 돈 호세 바트요 카사노바스 집을 개축한 것이다. 일렁이는 파도처럼 물결모양의 표면을 만들어 그 위에 여러 가지 색유리 파편과 둥근 채색 타일을 입혔다. 가면 쓴 발코니는 채색유리와 조화를 이루고 아침 햇살이나 저녁 불빛을 받으면 아름다운 무지개 색을 보여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바트요의 손녀가 살고 있는 이 집은 각 층을 구경하는 요금이 달라 마치 빌딩을 올려다본 시골청년이 서울 사기꾼에게 빌딩 층수만큼 값을 지불했다는 우스갯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그라시아 거리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몇 블록 떨어져 있는 카사 밀라와 함께 가우디의 건축 양식을 대조해볼 수 있다. 참고로 그라시아 거리에는 루이비통, 샤넬, 아르마니 등 명품 가게가 즐비해 쇼핑족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몬세라트>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축에 영감을 준 회백색 바위산-

‘톱으로 자른 산’이라는 뜻의 몬세라트(Montserrat). 신앙심이 깊고 자연을 사랑했던 가우디는 바르셀로나 시에서 불과 6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이곳에 자주 들렀다고 한다. 그는 이곳 수도원에서 기도를 한 후 800만 년 전 지각 변동으로 생긴 6만 봉의 석봉을 보며 경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코끼리바위, 가족바위, 물개바위 등 서는 위치마다 형형색색 변하는 용암 산을 보고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구상했는지도 모른다.

몬세라트로 가는 길은 험하다. 가파른 언덕길을 간신히 오르는 버스가 위태로워 보인다. 창밖을 보면, 은은하게 보여준 산의 윤곽들이 바람을 안은 구름들로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다. 신선이 나올 법하다. 길도 없고 나무도 없이 오직 산꼭대기 기도원만이 보일 뿐이다. 정확하게 산 중턱에 오르면, 버스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평지가 나온다. 이곳에 11세기 세워진 베네딕트회 수도원이 있다. 성모 마리아 신앙의 성지로서 카탈루냐 사람들의 종교적 터전이 되어 왔다고 한다. 1811년 나폴레옹 전쟁으로 파괴되어 지금의 건물은 19~20세기에 다시 재건한 것이다.

푸니쿨라(밧줄케이블카)를 타고 10여분을 더 올라가면 바위산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가 나온다. 고도 1234m의 기이한 회백색 바위산을 바라보면 갑자기 호연지기가 생긴다. 오전에 올랐다면 조금은 서둘러야 한다. 정확하게 오후 1시가 되면 성당의 종소리가 기도시간을 알린다. 에스콜라니아(Escolania) 소년합창단 50여명이 맑은 소프라노로 합창을 한다. 늦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벼 서서 신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성당 내에는 검은 마리아상이 있고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봤던 눈동자도 다시 볼 수 있다. 아무리 위치를 바꿔 봐도 하염없이 나를 주시하여 ‘신비의 눈동자’라고 한다.

<Info>

1.교통편

스페인으로 가는 직항노선은 없다. 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에서 이베리아 항공으로 갈아타고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빌바오, 말라가, 세비아, 발렌시아 등 스페인 내 각 도시로 들어가야 한다. 피레네 산맥이 막혀 있지만 최근에는 파리-바르셀로나 급행열차 노선공사가 한창이다. 완공되면 저녁에 파리를 출발해 아침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할 수 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약 12Km. 카탈루냐 광장까지 공항버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약 15분 소요. 버스는 시내를 운행하는 TMB노선이 있고 지하철 이용도 권할만하다. 

 

2. 시 소개

스페인 제2의 도시 바르셀로나는 이베리아 반도의 북동부 지중해의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으로 온난한 기후조건을 갖고 있다. 고딕지구로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구시가지와 현대 빌딩으로 들어차 있는 신시가지로 구분된다. 물가가 비싼 부유한 도시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도시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마라톤 영웅 황영조 선수가 몬주익 언덕을 내치달아 세계를 제패했던 기억을 남기고자 시정부와 삼성그룹이 주경기장 맞은편에 기념석을 설치했는데 황선수의 모습 그대로 흉내 내며 사진을 찍으려는 한국인들로 붐벼 관광 명소가 됐다.

스페인하면 떠오르는 플라멩코. 인도에 기원을 두고 유럽을 유랑하던 집시들이 15~6세기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역에 유입되면서 시작된 서민들의 문화다. 집시의 애환과 사랑 등 일상적인 일을 주제로 노래하며 손뼉과 구두소리로 효과를 살려낸다. 우리네 창 정서를 조금 격렬하게 표현했다고 할까. 바르셀로나는 관광지이기 때문에 미리 예매하지 않으면 티켓도 없을 뿐 아니라 늦은 예매는 십중팔구 귀퉁이 좌석으로 온전히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예매는 필수.  

바르셀로나는 또한‘예술의 도시’다. 화가인 피카소, 달리, 건축가 가우디, 성악가 호세 카레라스, 아그네스 발차 등이 카탈루냐 출신이거나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특히 가우디는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가우디>

1852년 스페인 카탈루냐 레우스 시에서 가난한 구리세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가우디는 필생의 후원자였던 구엘 남작을 만난 후 자신의 창의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다. 31세에 필생의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에 작업에 착수해서 죽을 때까지 줄기차게 매달린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고 때때로 행색이 남루해서 걸인으로 착각한 행인들이 동전을 주었다는 일화도 있다. 뭔가 골똘하게 생각하다가 전차에 치여 1926년 사망했다. 사망 당시에도 한동안 행려병자로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연보-

