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홈연합 블로그 홈블로그홈  l 로그인
색다른 Tour里
http://blog.yonhapnews.co.kr/1990030/
[기자세상] 조금 색다른 여행정보
이전달 2014 10 다음달 25 토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카테고리
최근포스트
최근코멘트
즐겨찾기
최근방문자
포스트 : 40
코멘트 : 91
트랙백 : 28432
방명록 : 40
방문자 : 496512
오늘 : 258
RSS구독 RSS 2.0 (?)
Comment RSS 2.0
가우디 건축투어 2006.03.23 06:00:00

    “나에게 점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슬프게도 내 손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완성시키지 못할 것이다. 뒤를 이어서 완성시킬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장엄한 건축물로 탄생하리라. 시대와 함께 유능한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남기고 사라져갔다. 그렇게 해서 아름다움은 빛을 발한다.”-안토니오 가우디- 
(‘가우디 공간의 환상’ 발췌)                              

<바르셀로나의 티볼리>

나무와 인사하고 기린, 코끼리와 얘기하며 회전풍차를 타고 하늘을 난 후 아이스크림을 물고 놀이공원을 나선 어린아이처럼, 팅커벨 날개 짓을 따라 피터팬이 되어 환상의 동산으로 날아간다. 지중해의 훈훈한 바람을 가르며 바르셀로나 도심 곳곳을 기기묘묘 디즈니랜드로 꾸민 신은 이제 전 세계의 관광객들을 이곳 동심의 세계로 인도한다. 과연 이 신은 누굴까? 카탈루냐 사람들은 말한다. 죽은 가우디가 바르셀로나를 먹여 살린다고. 

천재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 130여 년 전 카탈루냐의 자긍심을 갖고 플라멩코를 추듯 정열적으로 창작활동을 편 가우디는 젊은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신이 인간을 창조하듯 자연에 순종하며 많은 작품들을 쏟아냈다. 달팽이, 버섯, 구름, 나뭇잎 등 자연에서 보고 느낀 그대로를 사실적이면서도 부드러운 곡선과 독특한 디자인으로 건축에 반영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환상의 날개를 펼치게 했다.

자연에 순응하고 미래주택의 꿈을 제시한 구엘저택과 공원, 카사 밀라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보호받고 있다. 한 작가의 작품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두 개 이상 등재된 기록도 전무한 일이다. 가우디의 건축물을 빼고는 바르셀로나를 논할 수 없다. 그의 건축 작품 12개 중 바르셀로나 시와 인근에 9개의 건축물이 집중돼 있는 것만 봐도 짐작할 일이다.

1992년 황영조 선수가 몬주익 언덕을 질주해 마라톤 우승을 차지한 곳으로도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온 바르셀로나. 지중해성 기후의 온화한 느낌으로, 때론 투우 경기와  플라멩코를 추듯 정열적으로 일생을 살다간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발자취를 따라 카탈루냐 사람들의 정취를 느끼며 예술 도시를 여행해보자. 디자인 컨셉에 대한 변화를 느껴보는 것도 바르셀로나 여행의 커다란 재미가 될 것이다.


<가우디 투어>
 

1.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la 성가족성당)

 가우디의 천재성과 신앙심을 느끼게 한 건축물이 ‘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이다. 거대한 옥수수 4개가 하늘로 치솟는 듯한 파격적인 모양의 건축물. 1882년 착공에 들어가 120년이 넘도록 완공을 못하고 지금도 기중기가 계속 움직이고 있다. 이 때문에 이곳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원했던 관광객은 실망감을 금치 못할 것이다. 앞으로도 몇 년이 더 지나야 완성된 역사물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애초 가우디는 예수의 탄생, 수난, 영광이라는 정면 장식과 이 정면 장식에 12제자를 상징하는 12개의 탑을 세우고 중앙에 예수를 상징하는 거대한 탑을 계획했다. 아쉽게도 지금 관광객들은 예수의 탄생과 수난의 정면 장식만을 보게 되며, 12개의 종탑 중 완성된 8개의 종탑을 올라볼 수 있다. 엘리베이터로도 올라 갈 수 있지만 계단을 통해 다리품을 판다면 이곳의 오묘한 구조를 엿볼 수 있고 또한 가우디가 얼마나 신에게 다가서려 했는지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우디 자신도 신의 집으로서 기도와 명상을 위해, 종교를 올바르게 볼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인간을 종교적 감정의 표현과 연결시키는 모체로 건설했다고 말했다.

성당의 외벽 선은 모두가 곡선형태며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구조역학까지 고려했고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신의 숭배를 생동감 넘치는 돌조각들로 표현해 관광객의 시선을 잡을 것이다. 예수 일생의 장면 뒤 보드판에 새겨진 숫자는 예수의 나이 33을 나타내는데 이리 저리 모두 합해도 33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가우디는 건축물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기능은 유지하되 여기에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할 요소를 가미해 마치 살아 숨쉬고 움직이는 듯한 성당을 창조해 냈다.

성당의 앞뒷면은 변화무쌍한 양면성을 내보인다. 용암이 녹아 흐르다 굳은 것 같은 정면은 유리채색의 아름다움을 살짝 내비치다가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 눈깔사탕을 만들어 하늘로 내질러 보낸다. 반대편으로 돌아서면 깔끔한 네오고딕양식으로 신의 모습을 인간에게 알리고자 구도자의 심정으로 성서의 도식을 의미 있게 새겨 놓는 등  성화를 3차원의 입체 건축물로 재창조해 놓았다.   

천재성이랄까 파격이라고 해야 할까. 이곳이 왜 성가족 성당인지 다시 한번 기억해 내야 한다. 신앙심이 돈독한 관광객이라면 신을 가까이서 영접하려한 가우디를 더욱 칭송할 것이다. 지하에는 가우디가 응용한 자연, 처음 건설에 착수한 모습, 자신의 스케치 등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여전히 내부에서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2.카사 밀라(Casa Mila)

카사 밀라는 1905년 가우디의 설계로 5년에 걸쳐 완성된 저택이다. 바르셀로나 시민들이 돌집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사실 지금도 부유층이 살고 있는 고급 맨션으로서 외관이 인상적이다. 벽면의 소재가 석회암인 것도 특이하다. 지금은 약간 퇴색했지만 완성 당시 지붕의 흰 타일과 함께 전체가 백색이었다고 한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베란다의 철재난간도 비대칭의 조화처럼 빛을 발한다. 가우디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파격이다. 물보라 이는 바다 같기도 하고 꿀벌들이 드나드는 벌집 같기도 한 외벽의 모습이 어린아이들의 율동처럼 느껴지거나 마치 7언 율시의 한시를 읽는 느낌도 든다고나 할까. 오전에 둘러보고 오후에 되돌아봐도, 저녁 무렵 불빛에 비춰 봐도 천태만상 제각각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





3. 구엘공원

“나는 꽃, 포도나무, 올리브나무들로 둘러싸인 곳에서 닭울음소리, 새들의 지저귐, 곤충들의 날갯소리를 들으며 프라데스산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의 영원한 스승인 자연의 순수함을 통해 상쾌한 이미지를 얻는다.”

