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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세상] 조금 색다른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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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 건축투어 2006.03.23 06:00:00

    “나에게 점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슬프게도 내 손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완성시키지 못할 것이다. 뒤를 이어서 완성시킬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장엄한 건축물로 탄생하리라. 시대와 함께 유능한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남기고 사라져갔다. 그렇게 해서 아름다움은 빛을 발한다.”-안토니오 가우디- 
(‘가우디 공간의 환상’ 발췌)                              

<바르셀로나의 티볼리>

나무와 인사하고 기린, 코끼리와 얘기하며 회전풍차를 타고 하늘을 난 후 아이스크림을 물고 놀이공원을 나선 어린아이처럼, 팅커벨 날개 짓을 따라 피터팬이 되어 환상의 동산으로 날아간다. 지중해의 훈훈한 바람을 가르며 바르셀로나 도심 곳곳을 기기묘묘 디즈니랜드로 꾸민 신은 이제 전 세계의 관광객들을 이곳 동심의 세계로 인도한다. 과연 이 신은 누굴까? 카탈루냐 사람들은 말한다. 죽은 가우디가 바르셀로나를 먹여 살린다고. 

천재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 130여 년 전 카탈루냐의 자긍심을 갖고 플라멩코를 추듯 정열적으로 창작활동을 편 가우디는 젊은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신이 인간을 창조하듯 자연에 순종하며 많은 작품들을 쏟아냈다. 달팽이, 버섯, 구름, 나뭇잎 등 자연에서 보고 느낀 그대로를 사실적이면서도 부드러운 곡선과 독특한 디자인으로 건축에 반영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환상의 날개를 펼치게 했다.

자연에 순응하고 미래주택의 꿈을 제시한 구엘저택과 공원, 카사 밀라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보호받고 있다. 한 작가의 작품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두 개 이상 등재된 기록도 전무한 일이다. 가우디의 건축물을 빼고는 바르셀로나를 논할 수 없다. 그의 건축 작품 12개 중 바르셀로나 시와 인근에 9개의 건축물이 집중돼 있는 것만 봐도 짐작할 일이다.

1992년 황영조 선수가 몬주익 언덕을 질주해 마라톤 우승을 차지한 곳으로도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온 바르셀로나. 지중해성 기후의 온화한 느낌으로, 때론 투우 경기와  플라멩코를 추듯 정열적으로 일생을 살다간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발자취를 따라 카탈루냐 사람들의 정취를 느끼며 예술 도시를 여행해보자. 디자인 컨셉에 대한 변화를 느껴보는 것도 바르셀로나 여행의 커다란 재미가 될 것이다.


<가우디 투어>
 

1.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la 성가족성당)

 가우디의 천재성과 신앙심을 느끼게 한 건축물이 ‘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이다. 거대한 옥수수 4개가 하늘로 치솟는 듯한 파격적인 모양의 건축물. 1882년 착공에 들어가 120년이 넘도록 완공을 못하고 지금도 기중기가 계속 움직이고 있다. 이 때문에 이곳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원했던 관광객은 실망감을 금치 못할 것이다. 앞으로도 몇 년이 더 지나야 완성된 역사물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애초 가우디는 예수의 탄생, 수난, 영광이라는 정면 장식과 이 정면 장식에 12제자를 상징하는 12개의 탑을 세우고 중앙에 예수를 상징하는 거대한 탑을 계획했다. 아쉽게도 지금 관광객들은 예수의 탄생과 수난의 정면 장식만을 보게 되며, 12개의 종탑 중 완성된 8개의 종탑을 올라볼 수 있다. 엘리베이터로도 올라 갈 수 있지만 계단을 통해 다리품을 판다면 이곳의 오묘한 구조를 엿볼 수 있고 또한 가우디가 얼마나 신에게 다가서려 했는지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우디 자신도 신의 집으로서 기도와 명상을 위해, 종교를 올바르게 볼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인간을 종교적 감정의 표현과 연결시키는 모체로 건설했다고 말했다.