1852년 지중해 연안 카탈루냐 레우스 시 출생

1869년 바르셀로나대 이공학부 입학

1874년 시립 건축학교 입학

1877년 최하위 성적으로 졸업

1878년 건축사 자격증 취득

1878년 구엘 만남

1883년 사그라다 파밀리에 성당 총감독 임명

1887년 구엘별장

1898년 카사 칼베트 건축

1900년 바르셀로나 최우수 건축상 수상

1904년 카사 바트요 복원 시작

1906년 카사 밀라 작업

1914년 구엘공원 건축

1918년 구엘 사망(1848~1918)

1926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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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민에서 왕으로 2005.12.18 22:55:19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이곳은 불가사의한 땅이다. 4억 8천이 넘는다는 다양한 신만큼이나 불가해한 나라, 인도는 11억 명의 인적 자원, IT강국의 이미지와 카스트와 가난, 불결한 나라로 각인되는 극과 극을 달리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섣부른 고정관념을 버리고 힌두인과 동화되어 그들처럼 행동하려는 고행을 각오하고 떠나야만 인도란 땅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편안하게 여행을 다녀올라치면 그곳은 그저 불결하고 미개한, 믿지 못할 가난한 나라로밖에 보이지 않으리라.

인도 북쪽 귀퉁이에서 2년 정도 머물다 간 위대한 알렉산더도, 힌두를 죽이고 이슬람을 심으려 한 칭기즈칸의 후예들도 결국은 힌두사상에 흡수되고 동화되어 버렸다. 예수도 부처도 모두 힌두 신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이는 나라, 인도. 수천 년을 이어온 카스트제도가 아직도 엄연히 존재하는 이 나라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겨우 8일간, 그것도 일부에 지나지 않는 델리, 자이푸르, 아그라를 보고 인도를 얘기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는 일이다. 학창시절 좋아했던 헤르만 헤세가 정작 본토는 밟아보지도 못하고 인도 여행기를 썼다고 하니 조금은 만용이 생긴다.

일단 인도에 가면 아직도 곳곳에 카스트가 살아 있음에 전율한다. 그리고 곧바로 신분상 불가촉천민으로 전락함에 씁쓸해 할 것이다. 우스갯소리지만 엄연한 신분제 사회에서 브라만도, 크샤트리아도, 바이샤도, 수드라에도 못 끼면 사실 청소나 도살만 안 할 뿐이지 불가촉천민이 됨은 당연지사. (참고로 인도는 아직도 인구의 15%나 차지하는 하리잔(Harijan) 또는 달리트(Dalit)라는 가장 밑바닥 천민이 반인권적 폐해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인도 여행기를 쓰려고 했다가 맘을 바꾸었다. 일주일 주마간산으로는 여행기 명함 내밀기도 부끄러울 뿐 아니라 내 블로그 제목(색다른 투어리)에도 어울릴 수 있도록, 인도에 닿으면 곧바로 천민의 신분으로 전락하는 여행객들을 구원할 방법을 소개하는 것이 좀 더 사명감이 있겠다 싶다.

수도 델리에서 자동차로 4시간 정도 자이푸르로 향하면 자이푸르 40Km 못 미처 라자스탄의 소왕국 사모드 궁궐이 나타난다. 호텔로 개조한 이곳 궁궐에서의 하룻밤은 여러분을 단번에 천민 소속에서 왕의 신분으로 변모시킨다. 전쟁이 잦았던 이곳은 궁궐이라기보다는 요새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사모드 마을을 지나면 곧바로 궁궐이 나타나는데 입구에 들어서면 사방에서 화살촉이 쏟아질 것 같은 묘한 기운에 식은땀이 흐른다. 안심하시라. 15년이 훨씬 지나게 호텔로 개조되었으니 전사들은 없을 것이다. 다만 황금색 터번을 두른 멋진 라자스탄의 수문장이  왕처럼 여러분을 맞이할 것이다.

마당과 계단에는 싱싱한 꽃잎으로 주단을 깔아놓고 팡파르를 울려 왕의 귀환을 알린다. 각국에서 모여든 왕들을 영접하느라 시종들의 몸놀림이 분주하다. 불가촉천민임을 내색하지 마라. 허리를 뒤로 꺾고 고개를 빳빳이 세워 가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이 호텔 컨셉이 손님을 왕처럼 모시는 것. 양반문화가 몸에 밴 한국인들이야 곧바로 왕의 행세를 흉내 내지만 어디 서양인들 그러한가. 그저 감동에 젖어 들떠 행동하는 어설픈 왕 차림의 유럽 촌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최소한 6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하고 하룻밤 30만 원쯤 하는 비싼 숙박비에도 불구하고 전통을 중시하는 코쟁이들의 발길이 잦다.

대리석 돌기둥 문을 지나 미로처럼 얽힌 층층의 복도를 거닐라치면 자칫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황할 필요는 없다. 어느새 시종들이 나타나 길을 안내한다. 옛날 마하라자(위대한 왕)를 영접하는 방식으로 그야말로 최상의 서비스를 한다. 땡땡땡, 은은한 종소리가 울리면 식사시간이다. 산해진미, 진수성찬,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짜파티와 치킨, 머튼 필라우, 각종 커리, 탄도리 치킨에 킹 피셔 한잔. 식사를 마치고 나와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다보면 달빛에 반사된 보석알들이 대리석 속에서 빛을 낸다. 그 화려함에 눈이 부실 것이다.


수백발의 축포로 시작된 축제는 매일 밤 펼쳐진다. 아마도 사막을 여행하는 나그네의 여독을 풀어줄 요량이리라. 보석과 대리석으로 장식된 스위트룸, 달빛에 반사되어 출렁이는 연두색 수영장, 곳곳에서 펼쳐지는 라자스탄의 전통춤과 인형극 등 공연. 여러분은 금세 시간을 거슬러가 라지푸트의 마하라자가 된다.   