가우디 건축 모태가 무엇인지 느껴지는 말이다. 곳곳에서 파도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그가 지중해를 보고 여러 가지 사물의 모습을 관찰했기 때문이다. 사물을 관찰하는 가운데 참된 예술을 끄집어 낸 가우디는 순수를 추구하는 자연인이었을 것이다. 

가우디 순수성을 캐내 그의 천재성을 세상에 알린 스승이자 친구가 바로 가우디보다 6살 위인 에우세비오 구엘 남작(Eusebi Guel 1846~1918)이다.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은 심지어 자신의 저택을 지을 때는 자금에 구애받지 말고 완성하라는 절대적 신임을 보낸다. 아치형 천장과 장식으로 가득 찬 독창적인 방, 조각타일로 만들어진 굴뚝지붕은 당시 건축술의 기본 틀을 바꿔버렸다고 한다.

구엘의 별장과 저택을 차례로 지은 가우디는 1900년 바르셀로나 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페라다 산기슭에 정원도시를 건설해 나간다. 공원 입구 계단 중앙에는 지하수의 수호신 퓨톤이 네 발로 턱하니 버티고 신전출입을 지키고 있다.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 활용했다고 하는 형형색색의 모자이크 타일은 아랍풍의 느낌을 준다. 계단을 올라서면 86개의 도리스식 기둥이 있는 다주실이다. 그리스극장이라는 중앙광장의 반을 이 원기둥들이 떠받치고 있다.

떡갈나무, 야자나무, 로즈마리, 등나무 등이 건물과 엮여 전체적으로 주위 자연과 잘 조화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밑에서 보면 도리스식 신전, 중앙광장, 산책로, 돌로 쌓은 돌기둥집 등 크게 4~5층으로 나눠볼 수도 있다. 타일벤치에 손을 짚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의 집을 모델로 만들었다는 물결모양의 집이 내려다보이고 고개를 들면 바르셀로나 시가지와 지중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엘 공원을 보면 건축이 예술이라고 강변한 가우디를 엿볼 수 있다. 깨뜨린 형형색색의 타일로 더덕더덕 아무렇게나 붙여 놓은 듯하지만 조화롭고 아름답다는 인상을 받는다. 다양한 색체로 활력 넘치는 창조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게 가우디답다. 더구나 이곳을 찾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타일벤치에 앉아 책을 보거나 삼삼오오 얘기하는 모습은 이 도시가 예술의 도시임을 의심치 않게 된다. 


4.카사 바트요 

모자이크 장식의 외벽이 선명한 색깔로 빛나는 카사 바트요는 가우디가 1904년 돈 호세 바트요 카사노바스 집을 개축한 것이다. 일렁이는 파도처럼 물결모양의 표면을 만들어 그 위에 여러 가지 색유리 파편과 둥근 채색 타일을 입혔다. 가면 쓴 발코니는 채색유리와 조화를 이루고 아침 햇살이나 저녁 불빛을 받으면 아름다운 무지개 색을 보여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바트요의 손녀가 살고 있는 이 집은 각 층을 구경하는 요금이 달라 마치 빌딩을 올려다본 시골청년이 서울 사기꾼에게 빌딩 층수만큼 값을 지불했다는 우스갯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그라시아 거리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몇 블록 떨어져 있는 카사 밀라와 함께 가우디의 건축 양식을 대조해볼 수 있다. 참고로 그라시아 거리에는 루이비통, 샤넬, 아르마니 등 명품 가게가 즐비해 쇼핑족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몬세라트>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축에 영감을 준 회백색 바위산-

‘톱으로 자른 산’이라는 뜻의 몬세라트(Montserrat). 신앙심이 깊고 자연을 사랑했던 가우디는 바르셀로나 시에서 불과 6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이곳에 자주 들렀다고 한다. 그는 이곳 수도원에서 기도를 한 후 800만 년 전 지각 변동으로 생긴 6만 봉의 석봉을 보며 경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코끼리바위, 가족바위, 물개바위 등 서는 위치마다 형형색색 변하는 용암 산을 보고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구상했는지도 모른다.

몬세라트로 가는 길은 험하다. 가파른 언덕길을 간신히 오르는 버스가 위태로워 보인다. 창밖을 보면, 은은하게 보여준 산의 윤곽들이 바람을 안은 구름들로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다. 신선이 나올 법하다. 길도 없고 나무도 없이 오직 산꼭대기 기도원만이 보일 뿐이다. 정확하게 산 중턱에 오르면, 버스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평지가 나온다. 이곳에 11세기 세워진 베네딕트회 수도원이 있다. 성모 마리아 신앙의 성지로서 카탈루냐 사람들의 종교적 터전이 되어 왔다고 한다. 1811년 나폴레옹 전쟁으로 파괴되어 지금의 건물은 19~20세기에 다시 재건한 것이다.

푸니쿨라(밧줄케이블카)를 타고 10여분을 더 올라가면 바위산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가 나온다. 고도 1234m의 기이한 회백색 바위산을 바라보면 갑자기 호연지기가 생긴다. 오전에 올랐다면 조금은 서둘러야 한다. 정확하게 오후 1시가 되면 성당의 종소리가 기도시간을 알린다. 에스콜라니아(Escolania) 소년합창단 50여명이 맑은 소프라노로 합창을 한다. 늦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벼 서서 신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성당 내에는 검은 마리아상이 있고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봤던 눈동자도 다시 볼 수 있다. 아무리 위치를 바꿔 봐도 하염없이 나를 주시하여 ‘신비의 눈동자’라고 한다.

<Info>

1.교통편

스페인으로 가는 직항노선은 없다. 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에서 이베리아 항공으로 갈아타고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빌바오, 말라가, 세비아, 발렌시아 등 스페인 내 각 도시로 들어가야 한다. 피레네 산맥이 막혀 있지만 최근에는 파리-바르셀로나 급행열차 노선공사가 한창이다. 완공되면 저녁에 파리를 출발해 아침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할 수 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약 12Km. 카탈루냐 광장까지 공항버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약 15분 소요. 버스는 시내를 운행하는 TMB노선이 있고 지하철 이용도 권할만하다. 

 

2. 시 소개

스페인 제2의 도시 바르셀로나는 이베리아 반도의 북동부 지중해의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으로 온난한 기후조건을 갖고 있다. 고딕지구로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구시가지와 현대 빌딩으로 들어차 있는 신시가지로 구분된다. 물가가 비싼 부유한 도시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도시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마라톤 영웅 황영조 선수가 몬주익 언덕을 내치달아 세계를 제패했던 기억을 남기고자 시정부와 삼성그룹이 주경기장 맞은편에 기념석을 설치했는데 황선수의 모습 그대로 흉내 내며 사진을 찍으려는 한국인들로 붐벼 관광 명소가 됐다.