성당의 외벽 선은 모두가 곡선형태며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구조역학까지 고려했고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신의 숭배를 생동감 넘치는 돌조각들로 표현해 관광객의 시선을 잡을 것이다. 예수 일생의 장면 뒤 보드판에 새겨진 숫자는 예수의 나이 33을 나타내는데 이리 저리 모두 합해도 33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가우디는 건축물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기능은 유지하되 여기에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할 요소를 가미해 마치 살아 숨쉬고 움직이는 듯한 성당을 창조해 냈다.

성당의 앞뒷면은 변화무쌍한 양면성을 내보인다. 용암이 녹아 흐르다 굳은 것 같은 정면은 유리채색의 아름다움을 살짝 내비치다가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 눈깔사탕을 만들어 하늘로 내질러 보낸다. 반대편으로 돌아서면 깔끔한 네오고딕양식으로 신의 모습을 인간에게 알리고자 구도자의 심정으로 성서의 도식을 의미 있게 새겨 놓는 등  성화를 3차원의 입체 건축물로 재창조해 놓았다.   

천재성이랄까 파격이라고 해야 할까. 이곳이 왜 성가족 성당인지 다시 한번 기억해 내야 한다. 신앙심이 돈독한 관광객이라면 신을 가까이서 영접하려한 가우디를 더욱 칭송할 것이다. 지하에는 가우디가 응용한 자연, 처음 건설에 착수한 모습, 자신의 스케치 등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여전히 내부에서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2.카사 밀라(Casa Mila)

카사 밀라는 1905년 가우디의 설계로 5년에 걸쳐 완성된 저택이다. 바르셀로나 시민들이 돌집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사실 지금도 부유층이 살고 있는 고급 맨션으로서 외관이 인상적이다. 벽면의 소재가 석회암인 것도 특이하다. 지금은 약간 퇴색했지만 완성 당시 지붕의 흰 타일과 함께 전체가 백색이었다고 한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베란다의 철재난간도 비대칭의 조화처럼 빛을 발한다. 가우디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파격이다. 물보라 이는 바다 같기도 하고 꿀벌들이 드나드는 벌집 같기도 한 외벽의 모습이 어린아이들의 율동처럼 느껴지거나 마치 7언 율시의 한시를 읽는 느낌도 든다고나 할까. 오전에 둘러보고 오후에 되돌아봐도, 저녁 무렵 불빛에 비춰 봐도 천태만상 제각각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





3. 구엘공원

“나는 꽃, 포도나무, 올리브나무들로 둘러싸인 곳에서 닭울음소리, 새들의 지저귐, 곤충들의 날갯소리를 들으며 프라데스산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의 영원한 스승인 자연의 순수함을 통해 상쾌한 이미지를 얻는다.”

가우디 건축 모태가 무엇인지 느껴지는 말이다. 곳곳에서 파도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그가 지중해를 보고 여러 가지 사물의 모습을 관찰했기 때문이다. 사물을 관찰하는 가운데 참된 예술을 끄집어 낸 가우디는 순수를 추구하는 자연인이었을 것이다. 

가우디 순수성을 캐내 그의 천재성을 세상에 알린 스승이자 친구가 바로 가우디보다 6살 위인 에우세비오 구엘 남작(Eusebi Guel 1846~1918)이다.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은 심지어 자신의 저택을 지을 때는 자금에 구애받지 말고 완성하라는 절대적 신임을 보낸다. 아치형 천장과 장식으로 가득 찬 독창적인 방, 조각타일로 만들어진 굴뚝지붕은 당시 건축술의 기본 틀을 바꿔버렸다고 한다.