다음날 거대한 낙타를 타고 마을을 지나 사막을 가로질러 자이푸르로 향하다보면 어느새 뒤로 펼쳐졌던 저 멀리 궁궐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참조: http://www.samo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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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보복 2005.10.10 00:27:21

(전등사의 벌거숭이 여인상)
 

강화도 전등사에는 정교한 법당 장식 조각과 화려한 단청 빛깔을 안은 채 아름다운 풍광에 둘러싸여 화려한 건축술을 뽐내는 보물 178호 대웅전이 있다. 그런데 처마 끝을 보면 어떤 사찰에서도 본 적이 없는, 조금은 생뚱 맞는 조각상이 있다. 나녀상이다.

네 귀퉁이 처마 끝을 받치고 있는 벌거벗은 이 여인상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조금은 상스럽기까지 한 희한한 모습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다. 도저히 절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게 두 손으로 추녀 끝을 들어올리다가 힘들면 머리로 이는 모습으로 그렇게 400여 년의 시간을 힘겹고 처절하게 응징을 당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조선 광해군 13년인 1621년, 대웅전을 중건하던 대목수가 한 여인을 사랑해 벌어둔 노임을 모두 맡겼는데 공사가 끝날 무렵 마음이 변한 여인이 사랑을 배반하고 도망쳤단다. 상심한 목수는 나쁜 짓을 경고하고 죄를 씻게 하기 위해 추녀를 받치는 여인상을 조각했다는 것.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이상으로 목수의 묵은 감정이 서려 있는 것 같다. 사랑에 빠질 만큼 예쁜 여인이었을 텐데 원숭이처럼 묘사하지 않았나, 두 손도 모자라 처마를 머리로 이게 하고 아예 벌거숭이로까지 만들어버렸으니 말이다. 여자가 원한을 품으면 여름 한철 서리가 내린다던데  남자의 보복은 한철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억겁을 이어가게 하니 남자 잘못 만나면 평생 후회하는 게 아니라 자손대대 후회할 일이네 그려. 허~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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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땅 세계문화유산 모두 보았는가? 2005.10.06 00:46:13

 (강화지석묘)
지난 일요일, 3일간의 연휴를 맞아 일산 집에서 가까운 강화도를 다녀왔다. 단군이 쌓은 제단에서부터 선사, 중세,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역사가 망라되어 있는 강화는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린다. 난 여러 번 갔지만 가족이 함께 간 건 이번이 처음이란다. 그랬었나. 게다가 그곳을 다녀와서야 비로소 한국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7군데를 모두 다녀오게 됐다.

한국에 있는 세계문화유산으로 가장 늦게(2000년) 지정된 강화.화순.고창 고인돌지구. 그까이것 바위덩이 하나 턱-하니 돌 위에 올려놓은 게 뭐 대단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을까. 헌데 도르래 하나 없던 시절, 오직 팬티차림에 맨손으로 수십 톤 암석을 움직였다고 생각해보라. 더구나 분포도를 보면 왜 늦게 지정했냐고 유네스코에 항의하고 싶을게다. 전 세계 총 6만여 기 중 우리나라에만 3만여 기의 고인돌이 존재한다고 한다. 세계의 절반이 이곳 한국에 있는데다 특히 강화 지석묘의 경우는 길이 7m에 무게 50톤이 넘는 거대석이어서 3000여 년 전 이 지역 족장 세력이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청동기시대 이곳의 발달사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가. 과연 고인돌 왕국이렸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은 137개국 812곳. 문화유산 628, 자연유산 160, 복합유산 24군데 중 한국, 특히 남한에만 7곳이 있고 종묘와 창덕궁, 수원화성, 강화 고인돌지구 등 수도권에만 4곳이 집중되어 있다. 석굴암과 불국사, 경주역사지구야 학창시절 수학여행 때 졸업했을 테고 서울과 수원은 지척에 있으니 해인사 장경판전, 고창.화순.강화 고인돌지구만 다녀오면 7곳 모두를 섭렵해보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안동하회마을, 설악산지구, 강진도요지, 공주무령왕릉, 보은삼년산성, DMZ 등 아직도 등판 차례를 기다리는 유산이 많다. 고구려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북한 또한 개성, 평양유적, 금강산 등 세계 최고의 유산들을 유네스코에 등판시킨다면 당장 내년부터라도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투어’ 테마여행도 가능할 것이다. 멋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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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개고기 풀코스 2005.07.25 00:49:48

(평양단고기집)
오늘은 중복. 여름한철 기를 보하기 위해 특별히 날을 정해서 몸보신하는 나라로는 우리가 으뜸인 것 같다. 보양 음식 중 최고는 역시 개고기. 문화적(?)이라고 느끼는 서양인들이 개고기 식문화를 가지고 왈가왈부하기도 하지만 조금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개고기를 먹지 않던 나라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중국, 일본, 동남아, 폴리네시안 제도뿐만 아니라 유럽국가 곳곳에서도 과거의 개고기 시식 얘기를 심심찮게 들었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오늘 소개할 것은 평양 개고기 풀코스 요리. 우리가 찾은 곳은 ‘평양단고기집’.  양식코스처럼 부위별로 6~7가지 요리가 차례로 나오고 그것들을 소금소스, 핫소스 등 각각 다른 소스에 찍어 먹었다. 나중에 밥과 국이 대미를 장식하고 나서야 피니시. 뭐 한민족인 남과 북이 같은 식문화를 가진 것은 당연하니 특별하게 색다를 것도 없었던 것 같다. 안 먹고 가면 평생 후회한다는 안내원 동무의 성화에 넘어 온 여성 세 분과 한 테이블에 합석했는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접대여성들이 한 접시 두 접시 요리들을 들고 오니까 처음의 의욕적 도전 때와는 달리 젓가락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안 오면 손핼 것 같아 일단 오기는 했는데 막상 먹을 생각을 하니 오만가지 잡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날 우리 테이블의 남자들은 게걸스럽게 여성들 몫까지 깔끔히 해치웠다.


(코스별로 나온 평양단고기 요리, 요리명은 모른다.)