스페인하면 떠오르는 플라멩코. 인도에 기원을 두고 유럽을 유랑하던 집시들이 15~6세기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역에 유입되면서 시작된 서민들의 문화다. 집시의 애환과 사랑 등 일상적인 일을 주제로 노래하며 손뼉과 구두소리로 효과를 살려낸다. 우리네 창 정서를 조금 격렬하게 표현했다고 할까. 바르셀로나는 관광지이기 때문에 미리 예매하지 않으면 티켓도 없을 뿐 아니라 늦은 예매는 십중팔구 귀퉁이 좌석으로 온전히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예매는 필수.  

바르셀로나는 또한‘예술의 도시’다. 화가인 피카소, 달리, 건축가 가우디, 성악가 호세 카레라스, 아그네스 발차 등이 카탈루냐 출신이거나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특히 가우디는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가우디>

1852년 스페인 카탈루냐 레우스 시에서 가난한 구리세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가우디는 필생의 후원자였던 구엘 남작을 만난 후 자신의 창의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다. 31세에 필생의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에 작업에 착수해서 죽을 때까지 줄기차게 매달린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고 때때로 행색이 남루해서 걸인으로 착각한 행인들이 동전을 주었다는 일화도 있다. 뭔가 골똘하게 생각하다가 전차에 치여 1926년 사망했다. 사망 당시에도 한동안 행려병자로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연보-

1852년 지중해 연안 카탈루냐 레우스 시 출생

1869년 바르셀로나대 이공학부 입학

1874년 시립 건축학교 입학

1877년 최하위 성적으로 졸업

1878년 건축사 자격증 취득

1878년 구엘 만남

1883년 사그라다 파밀리에 성당 총감독 임명

1887년 구엘별장

1898년 카사 칼베트 건축

1900년 바르셀로나 최우수 건축상 수상

1904년 카사 바트요 복원 시작

1906년 카사 밀라 작업

1914년 구엘공원 건축

1918년 구엘 사망(1848~1918)

1926년 사망


코멘트(1)     트랙백(34)
이건희회장 귀국작전 2006.01.07 08:27:12

 이건희회장의 전용기 보잉 737제트기가 6일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연합 서명곤기자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입국이 초미의 관심사다.

온다온다 하면서 아직 오지 않는 이회장을 보려고 애를 태우며 기다리는 사람은 두 부류.   검찰수사와 개인 신상, 가정사까지도 시시콜콜 궁금해서 오는 걸 꼭 보고야 말겠다는 기자들과 몸도 심신도 지친 회장님 심기라도 다칠까 노심초사하며 기자 접근을 막아보겠다는 삼성맨들이 그들. 이들이 작전을 방불케 하는 연막을 펼치며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회장에게야 검찰수사 그까이거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법무팀 소속 변호사만도 100명이 훌쩍 넘으니 뭐 크게 걱정할 일도 아니지. 건강설, 가정사도 이미 알려진 일, 아무리 공인이라도 프라이버시는 천부권 아닌가. 기자들도 지킬 건 지키겠지. 그런데 왜 이리도 보고 싶어하는 기자들을 피할까. 구태여 피할 일도 아닌데...

피하면 피할수록 찾아보려는 의욕이 커지는 게 사람 마음인지라 기자들에게는 큰 건수가 하나 생긴 것이다. 언론사들이 갖가지 취재대책을 세우고 연합 사진부도 예외가 아니다. 매일 대책회의 주 의제 중 하나가 됐다. 피하려고만 하는 황우석, 유시민 찾기와 함께 이건희도명단에 오른 것. 전용기 두 대에다 자금과 정보까지 거머쥔 삼성으로서는 이회장을 투명인간으로 만드는 일쯤이야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한밤중에 회장이 내리는 곳에 비슷한 승용차 한 30대만 풀어도 이회장 얼굴보기는 만만치 않는 일. 문제는 왜 피하냐는 것. 누구든 당당하면 좋겠다. 피하는 게 능사는 아니지 않는가.

서울지방항공청 승인을 통해 ‘보잉737로 7일 새벽 2시20분 인천공항 입국’설 확인. 새벽  인천공항이라. 그런데 갑자기 15시50분 김포공항 도착설로 바뀐다. 부랴부랴 현장으로 출동. 역시나, 이회장은 없었다. 5백억원짜리 6년생 ‘글로벌 익스프레스’ 비즈니스 전용기는 승무원들만 내리고 더 이상 인기척이 없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3년생 보잉 737제트기? 일본 나리타공항에 대기 중인 소위 이건희 전용기는 11일 오후 11시 40분 인천공항 승인을 받아둔 상태.

삼성맨들이 애쓰는 건 알겠지만 피한다고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맘고생 몸고생이 심한 64세의 이회장에게 구태여 피할 필요 없이 당당하게 입국하도록 직언해 보는 것도 언론의 관심 강도를 줄이는 한 방법이라는 것 또한 알아야 할 것이다. IOC위원이니 공항 귀빈실을 통해 11일은 당당하게 입국하길 의견 개진해본다.

코멘트(0)     트랙백(38)
잘못 온 편지 2005.12.22 23:27:53


며칠 전 한 통의 편지가 안방 경대에 놓여 있었고

아내가 읽어 보라며 전해준 쪽지는 우리 부부에게 보낸 건 아니었다.

‘산타 할아버지께’ 로 시작된 쪽지에는

요즘 초딩들이 가장 갖고 싶어한다는 핸드폰을 사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산타 할아버지께

산타 할아버지, 저에게 휴대폰을 사 주셔요.(꽤 좋은 걸로...)

말 잘 듣고 착한 일을 할게요.

부탁드려요.

전 꼭 가지고 싶어요.

-주영 올림-

5학년 초딩인 큰아이는

자기반 아이들 모두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고 과장하며 불만을 늘어놨다.

더구나 크리스마스트리에다 문제의 편지를 끼워놨는데

이틀이 지나도록 아무런 반응이 없었단다. 

크리스마스는 다가오는데

산타로부터 답변도 없고 선물 줄 조짐도 없자 슬그머니 안방에다 놓아두었던 것.

아직도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는다고 강변하면서도

아빠엄마 방에다 쪽지를 놓아둔 이유가 뭘까.

이번 크리스마스 때 과연 나는 마음씨 좋은 산타가 돼야 하나 말아야 하나. 

코멘트(1)     트랙백(34)
천민에서 왕으로 2005.12.18 22:55:19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이곳은 불가사의한 땅이다. 4억 8천이 넘는다는 다양한 신만큼이나 불가해한 나라, 인도는 11억 명의 인적 자원, IT강국의 이미지와 카스트와 가난, 불결한 나라로 각인되는 극과 극을 달리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섣부른 고정관념을 버리고 힌두인과 동화되어 그들처럼 행동하려는 고행을 각오하고 떠나야만 인도란 땅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편안하게 여행을 다녀올라치면 그곳은 그저 불결하고 미개한, 믿지 못할 가난한 나라로밖에 보이지 않으리라.