구엘의 별장과 저택을 차례로 지은 가우디는 1900년 바르셀로나 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페라다 산기슭에 정원도시를 건설해 나간다. 공원 입구 계단 중앙에는 지하수의 수호신 퓨톤이 네 발로 턱하니 버티고 신전출입을 지키고 있다.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 활용했다고 하는 형형색색의 모자이크 타일은 아랍풍의 느낌을 준다. 계단을 올라서면 86개의 도리스식 기둥이 있는 다주실이다. 그리스극장이라는 중앙광장의 반을 이 원기둥들이 떠받치고 있다.

떡갈나무, 야자나무, 로즈마리, 등나무 등이 건물과 엮여 전체적으로 주위 자연과 잘 조화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밑에서 보면 도리스식 신전, 중앙광장, 산책로, 돌로 쌓은 돌기둥집 등 크게 4~5층으로 나눠볼 수도 있다. 타일벤치에 손을 짚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의 집을 모델로 만들었다는 물결모양의 집이 내려다보이고 고개를 들면 바르셀로나 시가지와 지중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엘 공원을 보면 건축이 예술이라고 강변한 가우디를 엿볼 수 있다. 깨뜨린 형형색색의 타일로 더덕더덕 아무렇게나 붙여 놓은 듯하지만 조화롭고 아름답다는 인상을 받는다. 다양한 색체로 활력 넘치는 창조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게 가우디답다. 더구나 이곳을 찾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타일벤치에 앉아 책을 보거나 삼삼오오 얘기하는 모습은 이 도시가 예술의 도시임을 의심치 않게 된다. 


4.카사 바트요 

모자이크 장식의 외벽이 선명한 색깔로 빛나는 카사 바트요는 가우디가 1904년 돈 호세 바트요 카사노바스 집을 개축한 것이다. 일렁이는 파도처럼 물결모양의 표면을 만들어 그 위에 여러 가지 색유리 파편과 둥근 채색 타일을 입혔다. 가면 쓴 발코니는 채색유리와 조화를 이루고 아침 햇살이나 저녁 불빛을 받으면 아름다운 무지개 색을 보여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바트요의 손녀가 살고 있는 이 집은 각 층을 구경하는 요금이 달라 마치 빌딩을 올려다본 시골청년이 서울 사기꾼에게 빌딩 층수만큼 값을 지불했다는 우스갯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그라시아 거리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몇 블록 떨어져 있는 카사 밀라와 함께 가우디의 건축 양식을 대조해볼 수 있다. 참고로 그라시아 거리에는 루이비통, 샤넬, 아르마니 등 명품 가게가 즐비해 쇼핑족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몬세라트>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축에 영감을 준 회백색 바위산-

‘톱으로 자른 산’이라는 뜻의 몬세라트(Montserrat). 신앙심이 깊고 자연을 사랑했던 가우디는 바르셀로나 시에서 불과 6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이곳에 자주 들렀다고 한다. 그는 이곳 수도원에서 기도를 한 후 800만 년 전 지각 변동으로 생긴 6만 봉의 석봉을 보며 경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코끼리바위, 가족바위, 물개바위 등 서는 위치마다 형형색색 변하는 용암 산을 보고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구상했는지도 모른다.

몬세라트로 가는 길은 험하다. 가파른 언덕길을 간신히 오르는 버스가 위태로워 보인다. 창밖을 보면, 은은하게 보여준 산의 윤곽들이 바람을 안은 구름들로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다. 신선이 나올 법하다. 길도 없고 나무도 없이 오직 산꼭대기 기도원만이 보일 뿐이다. 정확하게 산 중턱에 오르면, 버스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평지가 나온다. 이곳에 11세기 세워진 베네딕트회 수도원이 있다. 성모 마리아 신앙의 성지로서 카탈루냐 사람들의 종교적 터전이 되어 왔다고 한다. 1811년 나폴레옹 전쟁으로 파괴되어 지금의 건물은 19~20세기에 다시 재건한 것이다.