(단고기를 찍어 먹는 양념)


(코스 후 밥과 국, 냉면)


(함께 곁들인 단물과 대동강맥주, 평양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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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고래를 쫓아서 2005.07.22 01:21:49

(알래스카의 콜롬비아빙하관광도중 만난 고래쇼 장관)

춤추는 고래를 보았는가. 거대한 고래 한 쌍이 경쟁이라도 하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바다를 휘저으며 긴 꼬리로 물보라를 일으키는 광경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알래스카의 크루즈 빙하여행을 하다보면 신이 난 고래들이 현란한 쇼를 유감없이 펼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고래들은 이곳을 천국으로 생각하겠지? 

우리나라 동해안도 고래 수가 점점 늘어 고래천국이 됐다. 참돌고래, 흑범고래, 큰돌고래, 밍크고래 등 5천여 마리가 곳곳에서 떼거리 쇼를 보일 때는 장엄하기까지 한다. 울산, 포항, 동해시가 앞 다투어 고래도시 이미지로 관경할 수 있는 생태마을을 조성한다고 한다. 우리도 유람선을 타고 현란한 고래쇼를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겠지?  불법포획도 막고 관광객도 유치하고.


알래스카 여행팁:

내 블로그 제목처럼 색다른 여름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알래스카를 권하고 싶다. 1000평에 2센트짜리였던 헐값의 땅이 에스키모어인 ‘위대한 땅’처럼 금싸라기땅으로 변해 있는 알래스카, 6월에서 8월이 평균 기온 15도 내외의 여행하기 딱 좋은 여름에 해당된다. 때묻지 않은 지구 최후의 비경을 놓치지 말라. 대한항공 직항: 인천~앵커리지 8시간 소요, 복장은 가을잠바 차림.

1.빙하관광-발디즈 콜롬비아빙하관광,  위디어 26빙하관광  4~5시간소요. 빙하위스키는 꼭 마시길
 

(알래스카는 10만개의 빙하가 있다. 사진은 콜롬비아빙하)
2 매킨리산 등정-타키트나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북미최고봉 매킨리 정상에 오른다. 고상돈 추모비가 비행장 근처에 있다.

(매킨리 경비행기 관광)

3.키나이강 연어낚시-연어낚시도 하고 이곳 키나이 리버밴드 리조트 사장 조경득씨와 친구도 되기. (조는 초딩때 이민, 워싱턴대를 졸업한 후 아버지가 가꾼 6만평 숲을 관리하는 한국인2세.  순수한 한국친구가 그립단다.)

4.통나무집에서 하룻밤 지내기

4.백야 골프치기 

(밤12시 백야로 환한 앵커리지 시내 )

5.현지 여행전문 그레이라인 코리안 (GRAY LINE) 하인호사장 ☎ 907-743-0541
(하인호사장은 알래스카 곳곳을 탐험해 여행지를 개척하는 박학다식한 거구의 사업가. 혹시 적은 비용으로 럭서리 알래스카 여행을 주선해주지 않을까^^)
6.요즘 신문보면 여행사에서도 광고 무지 때리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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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온달 궁금증 3가지 2005.07.13 07:14:31

(단양의 온달산성)

1.온달은 정말 바보였나. 
 당시 고구려는 광개토, 장수왕의 전성시대가 끝나고 6세기 중반부터 약화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새롭게 등장한 신진세력과 제휴하게 된다. 이 신진 무장세력 중 하나가 온달세력이다. 가난하고 못생겼으며 미천한 신분이지만 뛰어난 무예실력을 가졌을 온달은 철저한 신분제사회인 고구려에서 일약 평원왕의 사위가 된다. 평민들 사이에 떠오른 우상이었을 것이고 그에 대한 수많은 시기와 부러움 등이 설화가 되어 구전되었다가 500여년이나 지난 뒤 삼국사기 열전에 기록된다. 이러한 정황으로 봐서 바보는 아니었을 것.

 2. 온달은 어디서 전사했나.

삼국사기 열전에 신라군과 아단성·阿旦城) 아래에서 싸우다가 전사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충북 단양의 온달산성과 서울 아차산성 두 곳 모두 타당성이 있다. 계립현(鷄立峴)과 죽령(竹嶺) 서쪽 땅을 되찾기 위해 떠났다는 기록과 단양 영춘의 옛 이름 을아단현(乙阿旦縣) 지명으로 봐서 많은 학자들이 단양 쪽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 시기 삼국의 전략적 각축장으로 수많은 싸움이 있었을 한강유역 아차산성 또한 온달과 어떻게든 일련의 상관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평양에 있는 온달과 평강공주 합묘)

3. 온달의 묘는 어디에 있나.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한 온달 시신이 움직이지 않아 평강공주가 어루만져 평양으로 가져갔다고 하니 단양의 태장이묘는 온달장군 무덤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평양의 동명왕릉 뒤쪽에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합묘가 있는 걸 보면 온달묘는 틀림없이 평양에 있다.


여행팁:

1.충북단양-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단양IC로 들어서 단양시내를 향하다보면 곧바로 도담삼봉이 자태를 뽐낸다. 온달산성을 둘러보고 단양8경을 구경한 후 소백산 비로봉에 올라보는 감동도 클 것. 육쪽마늘을 넣고 지은 마늘솥밥의 장다리식당과 손수 잡은 쏘가리매운탕이 별미인 삼봉소백식당 등 유명식당이 많다. 자세한 내용은 단양 홈피 참조.

2.아차산성-서울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 4번 출구로 나와 워커힐 방향으로 올라가면 된다.

3.평양은 초청장이 필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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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이나 평양못간 사연 2005.07.04 06:00:00

(평양에서 이명조 기획취재팀장, 북한측 인사들과 기념촬영)
 (백두산 천지에서 변동현 방송학회 회장과 기념촬영)

내겐 세 번씩이나 평양방문이 문 앞에서 좌절된 사연이 있다.