인도 북쪽 귀퉁이에서 2년 정도 머물다 간 위대한 알렉산더도, 힌두를 죽이고 이슬람을 심으려 한 칭기즈칸의 후예들도 결국은 힌두사상에 흡수되고 동화되어 버렸다. 예수도 부처도 모두 힌두 신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이는 나라, 인도. 수천 년을 이어온 카스트제도가 아직도 엄연히 존재하는 이 나라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겨우 8일간, 그것도 일부에 지나지 않는 델리, 자이푸르, 아그라를 보고 인도를 얘기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는 일이다. 학창시절 좋아했던 헤르만 헤세가 정작 본토는 밟아보지도 못하고 인도 여행기를 썼다고 하니 조금은 만용이 생긴다.

일단 인도에 가면 아직도 곳곳에 카스트가 살아 있음에 전율한다. 그리고 곧바로 신분상 불가촉천민으로 전락함에 씁쓸해 할 것이다. 우스갯소리지만 엄연한 신분제 사회에서 브라만도, 크샤트리아도, 바이샤도, 수드라에도 못 끼면 사실 청소나 도살만 안 할 뿐이지 불가촉천민이 됨은 당연지사. (참고로 인도는 아직도 인구의 15%나 차지하는 하리잔(Harijan) 또는 달리트(Dalit)라는 가장 밑바닥 천민이 반인권적 폐해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인도 여행기를 쓰려고 했다가 맘을 바꾸었다. 일주일 주마간산으로는 여행기 명함 내밀기도 부끄러울 뿐 아니라 내 블로그 제목(색다른 투어리)에도 어울릴 수 있도록, 인도에 닿으면 곧바로 천민의 신분으로 전락하는 여행객들을 구원할 방법을 소개하는 것이 좀 더 사명감이 있겠다 싶다.

수도 델리에서 자동차로 4시간 정도 자이푸르로 향하면 자이푸르 40Km 못 미처 라자스탄의 소왕국 사모드 궁궐이 나타난다. 호텔로 개조한 이곳 궁궐에서의 하룻밤은 여러분을 단번에 천민 소속에서 왕의 신분으로 변모시킨다. 전쟁이 잦았던 이곳은 궁궐이라기보다는 요새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사모드 마을을 지나면 곧바로 궁궐이 나타나는데 입구에 들어서면 사방에서 화살촉이 쏟아질 것 같은 묘한 기운에 식은땀이 흐른다. 안심하시라. 15년이 훨씬 지나게 호텔로 개조되었으니 전사들은 없을 것이다. 다만 황금색 터번을 두른 멋진 라자스탄의 수문장이  왕처럼 여러분을 맞이할 것이다.

마당과 계단에는 싱싱한 꽃잎으로 주단을 깔아놓고 팡파르를 울려 왕의 귀환을 알린다. 각국에서 모여든 왕들을 영접하느라 시종들의 몸놀림이 분주하다. 불가촉천민임을 내색하지 마라. 허리를 뒤로 꺾고 고개를 빳빳이 세워 가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이 호텔 컨셉이 손님을 왕처럼 모시는 것. 양반문화가 몸에 밴 한국인들이야 곧바로 왕의 행세를 흉내 내지만 어디 서양인들 그러한가. 그저 감동에 젖어 들떠 행동하는 어설픈 왕 차림의 유럽 촌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최소한 6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하고 하룻밤 30만 원쯤 하는 비싼 숙박비에도 불구하고 전통을 중시하는 코쟁이들의 발길이 잦다.

대리석 돌기둥 문을 지나 미로처럼 얽힌 층층의 복도를 거닐라치면 자칫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황할 필요는 없다. 어느새 시종들이 나타나 길을 안내한다. 옛날 마하라자(위대한 왕)를 영접하는 방식으로 그야말로 최상의 서비스를 한다. 땡땡땡, 은은한 종소리가 울리면 식사시간이다. 산해진미, 진수성찬,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짜파티와 치킨, 머튼 필라우, 각종 커리, 탄도리 치킨에 킹 피셔 한잔. 식사를 마치고 나와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다보면 달빛에 반사된 보석알들이 대리석 속에서 빛을 낸다. 그 화려함에 눈이 부실 것이다.


수백발의 축포로 시작된 축제는 매일 밤 펼쳐진다. 아마도 사막을 여행하는 나그네의 여독을 풀어줄 요량이리라. 보석과 대리석으로 장식된 스위트룸, 달빛에 반사되어 출렁이는 연두색 수영장, 곳곳에서 펼쳐지는 라자스탄의 전통춤과 인형극 등 공연. 여러분은 금세 시간을 거슬러가 라지푸트의 마하라자가 된다.   

다음날 거대한 낙타를 타고 마을을 지나 사막을 가로질러 자이푸르로 향하다보면 어느새 뒤로 펼쳐졌던 저 멀리 궁궐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참조: http://www.samode.com/ 

코멘트(0)     트랙백(1121)
국회판씨름과 모래판씨름 2005.12.12 06:45:32

 9일 국회에서 사립학교법 개정 처리와 관련, 여야 의원들이 몸싸움하고 있는 모습(왼쪽)과 부산기장체육관에서 열린 2005 기장장사 씨름대회 결정전./김병만/이상학/조정호/정치/체육/ 2005/12/9 (서울=연합뉴스) 


12월 9일 오후, 민속씨름 부활을 위해 국가기간방송사 KBS가 기장 씨름대회를 생중계하는 시각, 한국의 CNN, YTN도 긴급뉴스로 국회 본회의장을 생중계했다. 한국 전통 민속경기가 씨름이어서일까. 샅바를 잡고 맞붙어 상대를 넘어뜨리는 겨루기 동작을 국회의원님들은 잘도 흉내 냈다. 룰도 심판도 없이 바지가 똥꼬에 끼는 것도 모르고 떼거리로 맞붙어 싸우는 국회판 씨름, 이젠 더이상 보고 싶지 않은 경기였다.

코멘트(1)     트랙백(123)
부시, 두루마기 벗어던졌나? 2005.11.28 06:00:00

 부시 미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 기념촬영 때 입은 한복 두루마기를 촬영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리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경쟁이라도 하듯 벗어던졌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하자 한국 언론도 일제히 이를 보도했다. 정말로 촬영이 끝나자마자 부시가 두루마기를 벗어던졌을까.