푸니쿨라(밧줄케이블카)를 타고 10여분을 더 올라가면 바위산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가 나온다. 고도 1234m의 기이한 회백색 바위산을 바라보면 갑자기 호연지기가 생긴다. 오전에 올랐다면 조금은 서둘러야 한다. 정확하게 오후 1시가 되면 성당의 종소리가 기도시간을 알린다. 에스콜라니아(Escolania) 소년합창단 50여명이 맑은 소프라노로 합창을 한다. 늦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벼 서서 신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성당 내에는 검은 마리아상이 있고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봤던 눈동자도 다시 볼 수 있다. 아무리 위치를 바꿔 봐도 하염없이 나를 주시하여 ‘신비의 눈동자’라고 한다.

<Info>

1.교통편

스페인으로 가는 직항노선은 없다. 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에서 이베리아 항공으로 갈아타고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빌바오, 말라가, 세비아, 발렌시아 등 스페인 내 각 도시로 들어가야 한다. 피레네 산맥이 막혀 있지만 최근에는 파리-바르셀로나 급행열차 노선공사가 한창이다. 완공되면 저녁에 파리를 출발해 아침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할 수 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약 12Km. 카탈루냐 광장까지 공항버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약 15분 소요. 버스는 시내를 운행하는 TMB노선이 있고 지하철 이용도 권할만하다. 

 

2. 시 소개

스페인 제2의 도시 바르셀로나는 이베리아 반도의 북동부 지중해의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으로 온난한 기후조건을 갖고 있다. 고딕지구로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구시가지와 현대 빌딩으로 들어차 있는 신시가지로 구분된다. 물가가 비싼 부유한 도시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도시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마라톤 영웅 황영조 선수가 몬주익 언덕을 내치달아 세계를 제패했던 기억을 남기고자 시정부와 삼성그룹이 주경기장 맞은편에 기념석을 설치했는데 황선수의 모습 그대로 흉내 내며 사진을 찍으려는 한국인들로 붐벼 관광 명소가 됐다.

스페인하면 떠오르는 플라멩코. 인도에 기원을 두고 유럽을 유랑하던 집시들이 15~6세기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역에 유입되면서 시작된 서민들의 문화다. 집시의 애환과 사랑 등 일상적인 일을 주제로 노래하며 손뼉과 구두소리로 효과를 살려낸다. 우리네 창 정서를 조금 격렬하게 표현했다고 할까. 바르셀로나는 관광지이기 때문에 미리 예매하지 않으면 티켓도 없을 뿐 아니라 늦은 예매는 십중팔구 귀퉁이 좌석으로 온전히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예매는 필수.  

바르셀로나는 또한‘예술의 도시’다. 화가인 피카소, 달리, 건축가 가우디, 성악가 호세 카레라스, 아그네스 발차 등이 카탈루냐 출신이거나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특히 가우디는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가우디>

1852년 스페인 카탈루냐 레우스 시에서 가난한 구리세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가우디는 필생의 후원자였던 구엘 남작을 만난 후 자신의 창의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다. 31세에 필생의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에 작업에 착수해서 죽을 때까지 줄기차게 매달린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고 때때로 행색이 남루해서 걸인으로 착각한 행인들이 동전을 주었다는 일화도 있다. 뭔가 골똘하게 생각하다가 전차에 치여 1926년 사망했다. 사망 당시에도 한동안 행려병자로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연보-

1852년 지중해 연안 카탈루냐 레우스 시 출생

1869년 바르셀로나대 이공학부 입학

1874년 시립 건축학교 입학

1877년 최하위 성적으로 졸업

1878년 건축사 자격증 취득

1878년 구엘 만남

1883년 사그라다 파밀리에 성당 총감독 임명

1887년 구엘별장

1898년 카사 칼베트 건축

1900년 바르셀로나 최우수 건축상 수상

1904년 카사 바트요 복원 시작

1906년 카사 밀라 작업

1914년 구엘공원 건축

1918년 구엘 사망(1848~1918)

1926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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