판문점을 출입할 때다. 당시 1주일에 2~3번 새벽같이 서울을 출발해 판문점에 가서 취재를 했다. 통제위, 분과위, 예비접촉, 교류위, 정전위 등 남북간 회의도 참 많았던 시기다. 오전 10시 마감을 넘기면 회담 뒷이야기를 취재하기 위해 오후까지 뻗치기(기다리기) 일쑤. 그러다 보면 남북관계자들이 3355 어울려 북한 과자, 단물도 먹고 담배도 나눠 피면서 잡담을 했다. 되도록 이념이나 민감한 사항은 피하는 게 예의. 그러다가 심심하면 경내 이곳저곳 둘러보고 꽃구경도 하고 개성 가는 길도 가보고. 맘만 먹으면 쭉 달려가 평양으로 갈 수도 있을 때였다. 남북이 번갈아가며 개최하는 회담도 많았고 그 만큼 왕래도 잦았던 시기였다. 건이 있으면 기자가 있게 마련. 말랑말랑 선배?까지 쉽게 평양을 다녀왔다. 철저하게 입사 순이었던 순번에 따라 드디어 내 차례. 번호표 받고 학수고대하고 있었는데 잘 나가던 회담이 그만 94년 3월 ‘서울불바다’ 발언으로 전면 중단되고 말았다. 첫 방문의 설렘은 이렇게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또 다시 시간이 흐르자 화해무드가 찾아왔다. 94년 카터의 중재로 김일성 장군이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열자고 제의한 것. 이번에는 건이 좀 커서 청와대 출입기자들 제한된 명단에 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세계적인 이슈에다가 우리의 소원인 통일이 될 것 같은 역사적 현장, 기자들 몸이 달지 않겠는가. YS뿐 아니라 청와대 멤버들, 출입기자들 모두 좀처럼 흥분이 가시질 않을 때였다. 당시 연합뉴스는 유일하게 인말새트(위성전화)를 갖고 있었다. 피터 아네트가 걸프전 때 이걸 들고 현장으로 달려가 전쟁을 마치 영화처럼 중계해서 CNN을 일약 세계적 방송으로 굳혀버린 장비말이다. 기사. 사진 송고 외에 비상시 핫라인 역할도 가정해 선임 김승두부장 지시하에 인말새트 모의실험을 참이나 많이 했다. 평양상황과 가장 비슷할 것 같아 택한 모스크바까지 가서 했으니. 헌데 그런 노력도 허사.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2주를 남겨놓고 7월 8일 김일성 장군이 갑자기 서거했다. 방북 취소.

세 번째, 2001년 10월 이산가족 평양상봉 취재를 위해 또다시 방북기자 리스트에 명단을 올렸다. 양복도 다려놓고 만반의 준비를 마친 후 드디어 떠나기 전날. 사전교육 중 갑자기 김형기 차관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얼굴이 점점 굳어지더니 전면 방북취소 선포. 대화할 정세가 아니라나 뭐라나.

그 후 한참이나 후인 2003년 10월 4번째 만에 드디어 평양땅을 밟았다. 그 동안의 마음고생을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듯 평양 외  민족의 영산 백두산까지 보여주었다. 백두 산신령의 허락없이는 함부로 볼 수 없다는 푸른 천지까지 보여주는 파격적 환대였다. 최근 방북인원이 1년에 2만 6천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신뢰를 쌓으러 가든 경제를 살리러가든 더 나아가 통일을 꾸리러 가든 서로 자주 만나다 보면 우린 한 핏줄이니 상처를 보듬고 뜻을 모아 언젠가 통일도 만들지 않겠는가. 한반도를 감싸는 주변국들의 발 빠른 계산속 틈바구니 속에서도 이처럼 남북이 하나 되어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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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처를 위한 명품나들이 2005.06.22 21:51:07

 


고생하는 와이프 한번쯤 여왕처럼 모시고 싶을 때 권할 만한 명품 나들이 하나. 행여 아내 팽개치고 애인(?)에게만 써먹지 마시라. 효과가 크단다. 오붓하고 편안하게 그러면서도 최고의 시설 속에서 특별한 감동과 추억을 만끽할 수 있는 명품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찾아가보라.

롯데시네마 에비뉴엘관의 샤롯데관, CGV 골드클래스 오리, 상암, 그리고 용산 등 4곳이 있다. 누워서도 영화를 즐길 수 있게 인체공학을 고려한 좌석을 넓은 공간에 30~34석만 배치했고 최첨단 영상 음향 시스템을 갖췄다.  직원들은 무료인 기본 음료까지 무릎을 꿇고 서비스한다. 이곳에서는 고객 누구나 왕과 왕비가 된다. 예약은 필수. vip라운지는 영화시작 전 1시간 동안 이용할 수 있다.  돈 좀 쓰겠다면 케이터링 서비스도 가능. 가격은 비싼 편. 평일 25,000원, 주말 30,000원. 조조할인, 앞좌석 할인, 청소년 할인으로 평일 앞좌석에서 영활 볼 경우는 15,000원으로 경비를 줄일 수 있다. 
얘들이 있다면 월드컵공원에서 놀릴 수 있는 CGV 상암이 좋고 시내와 가깝다면 소공동 샤롯데관이 낫다.  아직 일반에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발 빠른 젊은 연인들과 연예인, 젊은 기업들이 주 고객들이라는 귀띔. 운 좋으면 바로 옆자리에서 스타와 함께 멋진 영화를 감상하는 행운도 건질 수 있다.