당시 호스트 프레스로서 다수의 취재인력을 투입한 연합뉴스 현장 기자들은 아무도 이를 보지 못했다. 부시가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일거수일투족 순간을 놓치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벗어던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이런 보도가 나왔을까. 당시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유추해보자면, 그날 오후 부산은 따뜻했고 보온까지 신경 써 만든 두루마기는 약간 더웠을 것이다. 나 역시 바닷바람에 추울 거라 생각해서 껴입은 가벼운 점퍼마저 더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정장에 두루마기까지 갖춰 입은 정상들 또한 조금은 더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실내에서 가볍게 두루마기를 벗었던 것이 와전되지 않았을까. 밖에서 돌아와 집안에 들어서면 우리도 일상 웃옷을 벗지 않는가.

따라서 부시가 김치를 멀리하고 한복을 벗어던졌다는 이번 보도내용은 결코 정확한 팩트는 아닌 듯하다. 상식선에서 생각해봐도, 세계가 주목한 잔치에 다녀와서 정성들여 올린 음식이 맛이 없고 선물이 맘에 안 들어 던져버렸다고 떠벌리고 다닐 리가 만무하지 않는가. 더구나 로라 부시는 권양숙 여사에게 우리 김치를 보고 관심 있게 물어보았다지 않았던가.



이 문제는 이쯤하고 이번에 취재하면서 미국이 많이 달라져 있음을 실감했다. 경호도 달랐고 정상에게 접근하기도 쉬웠다. 물론 부시가 이처럼 통 크고 자유롭게 부산을 활보할 수 있었던 것은 전국에서 동원된 3만여 명의 경찰병력으로 철저하게 일반인 접근을 통제하고, 그것도 부족해 2중 3중으로 검문검색을 강화한 것과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임무수행으로 정평이 나 있는 우리 청와대 경호를 믿고 인정한 때문이겠다 싶다. 과거 국제행사 때나 부시가 참석한 한국 행사 때 미국의 위세를 생각해보라.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한국에서 열리는 행사조차도 안하무인, 자기들 식으로 경호를 하고 의전을 하지 않았던가. 우리 경호관들이 약소국의 설움을 하소연하던 시절이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3년 전이었던가. 부시가 한국을 방문, 최전방 초소  올렛GP를 시찰했다. 미국 측, 한국 취재진에게 극비사항이라며 정확한 시간도 알려주지 않고 그저 한남동 모처에 새벽 5시에 집합하게 해 판문점 보니파스 캠프에다 오전 오후 두 나절을 꼬박 가둬놓더니 오후 늦은 참에 부시와 함께 도착한 백악관 수행기자들과 취재하게 했다. 우리는 하루 전에 오고 미국 기자들은 2분 전에 와서 똑같은 뉴스를 취재했던 것. 한국 측 POOL기자들 닭 쫒던 개 마냥 그저 면피성 취재를 하고 왔던 허탈한 기억이 아프게 다가온다.

작년에 주최 측 경호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출입하려던 부시 경호원이 칠레 측 경호원과 심한 몸싸움을 하자 부시가 뜯어말린 사건에서도 그들은 안하무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APEC 정상회의 경호는 우리 측이 주도적으로 관장했다. 부시의 최측근 경호원이 출입금지선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부시를 주시하던 행동을 보였고 만용을 부린 한 백악관 경호원은 우리 측 경호관에 의해 끌려 나가는 광경도 목격됐다.

자국의 논리로 세계를 보려 하는 미국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중심에 부시가 있다면 부시 또한 반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APEC 기간에 우리 취재진이 알려온 부시의 행동은 파격에 가까웠다. 서로 옷깃을 스치며 코앞에서 취재에 임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조금도 꿀리지 않고 당당하게 국제 행사를 꾸려가는 이른바 선진국형 운영 시스템뿐 아니라 IT강국의 면모 등 한국의 위상을 유감없이 발휘한 이번 APEC행사를 지켜보면서 기자를 떠나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 뿌듯한 일이었다.

코멘트(1)     트랙백(2)
공기업과 사기업의 차이 2005.11.15 06:48:21

(벡스코에서 열린 'APEC IT 전시회'에서 삼성전자 도우미가 와이브로폰을 선보이고 있다./황광모/APEC/IT/ 2005.11.14 (부산=연합뉴스)


부산에서는 지금 APEC회의가 열리고 있다. 국가간 경제협력을 위해 보이지 않은 외교전을 펼치고 있지만 사실 이번 APEC 컨솁을 뽑자면  IT KOREA를 뽐내는 'IT APEC'이다. 최대 시속 120㎞로 달리는 차 안에서도 전용 단말기나 휴대전화를 이용해 다자간 영상 전화와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를 21개국 정상에게 선보이는 것 등, 첨단 IT강국을 달린다는 자부심으로 한국인의 한사람으로서 가슴 벅찬 일이 아니겠는가.

국내 굴지의 삼성전자와 KT가 양대 축을 이루며 기술개발을 주도해온 ‘와이브로’, 전 세계에 신기술을 알려 IT 강국의 면목을 과시하는 매력 넘치는 아이템이다. 더구나 이 신기술과 APEC이라는 네임 벨루의 조화는 기업 입장에서도 수백억 광고효과를 짐작케 할 욕심날  기사다.

공기업인 KT 부스를 찾아 취재의사를 표명했다. 최고라고 뽐내며 인간성이 부족한 삼성보다는 아무래도 정감있는 기업 아닌가. IT 강국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알리고 싶기도 하고  기자 입장에서도 뉴스 가치가 커서 오버한 것.  헌데 취재 중 공기업과 사기업의 엄청난 차이를 느꼈다.

IT강국의 이미지를 심어주자는 제안에도 묵묵부답한 KT. 할 수 없이 삼성전자에 넌지시 취재를 의례했다. 그날 연합 전화에 불이 났다. 삼성전자, 물 불 가리지 않고 전화를 해댔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홍보효과 대단하지 않겠는가.  광고비 쓰지 않고 수백억 광고효과를 얻을 수 있는데 마다 할 일이 아니지. 결국 삼성전자 anycall 하드웨어에다 APEC로고가 새겨진 수백억짜리 홍보성 기사가 나가게 됐다.

국내 최고의 공기업과 사기업은 이렇게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거대 공기업 KT, 기술은 앞서가지만 구성원의 마인드는 한참이나 뒤쳐져 있었다.


코멘트(9)     트랙백(8)
디카 한번 사볼까? 2005.10.17 07:09:46

 

(콤팩트형 디카중 최고화소인 900만 화소대의 후지E900 ZOOM)

‘디카 하나 사려는데 어떤 게 좋아?’ 내게 많이 하는 질문이다. dslr 카메라를 사용하는 전문가들은 그저 답답하게만 느껴서 ‘멍텅구리’, ‘똑딱이’라고 부르는 콤팩트형 디카를 한국인 중 70%가 넘게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거의 없는 집이 없다시피 이제는 휴대 필수품이 된 디카, 하루가 다르게 발전을 거듭해서 1년 전 모델이라면 이미 구형이 돼버린 세상이다. 여기 소개하는 글은 어떤 제품을 사라기보다는 이런 저런 상식을 통해 새로 디카를 산다면 참조하는 팁 정도이다.