예약문의  CGV http://www.cgv.co.kr/

                  상암:  02 -304-6222

                  오리: 031-728-5260

                  용산:  02-2012-2999

             샤롯데관 http://www.lottecinema.co.kr/ 
                               02-2118-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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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불 2005.06.16 07:31:28

 태국 동쪽 소도시 차청사오(Chachoengsao) 흥복원이라는 절에 모셔져 있는 좌탈 등신불(중앙 불상 좌우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두분의 스님). 김동리의 단편소설 ‘등신불’처럼 시신에 금물을 입혀 썩지 않게 보존한 진짜 ‘스님미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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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보리수다. 2005.06.13 22:46:14

 (선원장 원유스님이 보리수 나뭇잎을 들고 설법 중)


새소리, 물소리에 귀를 적시며 차 한 잔에 속세의 때를 벗겨낼 쯤 선원장 원유스님이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보리수 나뭇잎을 꺼내 보이며 설법을 한다.  보리수 아래서 석가가 깨달은 진리를 하찮은 중생에게 조금이라도 설파해볼 요량일까.

번뇌를 안고 예토에서 벗어나 좁은 숲길로 한참을 들어가자 갑자기 정토가 나타난다. 강화연등국제선원(www.lotuslantern.net), 요란스럽지도 고풍스러울 것도 없이 절 같지도 않게 그저 그곳에 고즈넉이 서 있다. 1997년 성철스님의 제자 고 원명스님의 발원으로 한국 선을 수행할 외국 스님을 위해 개원한 도량이다.

외국인이건 내국인이건 템플스테이를 신청한 중생들은 수행 프로그램에 따라 예불과 참선을 한다. 여느 절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외국인 스님과 외국인 참가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모두 부처님의 제자일 뿐이다. 전통다도를 익히고 채소밭 울력도 한다. 굳이 강요하지는 않지만 모두들 알아서 따라한다. 탁닉한 스님의 수련원처럼 언젠가는 수행 프로그램도 없앨 거란다. 뭔가 배우려고 하지 말고 웃음만 빼고 모든 것을 버리고 가라며 주지 일백스님이 일갈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하고 좌선으로 심신을 정갈하게 한 후 안개를 젖히며 오솔길을 걷는 아침산책은 번뇌를 던져 버리는 시간이다. 나도 없고 너도 없는 무아의 경지가 이런 것일까. 1박2일의 무릉에서의 여정을 마친 후 처음 왔던 좁은 숲길을 빠져나오자 내 등을 짓누르는 등지게는 썩어 있었다.


(아침산책)

(산사의 풍경, 차를 따르는 원유스님)

수행프로그램 일정표(1박2일)

 14:00 접수·방사배정

 15:00 오리엔테이션

 16:00 자유시간(외국인과 조용하게 즐김)

 17:00 석공 

 18:00 저녁예불·좌선 

 20:00 차담(만남의 시간)

 21:00 취침 


 4:00 예불·좌선 

 5:00 방선·휴식 

 6:00 조공·휴식 

 7:00 산책

 8:00 울력

 10:00 다도

 12:00 점심공양

 13:00 귀가


템플스테이 팁:

누구나 신청 가능하고 내. 외국인 구분 없이 함께 생활한다. 참가비는 1박2일 4만원, 2박3일 6만원. 교통편과 자세한 내용은 강화연등국제선원 홈피(www.lotuslantern.net) ,대한불교조계종 홈피 (http://www.buddhism.or.kr/) 나 템플스테이( http://www.templestaykorea.com/) 참조.

강화연등국제선원(江華國際燃燈禪院) 

전화 :032-937-7032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길직리 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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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왜곡한 영웅들 2005.06.08 06:00:00

영활 보면 감독들은 정말 천재들일거란 생각이 든다.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풍광들을 찾아내는지, 어디서 그런 영웅들을 불러내는지 절로 감탄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천재들이 실존영웅들을 왜곡했다면? 영화야 어차피 작가 의도에 따라 픽션이 구성되지만 실존인물을, 그것도 한쪽에서는 존경받는 인물들을 망가뜨려놨다면 얘기는 달라지지 않겠는가.

그들이 잘못 그린 대표적인 인물이 ‘임호텝’, ‘드라큘라’, ‘살리에리’다.    'Imhotep‘은 건축가, 천문학자, 의사, 대법관, 대사제로 활약한 기원전 27C 이집트 제3왕조 조세르왕 때의 명재상이다. 히포크라테스보다 뛰어난 의술과 피라미드로 집대성된 그의 건축, 천문학 지식으로도 짐작하겠지만 이집트 역사에서 파라오만큼이나 신으로 추앙받는다고 한다. 헌데 후세 천재들이 선배 천재를 시기했음인지 영화 ‘미이라’에서 그를 아낙수나문을 탐하는 악인으로 묘사했다. 두 번째, ‘Dracula’는 더하다. 그는 지금의 루마니아 옛 왈라키아공국의 영주로 조국을 지킨  전쟁 영웅이었는데도 수백 편의 영화에서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최악의 악인으로 묘사해 놓았다. 정말 드라큘라만큼 억울한 인물은 없을 것 같다. 안중근 의사를 살인범으로 매도하면 좋겠는가. (드라큘라는 내 블로그 앞쪽에서 자세하게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Salieri’. 18C말에 활약한 이탈리아의 음악가로 당대 최고의 실력과 덕망을 갖춘 궁중악장이었다고 한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천재 모차르트를 시기하며 신을 저주한 노회한 음악인으로 묘사해 놨다. 천재를 돋보이게 한 들러리. 그 또한 억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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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저 이전에도 시저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루비콘 강을 건넜다. 하지만 시저가 건넌 루비콘 강만이 역사적 사실로 남는다.  E.H 카가 던진 화두를 꺼내 본다. 역사란 무엇인가. 과연 진실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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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공짜투어 2005.06.01 06:00:00

 

청와대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그것도 공짜로.