1.어느 회사제품 사야 하나?

올해 국내 콤팩트형 디카시장은 삼성이 30%에 육박하는 점유율로 탑을 달리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소니, 캐논, 올림푸스, 후지, 니콘 등이 2위 그룹을 형성하며 치열하게 경쟁하는 형국. 기능보다는 융합과 슬림형을 선호하는 한국인에게 어울리는 독특한 시장 점유율이다. 참고로 세계시장은 캐논과 소니가 선두그룹을 달리고 있고 그 뒤를 코닥, 올림푸스, 니콘, 후지가 뒤쫓고 있다. 캐논이 곧바로 한국직판 체제를 구축한다고 하고 삼성 또한 광학업체 펜탁스와의 제휴를 통해 dslr디카를 본격 양산하겠다고 하니 내년 이후 디카시장 경쟁은 더욱 뜨거워질 것 같다.

2.화소수 높은 게 좋은가?

당연한 얘기다. 화소 개수가 많으면 그만큼 이미지를 표현하는 점의 수가 많아 사진을 확대인화할 때 화질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300만 화소급 정도면 일반인이 쓰기에는 별 차이를 못 느낀다고 하지만 요즘처럼 고화소급 디카가 많은데 굳이 낮은 사양을 살 이유는 없다.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

3.디카의 생명은 렌즈다.(ccd도추가)

디카의 생명은 렌즈의 성능에 달렸다. 카메라 광학기술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이 렌즈를 뭘 사용했느냐가 중요하다. 콤팩트형 디카와 dslr 디카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요즘 멍텅구리 디카 선전할 때도 생소한 칼짜이즈를 썼느니, 슈나이더니, 등등 렌즈 장착 얘기를 한다. 멍텅구리 디카에서는 아직 저가형 렌즈를 사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진에 빠져 들다보면 뭔가 2% 부족해서 dslr 디카로 옮겨가는 것이다. 최근에는 렌즈성능과 초점거리, 조리개, 감도 등을 좀 더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하이렌드급 디카도 나오고 있다.

4.TIFF, RAW 지원하는 디카가 좋다

dslr 카메라에서만 지원되던 TIFF, RAW를 요즘은 멍텅구리 디카에서도 지원한다. JPEG 이외에도 tiff, raw파일 포맷 기능이 있는지 확인해라. 내 블로그 앞쪽에서 자세하게 다뤘듯이 RAWRGB(Red, Green, Blue)의 원색 채널당 12비트의 정보를 가지며 2의 12승  68,719,476,736 즉 약 700억 색상을 갖는다. JPG 8비트 포맷이 사용되는 것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풍부한 색상인가. 더구나 이미지 프로세싱을 할 때 필름 현상하는 묘미를 느낄 수 있어 사진의 참맛을 알게 해 준다. 이 기능은 사진을 좀 더 깊이 있게 접근하고 싶은 분에게 권하는 팁이다.

5.광학줌, 디지털줌?

‘광학 3배줌, 디지털 4배줌’ 이라고 써 있는데 렌즈를 통해 화질의 저하없이 피사체를 확대해서 보는 광학 줌이 몇 배인가가 중요하다. 단순하게 전자적으로 이미지만 키우는 디지털줌은 설령 그 기능이 10배라 하더라도 화질만 크게 떨어뜨릴 뿐 별 의미가 없다.

6.손떨림 방지기능 등

사진을 찍은 후 확인해보면 의외로 흔들린 사진이 많다. 총 쏠 때처럼 심호흡을 한 후 1초간 숨을 멈추고 셔터를 눌려도 2~3배 줌인해 찍은 경우는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꼭 필요한 기능이다. 또한 ISO 감도가 높은가, 렌즈의 밝기는 좋은가(f2.8 등 숫자가 낮은게 좋다) 등등을 꼼꼼하게 체크해 봐야한다.

최근 700만화소급 폰카도 등장했다. 끊임없는 융합기능으로 욕심날 물건이지만 카메라 기능만을 따진다면 가격에 비해 아직은 비싼 제품인 듯 하다. 더구나 지금 추세라면 내년에는 1000만화소급 고급형 콤팩트디카가 쏟아져 나올 것 같은데 소비자들이야 그저 행복할 일이 아닌가.


코멘트(1)     트랙백(8)
남자의 보복 2005.10.10 00:27:21

(전등사의 벌거숭이 여인상)
 

강화도 전등사에는 정교한 법당 장식 조각과 화려한 단청 빛깔을 안은 채 아름다운 풍광에 둘러싸여 화려한 건축술을 뽐내는 보물 178호 대웅전이 있다. 그런데 처마 끝을 보면 어떤 사찰에서도 본 적이 없는, 조금은 생뚱 맞는 조각상이 있다. 나녀상이다.

네 귀퉁이 처마 끝을 받치고 있는 벌거벗은 이 여인상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조금은 상스럽기까지 한 희한한 모습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다. 도저히 절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게 두 손으로 추녀 끝을 들어올리다가 힘들면 머리로 이는 모습으로 그렇게 400여 년의 시간을 힘겹고 처절하게 응징을 당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조선 광해군 13년인 1621년, 대웅전을 중건하던 대목수가 한 여인을 사랑해 벌어둔 노임을 모두 맡겼는데 공사가 끝날 무렵 마음이 변한 여인이 사랑을 배반하고 도망쳤단다. 상심한 목수는 나쁜 짓을 경고하고 죄를 씻게 하기 위해 추녀를 받치는 여인상을 조각했다는 것.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이상으로 목수의 묵은 감정이 서려 있는 것 같다. 사랑에 빠질 만큼 예쁜 여인이었을 텐데 원숭이처럼 묘사하지 않았나, 두 손도 모자라 처마를 머리로 이게 하고 아예 벌거숭이로까지 만들어버렸으니 말이다. 여자가 원한을 품으면 여름 한철 서리가 내린다던데  남자의 보복은 한철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억겁을 이어가게 하니 남자 잘못 만나면 평생 후회하는 게 아니라 자손대대 후회할 일이네 그려. 허~참.

코멘트(0)     트랙백(9090)
한국땅 세계문화유산 모두 보았는가? 2005.10.06 00:46:13

 (강화지석묘)
지난 일요일, 3일간의 연휴를 맞아 일산 집에서 가까운 강화도를 다녀왔다. 단군이 쌓은 제단에서부터 선사, 중세,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역사가 망라되어 있는 강화는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린다. 난 여러 번 갔지만 가족이 함께 간 건 이번이 처음이란다. 그랬었나. 게다가 그곳을 다녀와서야 비로소 한국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7군데를 모두 다녀오게 됐다.

한국에 있는 세계문화유산으로 가장 늦게(2000년) 지정된 강화.화순.고창 고인돌지구. 그까이것 바위덩이 하나 턱-하니 돌 위에 올려놓은 게 뭐 대단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을까. 헌데 도르래 하나 없던 시절, 오직 팬티차림에 맨손으로 수십 톤 암석을 움직였다고 생각해보라. 더구나 분포도를 보면 왜 늦게 지정했냐고 유네스코에 항의하고 싶을게다. 전 세계 총 6만여 기 중 우리나라에만 3만여 기의 고인돌이 존재한다고 한다. 세계의 절반이 이곳 한국에 있는데다 특히 강화 지석묘의 경우는 길이 7m에 무게 50톤이 넘는 거대석이어서 3000여 년 전 이 지역 족장 세력이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청동기시대 이곳의 발달사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가. 과연 고인돌 왕국이렸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은 137개국 812곳. 문화유산 628, 자연유산 160, 복합유산 24군데 중 한국, 특히 남한에만 7곳이 있고 종묘와 창덕궁, 수원화성, 강화 고인돌지구 등 수도권에만 4곳이 집중되어 있다. 석굴암과 불국사, 경주역사지구야 학창시절 수학여행 때 졸업했을 테고 서울과 수원은 지척에 있으니 해인사 장경판전, 고창.화순.강화 고인돌지구만 다녀오면 7곳 모두를 섭렵해보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안동하회마을, 설악산지구, 강진도요지, 공주무령왕릉, 보은삼년산성, DMZ 등 아직도 등판 차례를 기다리는 유산이 많다. 고구려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북한 또한 개성, 평양유적, 금강산 등 세계 최고의 유산들을 유네스코에 등판시킨다면 당장 내년부터라도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투어’ 테마여행도 가능할 것이다. 멋지지 않는가.

코멘트(0)     트랙백(7)
내 블로그 돈으로 환산하면? 2005.08.19 01:09:52

(10만 명 돌파 자축 케이크)

오늘까지 내 블로그를 다녀간 방문객 수가 10만 명을 넘어섰다. 생일까지 맞아 겹경사가 생긴 기분 좋은 날, 사랑하는 내 가족과 조촐하게 자축을 했다. 탑을 달리는 블로그 짱들에게야 뭐 세발의 피지만 이처럼 하찮은 일에서도 고마움을 알게 한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를 올린다. 그동안 누추한 내 집을 방문해주신 분들, 특히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벗들께 안부를 전한다.

그런데 문득 스치는 의문 하나. 이 정도 블로그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뭐 아직까지 환산해볼 기준치가 없으니 대충~ 인터넷 가게와 비교해보자. 우선 내 블로그는 인터넷 쇼핑몰이나 가게를 개설할 때 드는 입점비, 홈피제작비, 도메인 등록비 등 투자비용이 없고(왜? 하이카처럼 연합뉴스가 다 알아서 해주니까) 두 번째, 배너, 이메일, 오버츄어, 검색키워드 광고등 홍보비를 한 푼도 쓰지 않고도 연합홈피에 올라 방문객에게 쉽게 노출되는 등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 5개월 동안 30개의 포스트에 10만 명 정도가 다녀갔으니 1꼭지당 3300명 정도의 방문객이 생긴다. 여기다가 사이트를 찾는 방문객의 0.5~1%가 구매로까지 연결된다고 봐서 1꼭지에 대한 구매자는 33명, 즉 기사 1꼭지당 최소 5만원으로 잡아 5만원x33명=165만원. 총 30포스트이니 그동안 약 5000만원 매출을 올린 셈이 되는데 투자비용이 제로이니 매출이 곧 순이익이 되어 매달 1000만원의 돈을 번꼴이 된다. 인터넷에 가게를 차린  어엿한 사업가들 중 97%가 실패한다는 그 어려운 인터넷사업에서 매달 1000만원의 순이익을 내는 내 블로그는 3%의 성공그룹에 드는 걸까 마는 걸까.

코멘트(4)     트랙백(998)
홋카이도 한국과 가까울 뻔했다. 2005.08.18 05:19:27

 (3천년 전에 바닷물이 빠지면서 생긴 구시로습원, 2천여 종 동식물의 보고이다.)


홋카이도를 여행하다 만난 삼중TECH(주) 이형석 회장의 조크 섞인 한일 과거사를 들으면서, 과연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싶어 내용을 소개한다. 홋카이도가 일본보다는 한국과 훨씬 가까울 뻔했던 얘기다. 이 회장은 일본통이면서 푸라노의 아름다운 풍광에 반해 이곳을 자주 찾는 경제인이다. 일본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취재에 도움을 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15세기 일본 열도는 전쟁의 소용돌이로 혼란기에 접어든다. 전국시대 서막을 올린 것. 당시 동아시아는 명을 중심으로 조선과 일본 그리고 주변국들이 활발하게 국제관계를 형성한 시기(참조:1785년까지 오키나와와 홋카이도 등은 일본영토가 아니었다). 일본 혼슈 북단과 에조치(홋카이도의 옛 이름)를 지배한 안도오 일족은 전란중인 본토와의 불안한 외교보다는 명과 조선으로 눈을 돌려 선진문물을 받아들일 자세를 취한다. 1482년 에조치시마 왕은 한양에 조공사절을 파견한다. 이때 성리학을 이념의 토대로 삼던 조선은 왜인, 특히 일본 본토에서도 오랑캐로 업신여긴 에조치 사신을 문전박대한다. 조선의 양반님들, 미개한 아이누 족이라며 얼마나 업신여겼을까. 이리하야 굴러온 돌을 차버린 조선은 오히려 100여 년 뒤에 고스란히 그 피해를 받는다. 풍신수길이 임진왜란을 일으킬 때 바로 눈앞에 적을 두면서까지 본토를 비우고 머나먼 한반도를 찾아와 전쟁을 획책하는 우를 범하지는 못했을 테니 말이다.

만약 이 홋카이도 사신을 융숭하게 대접해서 외교관계를 돈독하게 했거나 쓰시마처럼 조공을 바치게 해서 조선을 형님이나 아버지 나라로 섬기게 했다면 지금쯤 이 광활한 옥토가 일본 땅에 붙어 있지 않고 우리가 제집 드나들듯 왕래하는 제2의 한국 땅이 되지 않았을까. 조금 비약한 야그였나. 


홋카이도 여행팁:

홋카이도 하면 영화 ‘러브레터’에서 눈으로 뒤덮인 오타루를 떠올리겠지만 곳곳이 특색을 지닌 사계가 있는 아름답고 광활한 땅이다. 삿포로, 오타루 외에도 중부의 후라노, 비에이의 아름다움과 자연이 살아 숨쉬는 광활한 구시로습원, 마슈 등은 드넓은 유럽의 산하를 여행하는 듯한 감동을 준다. 대한항공 직항편이 있어 편리하다.