한때는 장관들에게도 쪼인트를 까던 박종규, 차지철이나 나는 새나 떨어뜨린다는 장세동의 허락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었던 곳, 더구나 잔뜩 주눅이 들어 오금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기어드나들던 이곳을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외국인이라도 신분이 확실하다면 쉽게 방문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 대통령 직무와 주거공간인 청와대는 약 8만여 평의 넓은 공간이다. 절간처럼 조용하고 넓은 공간이 DJ 정권시절 1998년 5월 전면 개방돼 일반인들의 음성이 새나오게 됐다. 하지만 아직은 규제가 많은 부분 개방이라고 할 수 있다. 춘추관을 통과해 녹지원, 수궁터, 대통령본관, 영빈관, 칠궁을 둘러보는 게 전부다. 건물 내부는 말할 것도 없고 사진촬영도 지정된 곳에서만 해야 한다. 아직 통제에 익숙해 있는 사회다. (백악관이나 판문점을 방문할 때는 첫 검색만 거친 후 일단 경내에 들어서면 사진을 찍든 얘기를 하든 상관하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녹지원은 높이 16m, 수령 157년 된 한국산 반송이 크게 자리 잡고 있는 넓은 야외공간이다. 한때 YS는 이곳에서 조깅을 즐겨했다. 지금은 야외 행사장으로 사용된다. 바로 위 전통 한옥양식인 상춘재가 있고 맞은편에는 대통령 비서관의 업무공관인 여민관이 있다. 백성과 고락을 함께한다는 '여민고락(與民苦樂)‘에서 따왔다는데 인솔 비서관의 지나치리만큼 잡담금지 통제가 눈에 거슬렸다. 사소할 것 같은 이런 분위기가 대통령에게까지 전달되는 언로를 막는 것은 아닐까. 떠들도록 내버려두고 그들의 얘기 속에서 민심을 엿들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YS 때는 출입기자들이 제방 드나들 듯 경내 어느 곳이나 쉽게 들락거렸는데 DJ 중기 이후 슬그머니 통제해 쉽게 접촉할 수도 없는 곳이 돼버렸다.

개울가를 지나 정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옛 본관 터가 나온다. 총독관저와 미군정사령부 관저, 경무대, 옛 청와대 본관으로 사용되어오다 지금은 철거돼 수궁터로 남아 있다. 이곳에서 문을 하나 더 통과하면 청와대 본관이 나온다. 한 층이 보통건물의 2~3층 높이로 내부가 웅장하며 1층에는 접견실, 연회장, 식당, 대통령부인 접견실이 있고 2층에는 대통령 집무실, 부속실, 접견실, 회의실이 있다.

YS와 DJ시절 각각 두 차례 청와대를 출입했던 필자는 이제는 누구에게나 개방돼 관람할 수 있는 것 외에 좀더 다양한 볼거리와 내부 개방도 검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왕조시대도 전체주의도 아닌 민주화된 나라에서 국민이 못가는 한국 땅이 어디 있단 말인가. 독도도 개방하는데...

본관을 나와 대규모 만찬장인 영빈관으로 가서 임금이 다녔다는 어도를 따라 당당하게 어깨를 쫙 펴고 걸어보라. 대통령의 꿈을 안고서.


여행팁: 

청와대 홈피( http://www.president.go.kr/cwd/kr/index.php)에 등록을 하고 ‘청와대 소개’를 클릭한 후 ‘관람 신청’을 하면 된다. 최소 2주전 달력에 내가 방문 가능한 날짜와 가족 수 등을 기입해 바로 신청할 수 있다. 신분이 확실하면 그곳에서 곧바로 승인을 해준다. 청와대 경내 관람을 마친 후 조선시대 왕을 낳은 후궁들의 위패를 모신 ‘칠궁’까지 둘러본 후 효자동사랑방에 들러 깔끔한 선물도 싸게 살 수 있다. 자세한 정보는 위 홈피에 나와 있다. 신분증과 카메라 준비도 잊지 말길.

 
(녹지원, 크게 보이는 나무가 157년된 반송, 뒤의 기와집이 상춘재)

(영빈관, 앞의 4개의 기둥은 이음새가 없는 통기둥이다.)

(조선시대 왕을 낳은 후궁들의 위패를 모신 칠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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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문가가 되려면? 2005.05.18 10:35:42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이라지만 디카세계만 할까?

1년 전 모델을 구입했다면 이미 구형 디카를 가진 것이다. 빠르지.

디카세계에 빠지면 곧바로 사진의 매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학창시절 이곳에 발을 들여놨다가 마술세계에 갇혀 헤매고 있는 사진전문가들 여럿 봤다. 사진은 그런 마력을 가졌나보다. 각설하고.

디카를 만지작거리다보면 쏠쏠한 재미에 빠져든다. 아는 것도 많아지지만 요것 저것 궁금증도 커진다. 이 고비를 넘기면 준 전문가가 된다. 이때를 기준으로, 그러니까 쬐끔 사진 좀 안다는 중급자들이 레벨 업할 수 있는 팁 중 오늘은 raw파일형식을 설명하겠다.

보통 디카로 사진을 찍으면 대부분 jpeg 파일 형식으로 저장된다. 한데 이건 압축해서 저장하므로 원본이 훼손된다. 전문가가 되기를 원한다면 이 훼손이 아깝지 않겠는가? 이때 tiff파일과 raw파일에 눈을 돌리게 된다(tiff와 jpeg포맷의 장단점을 보완해 만든 표준 포맷이 raw).

보통 256가지(2의8승, 8비트) 컬러정보를 가진 jpeg 포맷과는 달리 raw파일은 RGB의 원색 채널당 12비트의 정보를 가진다.  즉 2의 12승, 각 색상 데이터당 4096단계로 구분하는 것. 엄청난 색상 표현이 가능하다는 뜻이고 그만큼 풍부한 계조를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욕심이 생기지 않겠는가?