코멘트(1)     트랙백(79)
일본의 폭탄주 역공격 2005.08.13 05:53:30

 

한국을 방문한 일본 친구들에게 폭탄주는 먹여봤어도 일본 본토에서 일본인으로부터 충성주를 권유받아 취해보기는 처음이었다. 삿포로에 도착하자 애초 약속했던 이가 몸이 아파 대타로 나온 코다 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히 수인사를 나누고 우리를 안내한 곳은 저녁식사를 겸할 수 있는 술집. 그런데 다소 왜소한 몸매에 조용하던 그가 술잔이 몇 순배 돌자 한국에서 배운 충성주 시범을 보이는 게 아닌가.

이마를 두 번이나 내리 찍어 성공한 서툰 솜씨지만 여유 있게 첫 잔을 쭈~욱 들이키더니 조금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이내 우리에게도 주문. 사실 일본인들은 우리처럼 원샷 문화가 아니다. 정종을 따듯하게 데워 조금씩 나눠 마시거나  술에 물을 타 묽게 마시는 게 일반적인데 한국의 술문화 충격으로 크게 깨달은(?) 코다 상이 최고의 접대정신으로 우리에게 권한 것이었다.

‘유붕이 자원방래하니 불역락호’라. 일본인이 이처럼 환대하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더구나 아무리 술 못하는 사람조차도 폭탄주 서너 잔은 기본인 한국 사람으로서의 자존심이 있지 않은가. 내 동료가  1년 전 수습 때 갈고 닦은 실력으로 원샷 투샷 러브샷...

위염이라며 엄살 부리던 나나 시니어라고 빼던 검도 7단의 시모무라 상마저 분위기에 휩쓸려 우리는 이내 오래전부터 사귄 친구처럼 가까워졌다. 

요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주님을 너무 영접하지는 말자고 다짐하며 떠났던 홋카이도 출장은 그렇게 술로 첫 단추가 끼워지면서 삿포로 맥주축제 때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취중 취재로 이어졌다.


코멘트(1)     트랙백(15)
평양 개고기 풀코스 2005.07.25 00:49:48

(평양단고기집)
오늘은 중복. 여름한철 기를 보하기 위해 특별히 날을 정해서 몸보신하는 나라로는 우리가 으뜸인 것 같다. 보양 음식 중 최고는 역시 개고기. 문화적(?)이라고 느끼는 서양인들이 개고기 식문화를 가지고 왈가왈부하기도 하지만 조금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개고기를 먹지 않던 나라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중국, 일본, 동남아, 폴리네시안 제도뿐만 아니라 유럽국가 곳곳에서도 과거의 개고기 시식 얘기를 심심찮게 들었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오늘 소개할 것은 평양 개고기 풀코스 요리. 우리가 찾은 곳은 ‘평양단고기집’.  양식코스처럼 부위별로 6~7가지 요리가 차례로 나오고 그것들을 소금소스, 핫소스 등 각각 다른 소스에 찍어 먹었다. 나중에 밥과 국이 대미를 장식하고 나서야 피니시. 뭐 한민족인 남과 북이 같은 식문화를 가진 것은 당연하니 특별하게 색다를 것도 없었던 것 같다. 안 먹고 가면 평생 후회한다는 안내원 동무의 성화에 넘어 온 여성 세 분과 한 테이블에 합석했는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접대여성들이 한 접시 두 접시 요리들을 들고 오니까 처음의 의욕적 도전 때와는 달리 젓가락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안 오면 손핼 것 같아 일단 오기는 했는데 막상 먹을 생각을 하니 오만가지 잡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날 우리 테이블의 남자들은 게걸스럽게 여성들 몫까지 깔끔히 해치웠다.


(코스별로 나온 평양단고기 요리, 요리명은 모른다.)

(단고기를 찍어 먹는 양념)


(코스 후 밥과 국, 냉면)


(함께 곁들인 단물과 대동강맥주, 평양소주)


코멘트(2)     트랙백(10)
춤추는 고래를 쫓아서 2005.07.22 01:21:49

(알래스카의 콜롬비아빙하관광도중 만난 고래쇼 장관)

춤추는 고래를 보았는가. 거대한 고래 한 쌍이 경쟁이라도 하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바다를 휘저으며 긴 꼬리로 물보라를 일으키는 광경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알래스카의 크루즈 빙하여행을 하다보면 신이 난 고래들이 현란한 쇼를 유감없이 펼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고래들은 이곳을 천국으로 생각하겠지? 

우리나라 동해안도 고래 수가 점점 늘어 고래천국이 됐다. 참돌고래, 흑범고래, 큰돌고래, 밍크고래 등 5천여 마리가 곳곳에서 떼거리 쇼를 보일 때는 장엄하기까지 한다. 울산, 포항, 동해시가 앞 다투어 고래도시 이미지로 관경할 수 있는 생태마을을 조성한다고 한다. 우리도 유람선을 타고 현란한 고래쇼를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겠지?  불법포획도 막고 관광객도 유치하고.


알래스카 여행팁:

내 블로그 제목처럼 색다른 여름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알래스카를 권하고 싶다. 1000평에 2센트짜리였던 헐값의 땅이 에스키모어인 ‘위대한 땅’처럼 금싸라기땅으로 변해 있는 알래스카, 6월에서 8월이 평균 기온 15도 내외의 여행하기 딱 좋은 여름에 해당된다. 때묻지 않은 지구 최후의 비경을 놓치지 말라. 대한항공 직항: 인천~앵커리지 8시간 소요, 복장은 가을잠바 차림.

1.빙하관광-발디즈 콜롬비아빙하관광,  위디어 26빙하관광  4~5시간소요. 빙하위스키는 꼭 마시길
 

(알래스카는 10만개의 빙하가 있다. 사진은 콜롬비아빙하)
2 매킨리산 등정-타키트나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북미최고봉 매킨리 정상에 오른다. 고상돈 추모비가 비행장 근처에 있다.

(매킨리 경비행기 관광)

3.키나이강 연어낚시-연어낚시도 하고 이곳 키나이 리버밴드 리조트 사장 조경득씨와 친구도 되기. (조는 초딩때 이민, 워싱턴대를 졸업한 후 아버지가 가꾼 6만평 숲을 관리하는 한국인2세.  순수한 한국친구가 그립단다.)

4.통나무집에서 하룻밤 지내기

4.백야 골프치기 

(밤12시 백야로 환한 앵커리지 시내 )

5.현지 여행전문 그레이라인 코리안 (GRAY LINE) 하인호사장 ☎ 907-743-0541
(하인호사장은 알래스카 곳곳을 탐험해 여행지를 개척하는 박학다식한 거구의 사업가. 혹시 적은 비용으로 럭서리 알래스카 여행을 주선해주지 않을까^^)
6.요즘 신문보면 여행사에서도 광고 무지 때리던데.

 

코멘트(3)     트랙백(11)
[1] | [2] | [3]다음끝