더구나 말 그대로 ‘날’이미지데이터로 보존되어 옛날 필름사진 인화작업의 묘미마저 살릴 수 있다. 촬영 당시 화이트밸런스를 결정해 두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 잘못 찍었어도 다시 현장에 가지 않고 포토샵으로 맘껏 원하는 대로 보정할 수 있다. 한데 이게 날거라 잘 익혀먹어야 탈이 없다. 돈과 품을 들여 이미지프로세싱을 잘 해야 한다는 뜻이다. 포토샵 cs버전이나 제조사 전용 컨버팅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이게 귀찮아서 사진 좀 안다는 이들은 jpg나 raw나 별 차이 없다고 우기지만 인화해보면 분명히 확연한 차이를 느끼게 된다.

혹시 디카를 구입할 생각이라면 tiff, raw파일을 지원하는 디카를 사라. 요즘은 dslr 카메라뿐만 아니라 콤팩트형 일반 디카도 raw파일형식을 지원하더라. 여행 때 그냥 jpg로 찍고 다니다가 놓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풍광 한번 잘 찍어 거실에다 떡하니 걸어두고 싶다면 파일형식을 tiff나, raw로 바꿔 찰칵. 아무래도 메모리카드도 빵빵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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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여행, 타히티로 가라 2005.05.09 05:00:00

 

타히티 여행은 시간과 비용이 녹녹치 않아 소위 ‘럭셔리투어’로 불린다. 돈 좀 있는 사람들이 가본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까짓것 한 번뿐인 인생 과감하게 좀 쓰겠다는 젊은이들도 많다. 이 명품여행 끝내고 1년 동안 라면만 먹겠다는 각오로 덤비는 이들도 있다. 한번쯤 이런 도전도 해봄직하다. 워터방갈로에서 하룻밤을 지새보면 내가 천국에 참 잘 왔구나 하며 만족해할 것이다. 



수백만 년 전 보물자루를 놓친 신이 흩뿌려 놓은 보석처럼 남태평양 한가운데 118개의 섬들이 때 묻지 않고 순수한 모습으로 그곳에 서 있다. 많은 유럽인들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여행지로 꼽는 곳. 영화 ‘허리케인’ ‘러브 어페어’ 등과 드라마 ‘황태자의 첫사랑’으로 한국인에게도 잘 알려진 타히티. 에메랄드빛 바닷속 열대어처럼 자유롭게 유영하며 환상을 만끽해보고 싶은 곳이다.



타히티의 수도 파페에테 공항에 내리면 ‘파레오’천을 두르고 흑진주로 치장한 아리따운 여성이 ‘티아레’ 꽃을 귀에 꽂아준다. “야오나라(안녕하세요), 마에바(환영합니다)”라며 인사를 건넨다.  자연과 닮은 그들의 웃음 띤 환대에 “마루루(감사합니다)”하고 답해보자. 여행객에게 개방적이고 따듯한 폴리네시안이 어느덧 친구가 돼 다가와 있다.

파페에테 공항에서 지도상 표주박의 오목지점 전까지 한산한 도로를 1시간쯤 달려 초록 숲속의 거대한 야자수를 제치면 고갱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프랑스 후기 인상주의 화가 고갱이 말년에 영감을 얻기 위해 찾았던 타히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세워진 이 박물관에는 아쉽게도 그의 진품이 하나도 없다. 입구의 가계도, 기록물, 당시의 가옥, 공간에 걸려있는 전시물들, 하지만 복제품이라도 고갱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고 느낄 수 있어 감흥이 오랫동안 온몸을 휘감아 돈다.



타히티에서 비행기로 45분, 또다시 배로 20여 분을 달리면 수평선 한가운데 갑자기 우뚝 솟은 ‘오테마누’ 화산봉우리가 가로막는다. 이곳이 타히티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보라보라섬이다. 산호섬으로 32Km 일주도로를 따라 차로 2시간이면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고 사파리투어, 헬기투어도 가능하다. 보라보라섬은 그 아름다움만큼 해변을 따라 세워진 수많은 리조트가 손짓을 한다. 파라솔 간이의자나 야자수 아래 해먹에서 오수를 즐기고 카누를 타고 배달해 주는 식사를 하며 스쿠버다이빙과 스노클링을 즐겨보라. 유럽 명품족들이 찾는다는 최고급 리조트임이 틀림없다.





수백 미터 배를 타고 나가도 가슴 정도까지만 물이 차는 바다 위에서 가오리와 친구하고 환초를 벗어나 깊은 바다에서 상어와 함께 헤엄치면서 먹이를 주는 스릴을 만끽해보자. 석양에  칵테일 한잔하면서 노을의 아름다움에 빠져 들라치면 가히 이곳이 천국임을 조금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여행팁:

타히티는 프렌치 폴리네시아, 프랑스령 해외영토이다. 고급관광지인 만큼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싸다고 한다. 생수 1병이 5000원, 점심 5만원, 저녁 7~9만원 정도. 한국에서는 직항편이 없어 주로 일본에서 에어 타히티누이 항공편을 이용한다. 비행거리만 11시간 반.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치면 족히 열대여섯 시간은 걸린다. 하기야 천국이 어디 그리 쉽게 갈 수 있는 곳인가.  5월~10월이 여행하기에 좋은 시기. 평균기온 25도지만 긴팔 옷과 아쿠아 슈즈를 준비하는 게 좋다. 시차는 19시간, 비자 면제(1개월 이내). 국제면허증을 준비하면 요긴하게 쓰인다. 일부 US달러를 사용하지만 다시 프렌치 퍼시픽 프랑으로 환전해야 편리하다.

명품여행으로 소개했지만 저렴하게 다녀올 수도 있다. 할인항공권을 이용하고 모레아섬과 보라보라섬 등 일부를 배를 이용해 둘러본다. 리조트보다 저렴한 타히티에서 숙박하며 대중교통수단 ‘트뤽’을 타고 시내 포장마차 ‘로울롯’에서 끼니를 때우면 된다. 뉴질랜드 여행을 계획했다면 이곳과의 연계프로그램도 괜찮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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